가나안과 한반도
며칠 전 광복절이 지났습니다.
그리스도교인들 중에는 비슷한 시기에 독립한 이스라엘민족과 우리민족을
비슷하다고 느끼는 분이 많습니다.
두 민족 모두 계속된 침략과 전쟁의 역사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보는 관점 안에는 하느님이 약소민족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듯이
우리민족도 사랑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나라가 오늘날의 이스라엘과 비슷한 나라여도 괜찮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오늘날의 이스라엘을 보고 흡족해 하실까요?
성경은 크게 구약과 신약으로 나뉩니다. 구약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약소민족 이스라엘을 몸소 가나안으로 이끄시고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가르치신 성부 하느님의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신약은 성부 하느님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고, 갈수록 기득권이 우상숭배 되는
세태에 대한 회개와 보편적 사랑에 관한 성자 하느님의 복음이 중심입니다.
이것을 이주사목을 하는 제 입장에서는 이렇게도 구분할 수 있습니다.
구약은 약소 이스라엘민족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신약은 모든 인간
특히 약자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 즉 저는 사랑의 개념이 구약을 거쳐
신약에서 더욱 확장되고 심도가 깊어졌다고 봅니다.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말씀들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까요?
먼저 제1독서는 당신의 애인 이스라엘의 범위를 넓히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
이어서 우리는 시편으로 응답합니다.
"하느님,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오늘 복음은 딸을 살리고자 예수님을 찾아갔던 이방계 가나안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도움을 청하는 여인에게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유대교적 답변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존심마저 버리며 당신을 향한 강한 믿음을 보인 여인에게 그 분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그리고는 여인의 딸이 나았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특별한 사랑이 보편화되고 흘러넘치기를
바라십니다.
이방인이었던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도교회에서 배척되었다면 그 많은 서간들을
우리가 접할 수 있었겠습니까?
형제 자매 여러분, 현재 우리나라는 오늘날의 이스라엘과 비슷해 보입니다.
보편적 사랑이 부족합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대상을 이스라엘민족에서 모든 인류로 넓히셨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인 우리민족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감사한 마음이라면 우리가 먼저 이주민, 선주민 구분 없는 평화로운 공동체를
이 땅에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이상민 시몬 신부 (파주 Exodus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