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성찰

2017. 11. 30. 오전 5: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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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성찰

 

 

저는 얼마 전, 몇 달 동안, 자신도 모르게 불면증에 시달린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병고에 시달린 나머지 어떤 신체적인 변화도 있었지만, 작고 큰 걱정에 나 자신이 끌려 다니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지는 것이 불면의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외적인 요인도 있지만, 내적인 요인이 더 크다고 판단한 저는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작고 큰 걱정들을 똑바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루 동안 지낸 과정을 돌아보면서 나의 의식이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흐르는지를 살피는 일이었습니다. 어제 오늘 만났던 사람들과 있었던 일들을 더듬어 보면서, 내 마음이 열려 있었는지 아니면 폐쇄되어 있었는지, 선을 향한 흐름이었는지 혹은 좋지 않은 마음의 흐름이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영성에서는 이것을 의식성찰이라고 말합니다. 주로 하루를 마무리 짓는 시간에 갖게 되는 이 의식성찰에서, 나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생활의 많은 부분을 질서 있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마음도 가벼워졌습니다. 때론 쉽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결심을 하곤 하습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용서와 사랑에 맡기는 마음이 더 깊어졌습니다. 무엇보다 잠자리가 편해졌습니다. 불면증이 사라지며 단잠을 이루는 경우가 아주 많아졌습니다. 이때 저는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불면증은 잠자리에 든 나에게 미래나 과거를 헤매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반증으로 단잠을 잔다는 것은 현재에 머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의 비유를 드시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리십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깨어 있는 것, 그것은 현재에 머무는 것입니다.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특별히 받은 소명에 이르기까지 주어진 삶을, 지금 여기에서, 충실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현재에 머물며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낼 때 과거는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으로 다가옵니다. 미래는 희망으로 다가옵니다. 이렇듯 과거와 미래를 포용하면서, 주어진 현실을 지금 여기에서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사는 것이 아닌가! 그 삶의 내용은 등불이 되어 주위를 밝혀줍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불에 비춰진 신랑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갑니다. 오늘 제1독서의 한 부분입니다. "지혜는 자기에게 맞갖은 이들을 스스로 찾아 돌아다니고,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상냥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의 모든 생각 속에서 그들을 만나 준다."(지혜 6,16) -홍성만 미카엘 신부 (서울대교구)- 오래 전 직장 생활할 때 참으로 기뻤던 기억 한 가지가 떠오릅니다. 산업화의 역군으로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아무 생각 없이 하루 온종일 일에 파묻혀 지냈습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일들은 지극히 제한적이고 단순한 일이었기에 회사 전체적인 경영 상태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연말 사장님께서는 사내 방송을 통해 아주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올 한해 모든 사원 여러분들께서 열심히 일해주신 덕분에 회사 매출이 크게 늘었습니다. 사장으로서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번 달 급여 나갈 때 100% 특별 성과급을 더 얹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뜻밖의 선물에 저희 모두는 일제히 환성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거금을 어디에 쓸까 고민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도 가끔씩 특별 상여금처럼 갑자기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세파에 힘겨워 지친 어느 날 주님께서는 한 구절 애절한 시편 구절을 통해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사방이 가로막힌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어느 순간 주님께서는 동료 인간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담겨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결국 주님의 은총을 제 때 제 때 감지하기 위한 관건은 우리 인간 측의 준비 여부입니다. 그냥 되는대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우리의 시선이 오로지 지상 사물에만 집중되어 있다면 세상만사 안에 현존해계시는 주님의 자취를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깨어있지 못한 사람들은 주님께서 오고 계심을 알 리가 없습니다.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주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풍부한 은총을 받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앉아서 대기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느님께 시선을 돌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무위(無爲)의 상태가 아니라 충만(充滿)의 상태입니다.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매순간 우리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하느님께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하게 될 때 외적으로 드러나는 표현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입니다. 존재 자체로 그를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며, 모든 면에서 세심하게 배려합니다. 상대방을 위해 모든 측면에서 잘 준비합니다. 선물을 하나 사도 몇 번이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서 선물을 준비합니다. 결국 잘 준비한다는 것은 사랑의 가장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준비는 어떻습니까? 하느님을 연인 대하듯 갖은 정성을 다 기울입니까? 그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과 시간, 마음을 투자합니까? 잘 준비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해 정성을 표한다는 것입니다. 잘 준비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해 예의를 갖춘다는 것입니다. 잘 준비한다는 것은 인간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완벽함을 바라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양한 한계와 결핍 속에서도 하느님을 위해,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이것저것 준비하고자 노력하는 우리의 모습을 어여삐 여기실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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