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래?"
2006년 겨울. 당시 저는 다음해에 사제품을 앞둔 부제였습니다.
신학교에서 방학을 하여 돌아왔을 때 당면한 것은
바로 성탄 준비였습니다.
특히나 그해 겨울은 출신 본당에서 지낼 마지막 성탄이었기에
잘 준비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성탄을 준비하던 어느 날, 주임신부님께서는
저에게 한 가정을 방문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할머니 한분에게 전화가 왔는데, 그간 성당을 가지 않으셨던
할아버지께서 건강이 나빠지자 할머니의 설득에 세례를 받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임신부님께서는 저에게 할아버지의 건강이 어떠신지 가봐서,
만약 위독하시면 세례를 드리고, 그렇지 않다면 한동안 방문하면서
가정교리를 하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저는 곧 전화를 드렸고 할아버지의 건강이 어떠신지 물어보았습니다.
전화를 받은 할머니께서는 지금은 좀 괜찮아지신 것 같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날은 12월 23일이었습니다.
아직 복사연습도 구유도 다 만들지 못한 상태였기에 저는 할머니에게
오늘 내일은 성탄 준비 때문에 조금 어려울 것 같으니
25일에 방문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주임신부님께 보고를 하러 갔습니다.
'할아버지의 상태가 위독하시진 않으신 것 같고, 오늘 내일은
성탄 전례준비랑 구유 만드는 것 때문에 25일 오후에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가만히 듣고 계신 신부님께서는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죽을래?"
순간 당황한 저에게 신부님께서 이어서 이야기하셨습니다.
"아브라함. 뭐가 더 중요한 것 같아? 만약 오늘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책임질 수 있겠어?"
그 순간 저는 망치로 머리를 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할머니 댁에 전화를 드리고 바로 할아버지를 뵈러
갔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오셨건만 저는 성탄행사 준비에
정신이 팔려 정작 가난한 이를 보지 못한 바보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항상 깨어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 안에서 우리는 종종 중요한 것을 놓치곤 합니다.
바로 무엇을 향해 깨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은 대부분 깨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쉼이 필요할 정도로 깨어 준비하고 있습니다.
수험생들은 대학수험을 준비하며 깨어있고,
대학생들은 자신들의 스펙을 쌓고자 깨어있습니다.
취업준비생들은 취업을 위해 분주히 깨어있고, 직장인들은
안락한 가정과 노후를 위해 늘 깨어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우리는 얼마나 예수님을 향하여,
내 이웃을 향하여 깨어있습니까?
때로 주님을 만나는 것에 있어서 다른 것들을 준비하느라
바쁘다고 눈을 돌리고 있지는 않은지요?
미사보다는 학원을, 기도보다는 여가생활을,
봉사보다는 나만의 시간을...
설령 그렇다면 우리가 아무리 바쁘게 깨어 준비하고 있더라도
그것은 빈 등잔만 들고 있는 어리석은 처녀들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신랑을 못 알아보고 딴 짓만 하고 있는 더 어리석은
모습일 것입니다.
깨어있으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 그 안에서 다시금 묵상해 봅니다.
정녕 우리는 무엇을 향해 깨어있습니까?
-최영록 아브라함 신부 (청소년사목국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