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행불일치(言行不一致)
'위선'에 관한 예수님의 질책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만일 '난 자유롭다.'라고 여긴다면 그게 더 위선적인 모습이 아닐까?
실제로 구도자들이 '진짜 나'와 '가짜 나' 사이의 괴리감을
감당하지 못하고 삶을 잃는 경우도 생긴다.
분명 평생 고해하고 가야 할 내면의 짐이면서 털어내고픈 모습이다.
도대체 이 위선을 사는 이유가 뭘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근원적으로 인정받고, 뛰어나고,
높아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보면 거의 틀림없다.
모세의 율법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었던 율법학자들,
바리사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비록 맞지 않는 옷을 입었을지언정
사람들로부터 대단한 인물로 존중받으며 살고 싶었던 것이다.
해서 오늘 복음에 나오는 것처럼 말씀을 소중히 여기지도 않으면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도 길게 늘였겠지….
같은 욕망을 지니고 있는 인간적인 마음에 괜히 안쓰러워진다.
하지만 예수님은 냉정하면서도 매몰차시다.
이유는 어떤 경우라도 하느님보다 인간의 욕망이 우선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법과 가르침을 자신들의 자리보전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하느님을 모시는 이로 사칭한 도둑이었다.
주님은 하느님과 백성을 위해 사는 착한 목자를 보고 싶었던 것이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는 삯꾼을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에 대해 주님은 ‘겸손’을 말씀하신다.
높아짐에서 벗어나 낮은 자의 삶을 살라 하신다.
본래의 자리를 깨닫고 찾아 나서라는 것이다.
위선자의 모습과 그 아픔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전통은 겸손을 가리켜 '덕의 근본'이자 '은총을 담는 그릇'으로
이해했다.
인간의 욕망으로 채우면 허무가 남지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비우면
하느님 나라가 채워진다는 가르침이다.
이 겸손이 살아있으면 분명 내가 아닌 하느님의 것들이 꽃을 피운다.
여담인데. 혹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잡다한 '옵션'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 있으면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커져 있는 것은
아닌지 진단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소중한 것들이 가려져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 민경철 안토니오 신부 (광주대교구)-
예수님으로부터 신랄하면서도 강도 높은 비난을 받은 당대 지도층 인사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속으로 고소하고 후련하면서도
남의 일 같지가 않습니다.
그들의 삶과 제 삶을 비교해보니 도진개진, 50보 100보라는 생각에
참으로 부끄럽기도 합니다.
예수님 질책의 원인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과 이중성입니다.
언행의 불일치요 하늘을 찌르는 교만, 겸손의 결핍입니다.
안 그래도 이런 측면은 사목자로서 가장 마음에 찔리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율법학자, 바리사이들과 같은 심정으로 예수님의 야단을 맞으면서 드는
한 가지 생각입니다.
야단만 맞고 있을 게 아니라, 위선적인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대척점에 서있는 참 목자로서의 이정표를 세워야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어떻게든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 보다는 더 잘 살아야겠다는
굳은 다짐이 오늘 제게 필요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눈여겨볼 가경자가 한분 계십니다.
이탈리아 출신 살레시오 회원으로서 일본선교사로 활동하셨으며,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창립에 큰 역할을 하셨던
빈첸시오 치마티 신부님(1879~1965)이십니다.
'마에스트로' '주님의 음유시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릴 만큼
그는 당대 유명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습니다.
동시에 아주 감미로운 바리톤 목소리를 지니셨는데, 음악회가 끝나면
목소리에 반한 귀부인들이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길게 줄을 설
정도였습니다.
그는 돈 보스코의 정신에 따라 음악을 통해 청소년들이 기쁨 속에
주님을 섬기도록 노력했습니다.
치마티 신부님은 음악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신학, 영성이나 인품, 등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탁월함과 비범함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찬란한 성덕과 비범함을 청빈과 겸손의 덕으로 가리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1935년 미야자키 선교구가 지목구로 승격되자,
그는 초대 지목구장으로 임명되었고, 그에게는 몬시뇰이라는 칭호가
주어졌습니다.
이를 알게 된 이탈리아 친구들이 아주 멋진 고가의 자주색 몬시뇰 복장을
선물로 보내왔습니다.
그는 즉시 되돌려 보내면서 일본의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해 쓸 수 있게
그것을 팔아서 현찰로 보내라고 했습니다.
치마티 신부님의 복장은 언제나 여기 저기 수없이 꿰맨 자국투성이의
낡은 수단 한 벌 뿐이었습니다.
그의 모범적인 수도생활을 눈여겨본 수도회 장상들께서
그에게 중책을 맡기려고 여러 번 초대를 했었지만, 그때 마다 그는
예의바르면서도 완강하게 사양했습니다.
그는 1938~1948년 사이, 10여년에 걸쳐 일본 살레시오회 관구장직을
역임했었는데, 로마 총본부에 계신 총장 신부님에게 보낸 월말 보고서
말미에는 항상 이렇게 썼습니다.
"사랑하는 총장 신부님, 저는 인간적으로 큰 약점을 지니고 있는데,
지나치게 교만하고 예민한 것입니다.
이 약점을 고치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치마티 신부님은 자신의 교만을 물리치기 위해 언제나 열심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일하고 또 일했습니다. 늘 형제들을 자신보다 낫다고 여겼으며
형제들을 칭찬했습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좋은 것이 있으면 형제들에게 양보했고, 자신은 늘
가난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이 땅의 모든 사목자들이 치마티 신부님처럼 충실한 기도생활, 겸손하고
청빈한 삶을 통해 매일 다가오는 다양한 측면의 유혹들을 극복하고,
하느님만으로 충분한 착한 목자로 설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많은 신자들이 요즘 사제들은 너무 권위적이라고 불평합니다.
그렇습니다!
사제가 권위주의에 빠지면 안 됩니다.
그러나 권위는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권위를 지니시고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참된 권위는 잘 섬기는 데서 옵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가르치시는 내용을 누구보다 먼저 실천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가르침은 권위가 있었습니다.
권위는 말로만이 아니라 참으로 형제들에게 사랑과 밝은 지혜의
봉사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데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78년 10월 22일 교황직을
시작하면서 바친 기도가 귀감이 됩니다.
"오 그리스도님!
제가 당신의 유일한 권한의 봉사자가 될 수 있게 하시며
또한 봉사자이게 하소서!
당신의 온유한 권한의 봉사자,
기울어질 줄 모르는 당신 권한의 봉사자가 되게 하소서!
제가 종이 될 수 있게 하소서!
아니 당신 종들 중에 종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마지막에 모든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제가 여러분들을 섬길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