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

2012. 1. 19. 오전 6:2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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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 아무나 십자가를 질 수 없으며, 아무나 십자가에 못박히지 못한다. 곧 아무나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십자가는 우리로 하여금 "달리" 살도록 해준다. 아름다운 세상, 살맛나는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달리"사고하고, "달리" 살 필요가 있다. 바보가 되는 것도 똑똑한 세상에서 달리 사는 방법 중의 하나다. 그리스도인은 달리 살기 위하여 바보가 되기로 한 사람들인 셈이다. 그리스도인은 용서하는 사람이다. 용서는 그리스도인의 본질일 뿐 아니라 인간됨의 본질이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고통은 때때로 절망을 안겨주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깨우쳐 줄 수 있어야 한다. 고통 속에 사랑이,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은 고통을 없애 달라고, 절망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그는 고통 가운데서도 의미를, 절망 가운데서도 희망을, 죽음 가운데서도 삶을 발견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예수의 복음을 들으며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 말씀은 아직 나에게 복음이 아니다. 아직 온 몸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그 말씀은 다만 예수께서 하신 수많은 말씀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퀴즈에서나 묻고 대답하는 상식에 불과하다. 상식으로 알게 된 복음은 내 인생에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한다. 하늘을 바라보라. 도달할 수 없는 하늘, 끝없고 무한한 하늘, 영원히 열려 있는 하늘은 신비스럽다. 하늘은 인간으로 하여금 더 높게 더 멀리 더 넓게 바라보도록 해준다. 하늘은 인간의 마음을 더 고상하고, 더 심오하고, 더 관대하게 해준다. 하늘처럼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따뜻하다. 그에게는 하늘을 물질로만 보는 사람에게서 느낄 수 없는 포근함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에서 그 이상의 것, 하느님을 보며 사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보잘것없는 자기 안에 하느님께서 숨어 계시다는 것을 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들 안에서, 원수들에게서마저 하느님을 본다. 하느님의 침묵은 피조물에 대한 하느님의 신뢰다. 신뢰하는 사람은 자비롭다. 참고 인내할 줄 알기 때문이다. 이 신뢰와 자비 덕분에 세상은 계속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과 씨름한 야곱, 씨름 없이는, 내면적 질문 없이는 하느님을 만날 수 없다. 불행 가운데 행복이 있고, 고통 가운데 기쁨이 있으며, 죽음 가운데 삶이 있다는 진리를 어떻게 암기로 얻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온 몸을 던지는 투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진리다. 하느님과의 씨름 없이는 하느님을 만날 수 없다. 하느님을 추구하는 존재는 하느님과 씨름하는 존재다. -"우리가 예수를 사랑하는 이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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