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22일 (녹) 연중 제3주일

2012. 1. 22. 오전 7: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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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2일 (녹) 연중 제3주일

2012년 1월 22일 (녹) 연중 제3주일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어부 네 사람을 보시고 그들을 당신의 제자로 부르십니다. 그들은 그물과 가족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이제 그들은 물고기가 아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며, 세상을 기쁘게 하는 복음의 사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독서 <니네베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섰다.> 요나 3,1-5.10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1 코린 7,29-31 복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 1,14-20 니네베 사람들은 요나 예언자의 말을 듣고 회개하여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회개의 표시로 단식을 하며 자루옷을 입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시고 내리시겠다던 재앙을 거두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 세상의 형체는 사라질 것이니 세상 것에 너무 얽매여 살지 말라는 것이다 (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복음을 선포하시며,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하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어부 네 사람을 당신 제자로 삼으시어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신다(복음). *예수님께서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그들은 사랑하는 부모와 처자식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우리에게 전해진 복음의 이야기가 전후 과정을 생략했기 때문이겠지만, 나를 따르라고 한다고 해서 무작정 따라나선다는 것이 선뜻 이해되지 않습니다. 세상이 주는 온갖 혜택은 편리하고 달콤합니다. 그러한 편안함과 달콤함을 어느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돈과 출세가 삶의 유일한 목표가 될 때 예수님을 따라나설 수 없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을 위해 봉사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너무나도 허황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다고 하여 우리 신앙인들마저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우리가 살아야 하는 세상은 어떤 희망도 없는 이기주의자들의 전쟁터가 될 것입니다. 누가 더 많이 갖고, 누가 더 많이 누리느냐가 삶의 유일한 목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진리와 사랑이 승리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 출발은 예수님 말씀처럼 우리 모두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나 중심에서 이웃 중심으로 옮아가는 것입니다. 삶의 방향을 맘몬인 돈 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삶의 방향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매일미사에서- ** **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4) 소크라테스는 무지의 지식에 대하여 강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논쟁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평소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결국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자기가 모른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보다는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한 단계 진전된 사람이라고소크라테스는 말했습니다. 이제는 제대로 묻고 배우려 할 테니까요. 사랑받는 죄인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하느님의 자비를 갈구하는 세리와 같은 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도 모르는 바리사이와 같은 사람보다 한 단계 진전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조금 복잡한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참회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생활의 변화는 거의 없는 경우입니다. 어떻게된 일일까요?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고정관념과 편견, 왜곡된 지식을 쌓아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 안의 어떤 것이 진실이며 거짓인지를 명확히 분별하지 못하고 이것들이 뒤섞인 채 살아간다면 반성과 참회의 효과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을 참회하고 개선해 갈지조차 모르거나, 하루살이는 거르고 낙타는 통째로 삼키는 경우도 있을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한다는 것은 전면적으로 자기를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한 어린이를 불러 세우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마태18,3) 어린이를 회개한 사람의 상태에 비유한 것입니다. 곧 백지와 같은 상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이제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면적인 자기 부정만이 이 상태에 이를 수 있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태9,17)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는 분입니다. 때가 차서 가까이 오신 하느님을 영접하기 위해서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물이 낮고 비워진 곳에 흘러 들어가듯이 하느님의 은총도 그러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렇게 낮추어지고 비워지도록 애를 쓰고 기도해야 겠습니다. 양형석 루가 신부 (일산병원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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