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5주일 말씀의 향기(의정부 주보)
예수의 삶에서 가르침과 행위만큼 중요한 것은 그의 '사라짐'입니다.
말을 마치고 홀연히 사람들 사이를 떠난다던지,
남겨진 사람들에게 깊은 후회와 슬픔을 남기는 죽음도 있습니다. ‘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원하지 않았던 좀 더 내적인 사라짐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에게 향하는 태도와는 상반되게,
어째서 그 자신이 어떤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을 꺼리는 태도를 보일까요?
그것은 예수라는 이름 안에 익명, 어느 한 곳에 정체된 존재가 아닌
오늘의 복음의 비유처럼 끊임없이 '되어가는' 존재,
포착될 수 없는 것을 항상 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예술작품을 마주하는 이들이 어떤 작품에 말들을 쏟아 붓는 경우와
같습니다.
예측하기 힘든 순간들과 마주하거나 형용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서 확정을
내리고 싶은 욕망은 행위보다 말을 하는 자들에게 권력을 내어주게 합니다.
작가 위에 비평가가 비교될 수 없는 권력을 가지게 되고,
이제 작품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말이 진리로 확정됩니다.
그렇지만 그럴 듯한 해석이 있다하더라도 거기에는 늘 해석을 거스르는,
그것을 할 수록 더욱 숨어버리는 (우리 편에서 볼 때의) 비존재가 늘 있게
마련입니다.
어느 인권운동가는 '입'보다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역설한바 있습니다.
말은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끊임없이 떠듭니다.
어쩌면 예수를 타자에 대한 권력 획득의 도구로 삼기 위해서 그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에 대해서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그를 절대화하면 할수록,
역설적으로 그의 모습에서 부재의 공간을 드러내지 못하게 되고,
그의 생성하는 모습은 우리의 시야에서 더욱 사라질 것입니다.
예수의 자신을 해체하고 사라지는 생명은 상대방의 앞을 막기보다 비스듬히
서 있습니다.
우리는 그 되어감의 과정에 참여합니다.
-김주용 암브로시오 신부(주엽동 협력사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