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일 말씀의 향기(의정부 주보)
사순 시기는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예수의 삶 전체를 다시 조망하는
시기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그 자체로만 존재하지 않고 늘 삶과의 연결 속에서 서로가
의미를 비추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에는 죽음을 각오한 결단이 있고, 그의 죽음에는 무엇보다 삶을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있습니다.
또한 삶은 죽음으로 그 진실성이 드러납니다.
만약 예수가 당시 주류 담론인 율법에 안주하여 그것을 사람보다
더 우선시했거나, 그 테두리에서 밀려난 사람들과 운명을 함께
하지 않았다면 십자가의 죽음이 있었을까요?
이런 의미에서 십자가는 원인이라기보다 그러한 실존적 선택의 결과이고
'사건'입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온통 십자가가 넘쳐납니다.
밤을 밝히는 붉은 십자가에서 집과 자동차를 장식하고 몸을 치장하는
도구까지 보이는 십자가뿐 아니라 특강과 같은 이벤트도 있고 십자가의
길도 합니다.
주변에 보이는 십자가는 많은데 그 '사건'은 없는 종교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기억하지만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삶의 실존적 선택은
하지 않기에 당연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적당히 권력과 타협하고 자아도취와 자기 보전의 논리로 타인을 몰이해하고
억압하면서도 십자가와 공존할 수 있다고 교묘히 합리화하는 방법은
그런 예식들과 장식물, 공허한 종교적 수사에 열정을 쏟게 하는 것입니다.
양심의 가책 없이 우리는 그‘안’에서 종교적 신앙이 자라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 높이 매달려 있는 십자가는 예수가 늘 서고자 했던 '밖'의
세계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 세계를 상상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치 있는 도전으로서, 동시에 그 안에서
한번 주어진 유일한 삶의 물음과 지평으로서, 또한 빛으로서 다가올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의 사건이 될 것입니다.
-김주용 암브로시오 신부(주엽동 협력사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