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 (春來不似春)
"봄은 왔건만, 봄이 아니로다." (春來不似春椿)
조선 후기 추사(秋史) 김정희는 유배지 제주도에서
귀양살이의 절박한 심정을 이렇게 토로하였습니다.
분명히 봄은 왔지만 봄을 느낄 수 없는 참담한 현실!
절기상 찾아온 우리의 봄은 어떻습니까?
신앙의 봄인 부활절을 준비하는 사순시기를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절제와 선행의 시기 사순 제4주일인 오늘,
사제는 기쁨의 상징인 장미색 제의를 입고 구원의 신비인 미사성제를
봉헌합니다.
우리의 기도와 자선은 마지못해 하는 속죄행위가 아닙니다.
부활의 희망으로 자원한 아름다운 속죄행위임을 확인하기 위하여
사순시기 한가운데인 오늘 우리는 연극의 중간휴식(intermezzo)처럼
휴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참된 신앙의 봄은 부활절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온통 연둣빛으로 물들고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도,
사순시기를 지내는 동안은 결코 봄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확신하며 기다리면서도,
우리는 아직 겨울의 강을 건너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부활을 잘 준비하기 위하여 영혼을 씻어줄 차가운 겨울 강가로
가고 싶습니다.
그 강물에 자신을 푹 담그고, 그 강과 하나가 되어 흘러가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생명이 솟아나고, 온갖 나무는 열매를 맺으며,
어느덧 온 세상이 기쁨 넘치는 봄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오늘 독서말씀처럼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새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에페 2, 8).
바오로 사도는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로마 5, 20).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의 부끄러운 죄 너머에 주님의 은총 또한 풍성히 쏟아지고 있습니다.
단 하루도 죄짓지 않고 살 수 없는 우리지만
주님의 십자가로 이렇게 숨 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원망의 눈물은 우리를 더욱더 슬픔 속으로 몰아넣지만,
희개의 눈물은 기쁨과 행복을 선사합니다.
그러니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회개하고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 하늘 높은 데서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고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부활절이 예수님만의 부활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부활이기를기대하며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 것이 나타났습니다."라는 고백을 겨울 강가에서
다짐하고 싶습니다.
-정성만 세례자 요한 신부(전주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