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9일 (홍)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오늘은 예수님께서 수난을 앞두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을 기념하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당신께서 수난하시고 돌아가실 곳임을 아십니다.
나뭇가지를 들고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환영하던 군중은 머지않아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칩니다.
다가오는 죽음을 준비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거룩한 성주간을 시작합시다.
독서 <나는 모욕을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
이사 50,4-7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셨습니다.>
필리 2,6-11
복음 마르코가 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입니다.
14,1─15,47<또는 15,1-39>
이사야서에 실린 '주님의 종의 노래'에서는 주님의 뜻에 따라
매질과 모욕에 자신을 내맡기는 종이 소개된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이 종의 노래가 실현됨을 알아본다
(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찬가에서,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사람이 되시고 죽음에 이르시기까지 순종하셨음을 칭송한다(제2독서).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수난기로, 예수님께서 유다의 배반으로 사람들
손에 넘겨지게 되시는 때를 출발점으로 하여,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의
신문과 빌라도의 신문을 거쳐 사형 선고를 받으시고 숨을 거두시는
순간까지의 내용을 전해 준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파스카 어린양으로 바쳐지신다(복음).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마르 15,13.14) 이 외침이 이천 년 전
유다인들의 외침만은 아닐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환호하면서 열렬히 환영하던 이들이
불과 며칠 만에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다면, 우리 또한
무의식중에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고함을 지르는 무리에 가담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기가 어렵습니다.
오늘 들은 두 복음,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복음과 예수님의
수난기는 더할 수 없는 대조를 이룹니다.
마르코 복음에서는 그 모든 일이 한 주간 사이에 일어났다고 전합니다.
이 한 주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복음에서 눈에 띄는 것은, 많은 사람이 온전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을
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군중이 빌라도에게 바라빠를 풀어 달라고 청한 것도 수석 사제들이 그들을
부추겼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죄가 없고 수석 사제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자기에게
넘겼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군중의 부추김에 넘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줍니다.
군중이, 그리고 빌라도가 자유롭고 소신이 있었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데에 찬성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진리와 정의 앞에서 어느 만큼 자유롭습니까?
윗사람이나 지도자들이 우리를 선동해도 정의를 지킬 수 있습니까?
군중이 나의 위치를 위협해도 진리를 옹호할 수 있습니까?
"주님, 저도 정의에 눈을 감아 버리고 소신과 줏대를 접어 둔 채,
체면이나 군중 심리에 휘둘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소리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지켜 주소서."
-매일미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