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 향유를 발라 드리다(요한 12,1~11).
베다니아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발라드리는 것은 특별한 구원적인 뜻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파스카의 희생양의 실체이며,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 기름(성령)을 발라서 대사제로 축성하시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향유는 마리아가 일생 모은 재산을 말하며 마리아가 가진 모든 것,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도유(기름 바름)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행위이고 예수님의 장사를 의미하며, 마리아가 자신의 귀중한 것을 팔아서 보물인 예수님을 사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귀중한 것을 팔아서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사서 하늘나라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은전 30닢에 팔아서 세상의 것인 돈을 받는 것입니다(마태 26,14~16).
우리들도 매일매일 내가 마리아 역할을 하는가 하면 유다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차원을 달리해서 보면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은 행위는 구원역사에서 큰 뜻이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왕이나 제사장으로 임명할 때 기름을 부어서 축성을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님께 기름을 부으신 것은 예수님을 대사제로 임명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7,11을 보시면 일반 제사장은 아론의 번차를 따라서 임명이 되었지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멜기세댁의 번차를 따라서 대사제로 임명을 하셨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갈바리아산에서 어린양으로서 희생 제물이 되시고 또한 대사제가 되셨습니다. 우리들도 세례를 받을 때 도유기름 받음으로서 평신도 사제직, 평신도 예언직, 평신도 왕직을 받은 것입니다.구약에서는 사제나 예언자나 왕은 기름을 발라서 축성을 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죽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다시 예수님께서는 요한 13장에서, 세족례를 통해서 다시 설명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1 해방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아로 가셨다.그곳에는 그분이 죽은 이 가운데서 살리신 라자로가 있었다.
2 거기서 예수를 위해 잔치를 베풀었는데 마르타가 시중을 들었고, 라자로는 그분과 함께 자리한 사람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3 그런데 마리아가 값진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그분 발에 바르고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아 드리자 집 안이 향기로 가득 찼다.
설명: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천국완성과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즉 부활한 자와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만나는 자는 예수님이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에 있는 사람이 은사인 나무잎으로 자라서 꽃이 피고 향기가 난 후에 열매가 나오는데 이 때 사랑의 열매가 나오는 것입니다. 머라카락도 육적인 사람들을 상징합니다.(에제키엘 5,1) 향유를 바르고 머리카락으로 닦아 드리는 것은 영접(고린 후 2,14)을 의미하며 겸손을 의미합니다.
요한 13장에서 예수님께서 다시 사도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것이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며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세족례인 것입니다. 집에서 어머니 발을 씻겨 드리세요. 어머니가 아니 계시면 부부끼리 또 자식 형제들끼리 씻겨 드리세요.
4 이 때 예수의 제자 가운데 하나이며 나중에 그분을 넘겨줄 유다 이스가리웃이 말했다.
5 "어찌하여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지 않소?"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염려해서가 아니라, 돈주머니를 맡아 있으면서 거기 넣었던 돈을 가로채곤 하는 도둑이기 때문이었다.
설명: 돈주머니 이야기는 가리옷 유다의 이야기이면서 나의 이야기입니다(마태 6,24).
도둑이라는 뜻은 육적으로는 세상의 돈을 도둑질하는 것이지만 영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주지 않고 자기의 의로 일을 하면서, 하느님께 바쳐야 할 영광을 자기가 받는 사람이 영적인 도둑인 것입니다.
7 예수께서 말씀하셨다."그냥 두시오. 내 장례날을 위해 간직한 것을 쓴 것이오.
설명- 아가페 사랑을 하면 속성상 죽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8 가난한 이들은 주변에서 늘 만나게 마련이지만 그대들이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라자로를 죽이려는 음모(요한 12,9~19)요한복음에서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나오고 예수님께서 살리셨던 라자로를 죽이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오는데, 가리옷 유다나 이스라엘의 안에 있는 사탄 마귀가 예수님과 라자로와 하느님을 믿는 성도들을 박해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영접하는 구원받는 사람들과 예수님을 거부하고 심판을 받는 사람들로 나누는 것이 심판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거부하는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을 말씀하시면서 예화를 들어서 실제로 설명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하느님의 평화)에 입성하시는 것입니다.
천주교회에서 사순절 성지주일은 성지가지를 축성하고 예수님이 나의 마음 안에 오실 것을 기도하는 주일입니다.
성지가지(나를 상징함)를 집에 가지고 와서 십자고상에 꽂아 놓는 것은 예수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 포도나무와 가지가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라자로를 죽이려는 음모(요한 12,9~11)
9 예수께서 거기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대인 군중이 몰려 왔다. 예수를 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분이 죽은 이 가운데서 살리신 라자로도 보기 위해서였다.
설명- 라자로는 살아 있기 때문에 복음과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살아나서 부활하여 사랑의 사람이 되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복음과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로 살아가는 것이 기도이며 복음 선포입니다.
10 그래서 대제관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박해) 결의했다.
11 라자로로 말미암아 많은 유대인이 자기들을 떠나 예수를 믿게 되었다'(복음선포).
예루살렘 입성(요한 12,12~19)
예루살렘성은 나를 상징하며 예루살렘의 성전의 파괴는 즉 나의 육신의 장막의 파괴를 의미합니다.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아니하면 바벨탑이 무너지는 것처럼 나의 육신 장막이 심판을 받아서 무너지기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하여 종려가지 나무를 들고 나가서 예수님을 영접해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뜻은 새끼 나귀는 복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에서 약속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이 복음으로 기쁜 소식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러 오시는 구세주시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매일매일 나에게 오시는 구세주를 맞이해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군중들이 종려나무를 들고 마중하는 것은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 가지인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12 이튿날, 축제를 지내러 와 있던 많은 군중이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 오신다는 말을 듣고는
13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마중나와서 외쳤다. "호산나! 주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이스라엘의 임금님은 축복 받으소서!"
설명- 종려나무는 요한 15장에서 참 포도나무인 예수님과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가지는 성도들과 예수님을 영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합니다. 호산나는 "주님, 구원하여 주십시요."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은 세상의 왕을 의미하는 것이아니라 메시아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요한 1,49. 요한 18,33. 요한 12,12)
14 예수께서 마침 어린 나귀를(이사 1,3) 얻어 올라 앉으셨으니, 성경에 씌어 있는 대로였다.
15 "겁내지 말아라, 시온의 딸아! 보라, 네 임금님(메시아 예수님)이 오신다. 새끼나귀(복음을 상징)타고 오신다.
설명- "시온의 딸아" 라고 할 때 딸은 호로고스, 즉 말씀이 없는 사람은 씨가 없으므로 여자 또는 딸이라고 합니다.
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들을 깨닫지 못했다. 예수께서 영광스럽게 되신 다음에야 비로소 성경에 그분에 관해 이렇게 씌어 있고 또 그대로 사람들이 그분께 해드렸다는 것을 상기 했다.
설명- 깨닫지 못했다: 진리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고 신앙이 자라게 하며, 말씀이 새겨져야 빛으로 보게 되고, 말씀을 깨닫게 되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17 또한 예수께서 라자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이 가운데서 살리셨을 때('에게이로'라는 말은 부활함을 의미함), 그분과 함께 있던 많은 사람이 그분에 대해 증언한 바 있었다.
18 그래서 군중은 예수께서 그런 표징을 행하셨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마중하러 나왔던 것이다.
설명-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을 하느님이신 메시아로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람은 구원의 길로 들어가고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은 심판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19 이에 바리사이들은 서로 말했다. "이제 다 틀렸소. 보시오. 세상이 다 그를 따르게 되었구료."
설명-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구원의 길로 가지만 바리사이들은 종교의 지도자 들이지만, 예수님을 거부하여 심판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영접하여 받아들이고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만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은 심판과 사망의 길로 가는 불쌍한 영혼들이라는 것이고,
구원의 길과 심판의 길을 예수님께서 제시해 놓고 우리들보고 자유의 의지로 결정을 하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그리스도를 하느님으로 영접하는 사람으로 베다니아 여자 마리아를 예화로 들고,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팔아서 세상의 돈인 은전 30전을 받는 가리옷 유다가 나옵니다(마태 26,1~14).
영광과 십자가 - 결단의 때(요한 12,20~43)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첫 번째 예고와 두 번째 예고와 세 번째 예고로 나오는 이유는 우리들의 마음이 죽고 변화되는 과정이 3단계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영의 복음인 요한복음에서는밀알의 비유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예고를 하십니다.
밀알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구원을 완성하시겠다는 것을 밀알 비유로 설명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께 영광을 바치시는 것은 예수님이 죽으시는 것이며 또한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요한 17,1~2).
우리들도 우리들의 육의 마음을 죽이는 것이 예수님께 영광을 바치는 것이고 우리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영광을 받는 일인 것입니다. 삼구 전쟁이라는 말은 세상, 마귀, 육신을 의미합니다. 세상과 짝짝꿍하는 것이 간음이라고 합니다(야고 4,4).
죽는 것도 육(肉)차원에서는 몸의 죽음을 의미하지만 심안(心眼)차원에서는 우리들의 마음을 죽이는 것을 죽는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화를 한 번 아니내고, 미워하지 않고, 시기 질투하지 않는 것이 우리들의 심령이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차원에서는 성경 말씀으로 나의 영이 죽고 예수님의 영으로 변화되어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육적인 사람이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가 되는 사람입니다. 즉 미움의 사람이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밀알이 썩어 죽는 역사가 일어나는 사람들입니다.
20 축제에 예배드리러 올라온 사람들 가운데 그리스(이방인을 상징합니다.) 사람도 더러 있었다.
21 그들이 갈릴래아의 배싸이다 출신 필립보에게 다가가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하고 청하니
22 필립보가 안드레아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아와 필립보가 예수께 가서 말씀 드리자
23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인자가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습니다.
설명- 육이 죽는 것이 영광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요한 17,1) 우리들도 육이 죽고 산제물로 하느님께 우리들을 봉헌하는 것이 하느님께 영광을 바치는 것입니다(로마 12,1).
24 진실히 진실히 말하거니와,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뿐이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설명- 밀알이 껍질과 씨앗이 그대로 있으면 새로 태어나지 못합니다. 우리들도 육의 열매인 우리들의 시기, 질투 등의 육의 마음이 깨지고 성령의 열매인 사랑의 마음으로 변해야 새로운 영적인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 열매는 성령의 열매인 사랑, 평화, 기쁨, 인내 등의 열매를 말합니다(갈라 ,22~23). 밀알이 썩어 죽는 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25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보전할 것입니다.
설명: 목숨은 헬라말로 '프쉬케' 로서 '혼'이라는 말입니다. 가끔 마음 또는 정신이라고도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아끼는 사람' 에서 이 '아낀다'는 말은 '필레오'로서' 사랑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이 육인 세상을 예수님보다 더욱 사랑하는 것이 간음이고 죽음입니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고자 하면 나를 따르시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영예롭게 하실것입니다."
27 "지금 제 영혼이 몹시 산란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릴까요? '아버지, 이 때를 면하도록 구해 주소서' 할까요? 그러나 저는 바로 이 때를 위해 왔습니다.
설명- 산란하다라는 뜻은 예수님께서도 인성이 있으시니까 죽음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성이 있으시므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말씀을 따를까, 세상의 것을 따를까 많은 생각을 하는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면 우리 안에서 말씀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28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소서." 그러자 하늘에서 소리가들려 왔다. "나는 영광스럽게 했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설명- '아버지 이름으로 거룩하게 하소서,' 라는 말씀은 주님의 기도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름과 영광과의 관계는 요한 17,17에서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소서.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이름과 영광과의 관계는 요한 17,8에 있습니다.
29 거기 서 있다가 이 소리를 들은 군중이 더러는 천둥이 울렸다고도 하고 더러는 천사가 그분께 말했다고도 하였다.
30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소리는 내가 아니라 여러분(하느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을 위하여' 라는 뜻입니다.)을 위해 내렸습니다.
31 이제 이 세상은 심판을 받습니다. 바야흐로 세상의 두목이 쫓겨날 것입니다.
설명- 두목은 세상의 왕과 세상의 나라인데 옛뱀, 마귀, 사탄, 용의 지배를 받는 세상의 사람들과 왕들을 말합니다.
32 내가 땅에서 들어올려지게 되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어 올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말합니다.)
33 이렇게 말씀하심으로써 예수께서는 장차 어떻게 죽으실지를 암시하셨다.
설명- 죽으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34 군중이 대꾸했다.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는 영원히 머물러 계시리라.' 고 들었는데, 어떻게 당신은 인자가 들어올려져야 한다고 말합니까? 그 인자가 누구입니까?"
설명- 우리들의 ego가 무너지는 것이 십자가 사건이고 영생이며, 사랑의 사람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들 안에 영원히 머물러 계실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35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아직 얼마동안은 여러분 가운데 빛이 있습니다.여러분은 빛과 함께 있는 동안 걸어다니시오. 그래서 어둠이 여러분을 덮치지 못하도록 하시오. 어둠 속을 걷는 사람은 어디로 가는지를 모릅니다.
설명- 빛은 영이고 하늘과 예수님을 상징합니다.어둠은 육을 상징하고 땅과 세상과 죄를 상징합니다.
36 빛과 함께 있는 동안 그 빛을 믿어 빛의 아들이 되도록 하시오." 이렇게 말씀하시고 물러나 그들을 피해 몸을 숨기셨다.
설명- 예수님께서 숨으신 후에는 말씀의 빛으로 우리들 안에 계시는 그 복음의 빛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오늘날이 그런 시대입니다.
유대인들의 불신앙(요한 12,37~43)
유대인들의 종교 지도자들이 율법에 매어 있으며 고정관념과 편견과 아집에 매어 있어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생명의 말씀을 깨닫지를 못해서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평신도들보다 봉사자들이 신부님들의 강론을 잘한다 못한다 하고 심판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저는그런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그래서 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세례로 원죄 사함을 받았지만 원죄의 여독인 선과 악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많은 잘못을 인정하고 주님께 용서를 빌고 있습니다. 바로 내가 바리사이고 율사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거부하는 것이 생명을 거부하는 것이며,죽음이고 심판이기 때문에 말씀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요한 12,48)
37 예수께서 그토록 많은 표징을 행해 보이셨으나 그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다
설명- 빛이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없으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은사입니다.(고린 전서 12,7). 우리들이 세례를 받는 것도 은사를 받았기 때문에 세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38 그리하여 예언자 이사야가 한 말이 이루어졌다. "주님, 우리가 들려 준 말을 누가 믿었으며 주님의 팔이 누구에게 드러났습니까?"
39 그들이 믿을 수 없던 이유를 이사야는 또 이렇게 말했다.
40 "주님이 그들 눈을 멀게 하시고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도다. 눈으로 알아보고 마음으로 알아들어 돌아오는 일이 없도록 하며 내가 그들을 낫게 하지 않도록 하셨도다."
설명- 하느님께서 눈을 멀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빛이신 예수님을 거부하기 때문에 오는데 이 영적인 소경이 되는 것은 ego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의 껍질을 성경 말씀으로 벗겨 내야 눈이 뜨여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본다는 것은 사랑으로 보는 사람은 보는 사람이고 율법인 시기, 질투, 미움으로 보는 사람은 못 보는 사람들입니다.
41 실상 이사야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그분에 관해 말했다.
42 의회 가운데도 많은 이가 그분을 믿었지만, 바리사이들 때문에 회당에서 쫓겨날세라 드러나게 고백하지는 못했다.
43 그들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영광보다 사람들로부터 오는 영광을 더 사랑했다.
설명- 우리들이 봉사를 하고는 하느님께 바쳐야 할 영광을 우리들이 주고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것이 땅(어둠=육의 열매)이며 영적인 도둑들인 것입니다. 모든 영광은 하느님께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 즉 성령을 거부하는 것이 말씀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모르면 내가 성경 말씀에 걸러 넘어지고 말씀 심판이 되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말씀을 연구해야 하는 것입니다(요한 5,39).
말씀의 심판 - 결단의 촉구(요한 12,44~50)
요한복음 12장에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대표로서 베다니아 여자 마리아를 예화로 들어서 말씀을 하셨고,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대표로서 가리옷 유다(마태 26,14)를 예화로 들어서 설명을 하시고는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의 길을 마련해 놓으시고,
구약의 차원에서는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이 심판이고 공관복음 차원에서는 인성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해도 구원은 있지만 그리스도(신성)을 거부하는 것이 심판이며, 요한복음 차원에서는 말씀을 거부하는 것이 말씀 심판이며 요한 묵시록(계시차원)에서는 성령을 거부하는 것이, 성령 거부로써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거부하는 것이나, 성령 거부하는 것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이나,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이나 같은 뜻입니다. 차원이 다른 것 뿐입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믿고 받아들여 세례를 받으면 구원을 받으나(마르 16,16),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믿음의 은사 차원에서 성령의 열매(사랑)인 영생의 차원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열린것이 구원이고 말씀이 닫혀있는 것이 심판입니다.예수님이 요한복음에서는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3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드리는 것이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며, 참 포도나무인 예수님과 가지인 사도들이 하나가 되어 성체가 되는 것을 통해서 구원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44 예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성부를 의미함)을 믿습니다.
45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봅니다.
설명- 예수님을 본다는 것은 육의 눈으로 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을 보는 것 인데, 하느님의 속성인 성령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 용서,겸손 등의 열매로 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간음하는 여인에게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돌로 쳐 죽이라고 하는 것은 율법으로는 옳지만 이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고, 영적인 소경들이고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간음하는 여자가 죄를 지었으나 이제부터는 나를 만났으니 죄를 용서받았다는 것입니다. 아가페 사랑으로 보면은 보는 것이고 율법으로 보면은 못 보는 사람입니다(요한14,9). 성경에서 죄는 원죄를 말합니다. 헬라말로는 '하마르티아'입니다.
46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죄) 속에 머물지 않게 하려고 나는 빛(복음의 빛)으로서 세상에 왔습니다.
47 누가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않는다 해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습니다.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기 때문입니다.
설명- 누가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성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레마)를 믿지 않으면,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지 않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48 나를 물리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심판하실 분이 따로 계십니다. 내가 말한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입니다.
설명- 마지막 날이라는 말은 육안으로 볼 때는 이 세상을 죽어서 떠나는 날을 말하나 영적으로 보면은 내가 아담과 하와가 지은 원죄 때문에 죽어 있던 내 영혼이 생명이신 예수님을 만나서 부활하여 살아나는 날이 마지막 날인 것입니다. 천국의 현재성인 것입니다. 영적인 말씀 심판는 말씀이 이루어지면 부활이고, 말씀이 아니 이루어지면 말씀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49 내가 스스로 말한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를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50 나는 아버지의 명령이 영원한 생명임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하는 말은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하는 말입니다."
설명- 명령이 계명이고 생명인데, 생명의 양식인 빵(말씀)을 먹고 깨달으면 몸(소마 즉 부활할 몸)이 이루어지고 몸이 이루어진 사람이 예수님과 한 영이 되며 이런 상태가 부활이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미사 때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가 아주 중요한 새 계약의 제사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