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에 베짜다(예수 그리스도=자비) 못에서 병자(율법)를 고치시다.
요한 5,1~18;마태9,1~8
'베짜다'라는 히브리말은 자비 또는 구제 은혜라는 뜻입니다. 헬라말로는 '베데스다'라고 합니다. 또 자비라는 헬라말은 '엘레모쉬네' 입니다. 이 '베짜타'라는 원래의 말의 뜻은 '모태' 즉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말인 '레햄'(빵)이라는 말에서 '라하밈'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라하밈'이 '자비'라는 뜻입니다(마태 6,2). 어린 태아가 어머니 자궁 내에 있는 것이 자비를 받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숨을 쉬면 태아도 숨을 쉬고 엄마가 음식을 먹으면 태아도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약을 먹으면 태아에게 20분의1 이 전달되는 것입니다.
태아는 어머니의 자궁 내에 있는 태반 안에 양수(생수=진리성수)라는 물 가운데서만이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양수가 미리 터져 나오면 태아는 죽게 되는데, 오늘날에는 양수를 넣어 주어서 태아를 살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 TV 에 나오는 '하인스 워드' 의 경우를 보면 아버지는 아들을 버리고 갔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버리지 않고 잘 가르쳐서 세계적인 선수로 길렀습니다. 어머니의 자비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를 외국으로 입양을 시켰어도 자식이 어머니를 찾고 어머니가 자식을 찾는 것도, 어머니의 모태에서부터 형성된 자비의 문제이며 천륜인 것입니다.
모태 안에 있는 태아는 어머니의 분신입니다. 어머니와 태아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사랑과 자비와 용서로서 자녀들을 양육 하시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저의 병원에 어느 어머님이 오셔서 어렸을 때 저한테 치료를 받았던 아이가 여자 의사가 되어서 병원에 취직을 했는데, 월급의 10 분의 일인 오십만 원을 월급날이면 먼저 친정에 들러서 친정 엄마한테 돈을 주고 간다고 자랑을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의 딸이 예수님을 믿느냐고 묻지를 아니하고 묵상을 했습니다.
"하느님께 10 분의 1을 바치고 친정 엄마에게 10 분의 1을 드리는 분은, 하느님의 자비와 친정 엄마의 사랑과 자비를 아시는 거룩한 성도로구나! " 십계명의 '부모를 사랑하라.' 는 계명을 영육간에 잘 지키는 분이라고 생각을 하니 듣는 저에게도 기쁨을 되었습니다.
육적으로는 자기를 낳아 준 분이 부모이지만, 영적으로는 창조주 하느님이 부모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엄마의 사랑은 변함이 없는데 자녀들은 부모님들의 마음을 모르고 미워한다고 생각을 하는 수가 있지만, 자기들이 자식을 낳아 길러 보면 엄마의 사랑을 느끼게 되는데,
이때는 엄마가 하늘나라에 가신 후에야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친정 엄마가 살아 계시는 동안 사랑하세요. 이것이 이웃 사랑이고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마태25,31~46).
이제부터는 하느님과 인류와의 관계를 묵상해 봅시다.
우리 인류들도 하느님이 창조하여 하늘 위에 있는 물과 땅 아래에 있는 물 가운데서 마치 태아가 어머니의 자궁 안에 양수 (생수=진리성령)라는 물 가운데서만이 살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인류도 물 가운데 물 없이는 살 수가 없으며, 공기인 하느님의 숨결인 성령 없이는 못 사는 것입니다.
마치 태아가 어머니의 산소 호흡 없이는 살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도 자식을 낳아서 길러 보신 분은 어머니의 자비와 은혜와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를 느끼기 위해서는 말씀을 읽고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요한 14,23).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 가면 말씀의 열매인 사랑을 느끼고, 만지고, 보고 만나게 됩니다. 이웃 사랑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도하는 것이 이웃 사랑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고 하십니다.
갈라 5,22~23 에 보면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 등의 9가지 성령의 열매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천주교에서는 친절이라고 번역을 했고 개신교에서는 자비라고 번역해 놓으신 말은, 헬라 원어에서는 "크래스토테스" 즉 "그리스도 "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주는 것이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루가 11,41)." 에는 "Ev(엔) eimi(에이미)" 즉 안에 있는 "호 로고스" 로 자선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물론 육적인 자비는 배고픈 사람들에게는 음식을 주고 헐벗는 사람들에게는 옷을 주고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집을 주는 것이 자선이고, 토비트서에서 처럼 죽은 사람들을 장사지내 주는 것이 육적인 자선이지만, 죽은 영혼을 살리기 위하여 생명의 말씀을 주는 것이 영적인 자비인 것입니다.
중풍병자를 예수님께서 고쳐 주시면서 영적인 난치병인 중풍병자는 율법에 매어 있는 사람들인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과, 오늘날의 기복 신앙과 율법에 매어있는 성도들을 영적인 중풍병자라는 것입니다.
자비의 못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령 안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육적인 병뿐만 아니라,영적인 병(죄)까지 치유하시는 과정을 예화를 통해서 보여 주시며, 이 영적인 중풍병까지 치유를 받는 것이 하느님의 자비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비의 하느님이시며 자비의 큰 샘물인 베짜타 연못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받고 싶으면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맛들이십시요. 꿀맛같이 달 것입니다.
하느님은 하느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사랑과 용서와 자비로 저희들과 하나가 되고자 하시나, 우리들은 하느님의 뜻을 모르므로 말씀을 들어서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분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받기를 원하나,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베짜타 연못 가운데로 뛰어드는 것이 말씀 안에 뛰어드는 것입니다. 성령의 물 가운데 뛰어들어 물이 발목까지 무릎까지 허리까지 목까지 차올랐을 때(에제키엘 47,4~5),
이제부터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말씀을 읽을 마음이 나오고, 세상을 보는 눈이 기쁨과 사랑과 자비의 눈으로 보며 너무나도 이 세상이 아름다울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아버지의 무서운 사랑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신약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자비하신 어머니의 사랑으로 표현하시고,요한 묵시록에서는 사랑스러운 신랑의 사랑으로 표현을 했습니다(묵시록 19,5~10).
그래서 성령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자비), 선행, 진실 온유, 절제 등은 원어에 보면 다 여성으로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사랑하는 제자 사도 요한에게 "너의 어머니시다." 라고 하시어서 사도 요한은 성모님을 계속 모시고 살았다고 합니다(요한 19,26~27).
교회에는 어머니의 인자하신 사랑이 필요합니다. 가정에서는 우리들을 낳아서 길러 주신 인자한 어머니의 사랑에 감사하면서, 이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허락해 주신 어머니같은 인자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감사하게 사는 것이 지상 천국을 사는 것입니다.
요한 5,1 -그 뒤 예수께서 유대인들의 축제 때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2 예루살렘 양문 근처에 히브리 말로 베짜타라는 못이 있었다.
설명 - 베짜타 못은 은혜의 연못인데 영적으로는 구약에서 야훼 하느님 안에, 공관복음(마태 마르 루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요한 복음에서는 말씀 안에, 요한 묵시록에서는 성령 안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말씀을 깨닫고 말씀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3 그 안에 병든 이와 눈먼 이와 발 저는 이와 손발이 말라비틀어진 이들이 무리지어 누워 있었다. 그들은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절은 생략되어 있으나 스테판 역에 있습니다.)
설명 - 소경, 발저는 이, 손발이 마비된 사람들은 영적으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 즉 율법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우리들도 율법에 매어 있으면 영적인 나병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적인 난치의 병을 치유하시면서 영적으로 천국을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치유하시는 하느님이시라는것을 증거하시는 것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즉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레마(생명의 말씀)로 살리시는 것이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고, 성사인 것입니다. 이 성사들은 말씀 성취로써 이루어집니다.
4 주님의 천사가 때때로 내려와 물을 출렁거리게 했는데, 물이 출렁거린 다음 맨 먼저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되었기 때문이다.(스테판 역에는 생략이 되지 않고 이 성경의 절이 있습니다.).
설명 - 은혜의 못에 맨 먼저 들어간 사람은 기적으로 불치의 병을 치유받았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영적인 뜻은 우리들이 고정관념이나 자기의 의, 편견이나 고집, 율법에 매어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치유를 받는 과정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5 그런데 거기 삼십팔 년이나 앓아 온 사람이 하나 있었다.
설명 - 38년은 광야 40년을 상징합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하느님의 현존(임재)를 느끼고 보고 만나고 듣고 변화가 될 때까지의 기다리는 기간을 상징합니다. 세례받고 3년 만에 하느님을 만난 사람은 3년이, 38년으로 상징됩니다.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 50년만에 주님을 만나면, 50년이 베짜타 연못 가에 있던 중풍병자의 38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6 예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또 이미 오랫동안 앓고 있음을 알고 "낫고 싶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설명 - "낫고 싶으냐?" 병이 낫는 것은 기적을 말하는데 예수님께서는 "낫고 싶으냐?" 하고 믿음을 물으신 것입니다.
7 병든 이가 대답했다. "주님, 물이 출렁거릴 때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가는 동안 다른 이가 먼저 내려갑니다."
설명 - 우리들도 이런 핑계를 잘 댑니다. 우리들도 우리들의 고정관념을 버려야 부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보았으면 "예. 낫게 해 주십시오."하고 믿음만 고백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기도할 때 믿고 기도를 드리면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8 "예수께서 일어나 침상을 들고 걸어 가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9 그러자 곧 그는 나아서 침상을 들고 걸어갔다. 그날은 안식일이었다.
설명 - "침상을 들고 가시오." 라고 할 때 "가시오." 라는 헬라말로 'aipw(아이로)'라는 말은 율법을 버리고 부활을 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들도 우리 안에 매어 있는 것을 버리는 것이 침상을 들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즉 아들에 매어 있는 것, 남편에 매어 있는 것에서 자유가 와야 합니다.
10 그래서 유대인들이 병 나은 이에게 "오늘은 안식일이니 침상을 들고 다녀서는 안 되오." 하였다.
설명 - 안식일은 우리 안에 예수님의 몸을 만들어야 안식일이 됩니다. 그래서 신약에 와서는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고 주님이 부활한 날을 주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율법에 의해서 지키는 것입니다. 즉 율법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11 그가 "나를 고쳐 주신 분이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하자
12 그들이 "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 고 말한 사람이 누구요?" 하고 물었다.
설명 - 영안이 열리지 아니해서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했으므로 잡아가려고 묻는 것입니다(예레아 17,21). 즉 율법에 매어 있어서 영적인 소경들이므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볼 수 있는 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13 그러나 병 나은 이는 그분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곳에 군중이 붐벼서 예수께서 떠나셨기 때문이다.
14 그 뒤 예수께서 그를 성전에서 만나자 말씀하셨다. "건강한 몸이 되었구려. 더는 죄를 짓지 마시오. 아니면 더욱 고약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15 그가 물러가서 유대인들에게 자기를 고쳐 주신 분이 예수라고 알렸다.
16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일을 했다는 이유로 예수를 박해했다.
설명 -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 주시면서 영적인 병인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받는 것을 보여 주시나,하느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하느님의 아들을 박해하는 것입니다. 베짜다 못에 빠지는 것이 성령 세례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또 은혜라는 말로는 '엘레모쉬네' 라는 헬라말이 있습니다. 우리들도 성경을 영적으로 모르면 박해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7 그러나 예수께서는 "지금도 내 아버지께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고 있습니다." 하고 응수하셨다.
설명 -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말씀입니다.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레마 말씀으로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는 안식에 들어가시는 것이 천지 창조를 마치고 7 일째가 안식이며, 이스라엘 민족들이 에집트 광야를 통과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안식이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것이 안식이고 주일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말씀 안에 들어가는 것이 안식이고, 요한 묵시록에서는 성령 안에 들어가는 것이 안식인 것입니다.
18 그래서 유대인들은 더욱 그분을 죽이려고 했다. 이유는 안식일을 어길 뿐 아니라 하느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말하여 자신을 동등하게 내세운다는 것이었다.
아드님의 권한(요한 5,19~30)
예수님과 아버지는 하나이고 예수님 안에서 아버지께서 레마말씀 사역을 하신다는 것이다. 즉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이심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죽은 자들의 부활은 육적으로 볼 때는 무덤에 있던 자의 부활을 말하나, 요한복음 차원에서 영적으로 볼 때는 창세기 3 장에서 뱀의 소리가 들어가서 죽어 있던 영혼이 그리스도 만나서 현재부활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신앙 생활은 하느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베짜타 연못에서 중풍병자를 치유하시면서, 율법을 잘 지키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영적으로 율법을 지켜서는 천국을 못가는 영적인 중풍병자라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나 영안이 열리지 않아서 못보고 안식일에 중풍병자를 치유했다고 트집을 잡는 자들을 살리시기 위하여 무덤에 있는 자들이, 즉 율법(죽음=무덤)에 있는 자들이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들으면 영생으로 현재 부활을 한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또한 예수님이 그리스도 메시아라는 것을 중풍병자를 치유하시는 기적을 통해서 하느님의 신성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진실히 진실히 말하거니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아들도 똑같이(삼위일체 하느님) 합니다.
설명 -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말씀이시기 때문에 말씀레마 사역을 하시는 것입니다. 즉 말씀으로 새 창조를 하시는 것입니다.
20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몸소 하시는 모든 일 (영생을 주는 일)을 아들에게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더 큰 일도 아들에게 보여 주실 것인데 그러면 당신들은 놀랄 것입니다.
21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원하는 이들을 살립니다.
설명 - 죽은 이들은 육으로 볼 때는 숨을 아니 쉬고 무덤에 묻힌 사람을 말하나, 영으로 볼 때는 우리들의 몸에 예수님 아니 계시면 무덤인 것입니다. 성령 즉 말씀이 계시면 성령이 거처하는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22 실상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시지 않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넘겨 주셨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처럼 아들도 공경하도록 말입니다.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않습니다.
24 진실히 진실히 말하거니와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는 심판에 끌려 들어가지 않고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갔습니다.
설명 - 예수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보내신 하느님을 믿는 것이 현재영생이라는 것입니다.즉 율법에 있는 사람은 죽은 자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즉 인자 차원에서는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야 구원이 오나, 아들 차원에서는 구원의 완성 차원입니다.
요한 3.16 에서 "하느님께서는 세상(나)을 극진히 사랑하사 외아들을 보내 주셨으니 그를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는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심판은 말씀 심판을 말합니다(요한 12,48).
죽은 자는 율법 아래 있는 사람, 즉 구약차원에 있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자이고, 산 자는 율법이 사랑으로 완성된 사람입니다(요한 묵시록 3,1). 율법은 선도 악도 아니고 죄를 구별해 주는 기능만 합니다.
즉 X-Ray 사진을 찍으면 폐암이다, 간암이다라고 진단만을 해 주지 치료는 의사가 하는 것처럼, 율법은 죄를 알게 해 주는 기능을 하고 치유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를 치유하실 수 있고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25 진실히 진실히 말하거니와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가 오고 있으니 바로 지금입니다. 과연 듣는 이들은 살 것입니다.
설명 - 성경에서 죽었다라는 말은 구약(율법차원)에서는 육안으로 보니까 숨을 아니 쉬고 무덤에 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하고, 공관복음(마태 마르 루가)에서는 밥을 먹고 숨을 쉬고 있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죽은 자입니다. 요한복음(영차원)에서는 예수님을 믿지만 말씀이 이루어져서 열매인 사랑이 없으면 영생이 없는 자입니다.
요한 묵시록(계시차원)에서는 우리 안에 성령이 거처하지 않고 성령의 열매인 사랑이 없으면, 살아 있다고 하나 영적으로는 죽은 자라는 것입니다. 차원에 따라 죽음도 뜻이 차이가 있게 나타나므로 성경을 읽을 때 잘 묵상하셔야 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죽은 자라는 말은 육에 있고 율법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죽은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 자, 부활한 사람은 율법이 사랑으로 완성된 사람을 거듭난 자 부활한 자라고 하고,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을, 즉 구약차원에 있고 문자로 성경을 보는 자를 영적으로 죽은 자라고 합니다(고린도 후서 3,6).
성경 말씀을 듣고 말씀이 이루어져서 사랑이 오는 사람은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현재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는 뜻은 주님을 만나는 날 또는 오늘날 또는 현재를 의미하며 삼일째 부활한 날을 상징합니다.
26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안에 지니게 하셨습니다.
27 심판할 권한도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그가 인자입니다.
28 놀라지 마시오. 무덤(육=율법) 속에 있는 모든 이가 인자의 목소리를 듣게 될 때가 옵니다.
설명 - 요한복음에서 무덤이란 육체 즉 율법 아래 있는, 영적으로 죽어있는사람들의 육체를 말합니다. 죽은 영혼들에게 생명( 레마)의 말씀이 들어가면 죽음에서 생명으로 변화되는 것이 현재 살아서 오는 현재 부활입니다.
29 선을 행한 사람은 부활하여 생명을 누리고 악를 저지른 사람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30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들은 대로 심판합니다. 그리고 내 심판은 의롭습니다.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찾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뒷받침하는 증언들(요한 5,31~47)
해설: 베짜타 연못에서 중풍병자 치유를 예화로 들어서 불치의 병을 치유하시는 것은 기적이고, 예수님이 그리스도 하느님으로서 구약에서 하느님께서 보내시기로 약속하신 메시아라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영적인 소경이고 영적인 귀머거리들인 것입니다(마태 13,14. 이사야 6,9).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고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말을 듣고 믿는 사람은 죽어서 즉 율법하에 있는 자도 영생을 얻을 것이며, 이미 예수님과 복음을 믿는 자는 죽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 고 말씀을 하셔도 못 알아 들으니까,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하느님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라고 증언하셨습니다(마르 1,11).
세례자 요한이 세례줄 때 예수님의 머리에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고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가시는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가신다." 고 땅에서 증거하였을 때, 세례자 요한의 제자 중 안드레아와 요한이 예수님을 따라 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 즉 중풍병자를 기적으로 고치시는 일을 통하여, 예수님 자신이 하시는 일들이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가 오시면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들이 걸으며, 나병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죽은 이들이 일으켜지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습니다.(마태11,5; 이사 29,18; 35,5~6; 42,18; 26,19; 61,1)." 라고 증언합니다.
또한 성경에서 예수님이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우리들이 예수님이 삼위일체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걷지 못하는 중풍병자가 걸었다는 것은 영적으로는 율법에 있는 사람들을 중풍병자로 비유해서, 율법에 매어 있는 사람이 예수님의 복음 말씀이 들어 가니까 일어서서 즉 부활해서 삶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과거나 현재나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믿고 신앙생활을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예화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늘나라(천국)라고 하고, 요한복음에서는 하늘나라를 영생 또는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31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증언한다면 참되지 못합니다.
32 나에 대해 증언하시는 분은 다른 분(성부를 말합니다.)입니다. 나는 나에 대해 증언하는 분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33 당신들은 요한에게 사람을 보냈고 그는 진리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34 그러나 나는 사람의 증언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당신들이 구원 받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35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발하는 등불이었고 당신들은 잠시 그 빛속에서 신명내려고 했습니다.
36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인보다 큰 증언이 있으니, 곧 아버지께서 내가 이루도록 맡겨 주신 일들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바로 그 일들이 나에 대해 증언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설명 - 바로 그 일들에서, 이 일이라는 것은 생명의 말씀을 주어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일을 말합니다(요한 6,40).
37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에 대해 증언하셨습니다. 당신들은 그분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없고 그분 모습을 본 적도 없습니다.
38 또 그분이 보내신 이를 믿지 않기 때문에 그분 말씀이 당신들 안에 머물게 하지도 않습니다.
39 당신들은 성경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경을 연구하고 있지만 바로 그 성경이 나에 대해 증언하고 있는데도
설명 - 성경이라는 말은 "그라포" 즉 "기록하다"라는 어원에서 "그라페"라는 말이 나왔는데 "기록"이라는 뜻입니다. 의역을 해서 성경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40 생명을 얻으려 내게 오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설명 - 영생의 양식인 성경 말씀을 먹고 마시면 영생이 오는데 이 성경 말씀을 거부하는 것이 성령 거부이고 죽음인 것입니다.
41 나는 사람들한테서 영광을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설명 - 사람의 힘으로는 고칠 수 없는 난치병을 고치시는 분은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예수님께 영광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영광 받으려 오신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42 나는 당신들을 알거니와, 당신들 안에는 하느님의 사랑이 없습니다.
43 내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는데도 당신들은 나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설명-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고 예수님이 그리스도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죽음인 것입니다(이사 6,9).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온다면 당신들은 그를 받아들일 것입니다.
44 어떻게 당신들이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서로 영광을 주고 받으면서도 오직 한분이신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찾지 않으니 말입니다.
설명 - 고난과 박해를 받고 육이 죽고 영으로 부활하는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고 육적인 생각과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45 내가 아버지께 당신들을 고발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시오. 고발할 이는 당신들이 희망을 걸고 있는 모세입니다.
설명 -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는사람입니다. 율법은 죄를 분별하는 기능을 하지 죄를 사해줄 수는 없습니다. 율법은 마치 X-Ray 와 같은 기능을 합니다. 폐사진을 찍고 폐암이다라고 진단만 할 수 있지 병을 치유 할 수 없으며, 의사가 치료를 하는 것처럼 율법의 기능은 죄를 알게 해 주는 분별력은 있지만 죄를 사해줄 수 는 없고, 예수님 만이 죄를 사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46 만일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을 것입니다. 그가 나에 대해 썼기 때문입니다.
47 그러나 그의 글을 믿지 않으니 어떻게 내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