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나지 않으려는 예수(내 안에 성령의 열매인 사랑으로 숨어 계신)와 형제들의 불신(요한 7,1~13)
해설 > 요한복음 6장에서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주었으나 12사도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제자들이 모두 떠나갔습니다. 생명의 양식을 먹었지만 말씀화가 아니되고 믿음화가 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못보는 사람이고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말씀화되고 믿음화 되어서 기도하는 성전이 이루어져 있는 사람들과, 말씀을 깨닫지 못해서 말씀화가 아니되고 믿음화가 아니된 사람들이, 형제들의 불신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므로,
이 사람들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요한 8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구원시키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음한 여인이라는 것이고, 믿음화 되고 말씀화 되어 있는 사람과 믿음화가 아니되고 말씀화가 아니된 사람으로 갈라진 것이 요한복음 7장입니다.
예수님이 말씀으로 내 안에 아니 계시면 영적인 신랑이신 예수님이 내 안에 없으므로 간음하는 여인이고, 하느님과 관계가 없음으로 영적인 고아이고, 영적으로 이방인인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들이 성경 말씀을 뜻도 모르고 문자로 먹으면 간음한 여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서 사라지면, 예수님을 떠나면 영적으로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숨으신 것은 육적으로 보면 우리를 떠나서 숨으신 것이나, 영적인 요한복음에서는 내 안에 사랑으로 계시는 예수님이 내 안에 미움이나 분노로 가득차 있으면 아가페 사랑인 하느님의 사랑이 내 안에서 없어지는 것을 숨으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빵과 생명의 말씀을 뜻도 모르고 먹었기 때문에 "우리들이 식인종인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으라고 한다." 고 잘못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살과 피가 말씀의 살과 말씀의 피라는 것을 뜻을 모르고 먹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떠나간 것이 영적으로는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빵을 모르고 먹는 자가 어둠인 죄에 있기 때문에 생명이시고 빛이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빛이고 율법은 어둠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율법인 어둠에 있는 것이 영적으로는 간음을 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8장에서 현장에서 육적인 간음한 여인을 예수님께서 용서를 하시면서우리들도 빛이시고 사랑이시고 복음인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이 어둠에 있는 사람이고, 영적으로 간음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예화를 들어서 구원시켜 주시는 과정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느님이 성령의 열매로 내 안에 계시는 것을 못 보는 이유는 우리들의 마음의 본능인 육체의 소욕 때문에 눈이 어두어져서 못보는 것입니다. 미움 때문에 사랑을 못 보고, 싸움 때문에 평화를 못느끼고, 분노 때문에 용서를 못하는 이유는나의 마음의 Ego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의 마음이 죽기 위해서는 심령에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9~13까지 주님의 기도가 나오고, 마태 6,14~15 에서 "용서하면 용서를 받는다."라고 하시는 말씀은 주님의 기도가 이루어져 있는 사람이 용서가 나오는데 용서는 우리들에게는 없고 하느님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들 안에 오셔서 사랑으로 율법과 은사를 완성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9장에서 소경을 치유하시면서 간음하는 여인을 율법으로 보고 돌로 쳐죽이는 것은 영적인 소경이고, 그 여인이 간음한 것은 빛이시고 생명이신 예수님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간음했다고 보고, 이제 예수님께 와서 생명을 얻었다고 보는 사람은 영적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즉 "사랑으로 보는 사람이 보는 사람이고, 율법으로 보는 사람은 못 보는 사람입니다."
우리들도 문자나 율법으로 성경을 보고 아가페 사랑으로 살지 못하고, 세례 때 원죄 사함은 받았지만 선악과의 열매의 여독으로 남을 판단하는 삶을 살아가면 십자가상의 예수님께 못을 내가 박아서 매일매일 예수님을 박해하고 죽이는 가리옷 유다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요한 7,1 - 그 뒤 예수께서는 갈릴래아를 돌아다니셨다. 인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해서(요한복음 6장에서 생명의 빵을 먹는 자도 말씀화가 되지 못하고 믿음화가 되지 못하면 예수님을 죽일려고 하는 것입니다.) 유다에서는 돌아다니기를 원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 유대인 축제인 초막절이 다가왔다.
설명- 유대인의 삼대 축일은 1.과월절(유월절=파스카=해방절) 2. 오순절. 3.초막절(레위기 23,15)
3 그분 형제들(마태 13,55)이 말했다."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서 당신 제자들도 당신이 하는 일들을 보게 하시오.
4 어느 누구도 숨어서 무엇을 행하면서 자신이 드러나게 알려지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이런 일들을 행할 바에는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 보이시오."
5 사실 예수의 형제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다.
6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때(ego : 죽음인데 이 에고가 번민 갈등을 만들며죽어 있는 자가 늘 불평을 하는 것입니다.)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의 때는 언제나 와 있습니다.
7 세상이 당신들을 미워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내가 세상에 대해 그 행실이 악하다고(영적인 죄를 예수님께서 지적을 하시니까.)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8 당신들이나 축제를 지내러 올라가시오. 나는 이번 축제에는 올라가지 않겠습니다. 아직 나의 때가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9 이렇게 말씀하시고 예수께서는 갈릴래아에 머물러 계셨다.
10 그런데 당신 형제들이 축제를 지내러 올라간 뒤에 예수께서도 올라가셨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게 남몰래 올라가셨다.
설명- 숨으신 것은 우리들 안에 있는 어둠인 육의 열매 때문에 예수님의 속성인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숨으셨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분노의 마귀 때문에 참 평화가 없어지고 미움의 마귀 때문에 아가페 사랑이 없어지는 것이 예수님이 숨으신 것입니다.
성령도 인격체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이라고 부릅니다. 성령의 열매도 우리 안에 계시는 인격체의 하느님이시므로 사랑의 하느님, 기쁨의 하느님, 평화의 하느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인격체의 하느님이신 사랑의 하느님이 숨어 계시다가 우리들의 어둠을 하나씩 걷어내면 드러내 나타나 보이시는 하느님이신 것입니다. 모두가 육의 본능인 우리들의 ego인 마음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사순시기에 마음에 있는 한 가지씩 나쁜 습관을 버립시다. 나는 이번 사순시기에는 교만의 마귀를 버리기로 작정하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있습니다.
11 축제 동안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아다니며 "그가 어디 있느냐?"고 하였다.
12 군중 사이에서도 그분을 두고 수군거리며 말들이 많았는데, 더러는 "좋은 분(헬라말로 '아가도스'는 '좋다, 선하다' 즉 '하느님이시다' 라는 뜻입니다.)이다." 하고, 더러는 "아니다. 군중을 속인다." 하였다.
13 그렇지만 유대인들이 무서워서 그분에 관해 드러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초막절 축제 중 성전에 나타나시다(요한 7,14~24).
해설> 요한 5장에서 안식일에 중풍병자를 고치신 것을 바리사들이 율법으로 보고 예수님을 비난하니까, 율법으로 보는 것이 어둠으로 보는 것이고, 영적인 소경이고, 간음하는 여인이며,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인 사랑으로 보는 것이 빛이고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을 완성시키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풀어주시고 요한 6장에서 예수님의 살과 피는 참 생명의 양식인데 이 생명의 말씀을 통해서, 율법에 매어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시 구원을 시키는 생명의 복음 말씀을 주시고 풀어 주어서 말씀의 열매인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시켜야 하는데도 율법을 완성을 못시키는 이유는, 이 말씀이 믿음화가 되지 않고 말씀을 깨달아서 말씀화가 되지 않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시키기 위해서이다.
다시 초막절에 성전에 나타나신 것은 성전의 주인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 주시며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이 구세주라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성전인 사람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보지만 장사하는 성전에 있는 사람은 어둠인 율법에 매어있고, 육의 열매인 시기, 질투, 싸움, 미움 등에 있으므로 성령의 열매로 내 안에 계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못 보는 것입니다.
구약과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시공간의 복음이므로 성전에 나타나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차원에서는 성령의 열매로 내 안에 숨어계시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안식일이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안식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초막절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몸을 만드는 날입니다.
성전은 성전의 주인이 예수님이시므로 내 안에 예수님의 몸이 이루어진 사람을 성전이라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우리 성도들이 성경을 문자로 보고 육안으로 보고 말씀을 먹으면 영적인 소경이고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7,14 축제가 중반에 이르러 예수께서 성전으로 올라가 가르치시는데 (레마로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15 유대인들이 놀라며 "이 사람이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성경을 알까?" 하였다.
16 예수께서 대답해 주셨다. "내 가르침은 내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것입니다.
17 누가 하느님의 뜻을 행하고자 한다면 그는 이 가르침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스스로 말하는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설명- 하느님의 가르침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하고 우리들의 가르침은 소리인 것입니다.
18 스스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 영광을 찾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보내신 분의 영광(요한 17,4)을 찾는 그 사람은 진실하고 속에 불의가 없습니다.
설명- 자기 영광(세상의 영광)과 하느님의 영광이 있는데 예수님께서도 큰 일을 하시고는 숨으신 것은 세상의 영광을 받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봉사를 하신 다음에 사람들로부터 오는 영광을 우리들이 받으시면 하느님께 바쳐야 할 영광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모든 영광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19 모세가 율법을 주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당신들 가운데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 나를 죽이려 합나까?"
설명- 율법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다 지킬 수가 없는 법이고, 아가페 사랑만으로서 율법을 완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우리들 안에 오셔서 사랑으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20 군중이 대꾸했다. "당신은 귀신 들렸소.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한단 말이요?"
설명- 생명의 말인 레마가 나오지 않으면 영적으로 영혼을 죽이고 사람들에게 말로서 상처를 주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인 레마가 나오지 않는 사람은 영적으로 살인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21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한 가지 일을 했을 뿐인데 당신들은 모두 놀라고 있습니다.
설명- 한 가지 일을 했다는 뜻은 안식일에 38년이나 병으로 앓아온 중풍병자를 고쳤다고 시비를 걸어오는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요한 5,2~9)
안식일에도 할례(세례 예표)를 할 수 있는 것처럼,안식일에도 병자를 고치는 것을 통해서 죄사함 받는 것을 보여 주시는데, 바리사이들이 어둠에 있기 때문에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8장에서 성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이 영적으로 간음하는 여인이라는 것입니다.
22 모세가 당신들에게 할례를 주었습니다.(모세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구원 사역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실상 할례는 모세가 아니라 선조들에게서 비롯했거니와 아무튼 당신들은 안식일에도 할례를 베풉니다.
설명- 구약에서 베푸는 할례는 신약의 성령세례의 예표이다(마태3,11).
23 모세의 율법을 어기지 않고도 할례를 받을 수 있다면 내가 안식일에 사람 하나를 온전히 고쳐 주었다고 해서 왜들 분개합니까?
24 겉모양을 보고 심판하지 말고 의로운 심판을 하시오.
설명- 율법에서는 겉모양을 보고 판단을 하지만(마태 7,1), 복음이신 예수님은 속 마음을 보시고 판단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늘인 예수님의 마음은 영이고 빛이시고 우리들의 마음은 율법이고, 어두운 구름이고, 땅이 어둡고 혼돈 상태이므로, 날씨가 개었다가 흐렸다가 하는 것처럼, 기뻤다가 슬펐다가, 고통이 있다 없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가 열매로 내 안에 있을 때 겉모양을 보고 판단하지 않고 사랑으로 보고 사랑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