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의 서론(머리말 요한 1,1~18)

2012. 8. 1. 오전 11:16:15

글자


요한복음의 서론(머리말 요한 1,1~18) 

 요한복음 1,1~18 은 요한복음을 요약해 놓은 것인데 이것을 서론이라 하고, 머리말이라고도 합니다. 
 요한복음 1,19~12.36 까지의 내용은 서론의 예화를 들어서 설명해 주고, 
 요한복음 12,48 에서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 심판으로 서론을 다 설명하시고 끝을 맺습니다.

 요한복음 13장,14장,15장,16장,17장에서는 지상에서 천국이 이루어지는 길을 직접 계시해 주시고, 
 요한 18장 19장 20장 21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수난 받고 죽고 부활하셔서 천국을 완성하시고 성령을 보내시어, 제자들을 통해서 교회에서 천국가는 길을 인도할 것을 교회에 맡겨놓고 가셨던 것입니다.

 마태오복음, 마르코복음, 루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 하느님이시다는 것을 기적을  통해서, 구약성경을 통해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셔서 말씀으로 우리들 안에 오셔서 사랑과 용서로 일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에서는 7가지 기적을 예화로 들어서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하십니다. 
 실제로는 더 많지만 상징적으로 7 이라는 숫자가 완전 숫자이므로 7 가지 기적이라고 합니다.

 (1) 요한 2.1~12 : 물(육을 상징)을 포도주(신성을 상징)로 변화시킴

(2) 요한4,46~54 : 왕궁관리의 아들을 치유함(영적 치유 말씀 치유)

(3) 요한 5,1~16 : 중풍병자 치유(우리들은 모두 영적 중풍병자들임)

(4) 요한 6,1~13 : 많은 군중을 먹이심(육의 양식을 먹이면서   영의 양식인 말씀의 살과 말씀의 피를 먹이시는 것을 계시해 주심)

(5) 요한 6,16~21 : 물위를 걸으심.
세례를 상징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월절(유월절
=빠스까)에  어린 양을 잡아서 피를 문설주 와 상인방에 발랐기 때문에 맏아들이 살았지만, 애굽 사람들의 맏아들은 과월절의 어린 양의 피를 바르지 않아서 모두 죽었던 것입니다. 
 그 후 홍해를  건너서 광야를 지나서 요르단강을 건너간 후에 가나안 땅에 들어서 육적인 해방을 맞이한 것처럼, 
신약의 성도들도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말씀의 살과 말씀의 피를 먹고, 물인 세상을 건너서 영으로 들어가서자유와 평화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6) 요한 9,1~7 :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심 
실제로 소경을 치유하시면서, 율법에 있는 바리사이들이 영적인 소경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용서와 사랑이 없으면율법에 매어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7)요한 11,1~14: 죽은 나자로를 살리심 
죽은 나자로를 살리시는 하느님이시
라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나는 현재 부활이요, 현재 영원한 생명" 이십니다. 헬라 원문에는 "에고 에이미 헤 아 나시스 카이 해 조애" 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더욱 자세하게 해설을 하겠습니다.

요한복음은 영의 복음이므로 영안으로 해설을 하니까, 영안으로 보셨으면 합니다.

 요한 1,1 - 맨 처음 말씀이 계셨다.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설명- '맨 처음' 이라는 말은 헬라말로 'Ev(엔이라는 뜻은 영어로 in 이라는 뜻입니다.)    apxh' 인데, * 아르케 라는 말은 영어로 origine 이며 근원 또는 시작 beginning 이라는 뜻이 있지만, 요한복음은 시간 공간이 없는 영의 복음이므로 내가 태어나고 죽고 살고 하는 모든 근원이 삼위일체 하느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앤알케'라는 헬라 말은 시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태와 존재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엔’이라는 말은 in(안)이라는뜻이고, '아르케'는 처음 또는 근원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이나 공관복음에서는 시간 공간이 있으므로 시간적인 의미로 사용을 해도 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시공간이 없으므로 '아르케'를 origin(근원) 또는 상태, 존재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생명과 죽음과 모든 것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말씀의 사역, 특히 레마 사역입니다.  예수님이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오시기 전에는  호 로고스(말씀)로 계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도 영원히 계신다는 것입니다.
  * Ev(엔) - 이 엔동사는 직설법 미완료 동사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과거 현재 미래 계속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라고 했는데 말씀이 하느님이셨다는 말은 이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 성자'이시라는 것입니다.

 'EV APxh'이 '엔 아르케' 라는 말은 성령이라는 뜻입니다. ’  예수님이 하늘에서는 성부와 같이 계실 때는 말씀으로 계셨지만  이 세상에 육화되어 오셨을 때는 성자라고 하며,  성부, 성자, 성령으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2  그분은 맨 처음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설명- 그분은 성자를 가리킵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 계속해서 계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세기 1,1~2,4 에서 천지창조를 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말씀과 관계를 맺을 때 생명(조애=영생)이 오는 것입니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설명- 말씀이 계셨는데 이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시고 이 말씀이 영원한 생명인데 이 생명은 빛으로 나타납니다. 말씀과 관계를 맺을 때 생명이 오고  이 생명은 빛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빛은 어둠을 비추는 역할을 하는데 이 빛은 좋은 행실 열매로 나타나고,성부 성자 성령의 열매이며 말씀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갈라디아서5,22~23)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5  빛이 어둠 속에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설명- 어둠은 죄를 말하며 육에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빛은 예수님을 말합니다(요한 8,12). 
'받아들인다'의 헬라말은 '카타람바노' 인데 이 말의 뜻은 '강하게 꼭 예수님을 붙잡고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 존재하는 말씀과 관계를 맺을 때 생명이 오고 빛으로 나타나는데, 이 빛은 좋은 행실로 나타나는데 좋은 행실은 어둠을 비추는데  죽어 있는 영혼을 말씀을 주어서 살리는 것이 좋은 행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빛과 소금 역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서론(요한 1,5~11)

 

요한 1,5 - 빛이 어둠 속에 비추고 있건만 어둠은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설명- 빛은 요한복음에서는 세상의 빛을 말하지 않고 진리의 빛이신 예수님 즉 말씀을 말합니다.

 창세기 1,3 - 빛을 창조하심.
요한 8,12 -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심.
묵시 21,23 - "어린양이 등불이시다." 라고 하심
묵시 22,5 - 주님 하느님이 그들 위에 빛을 비추시기 때문입니다.
이 빛은 말씀과 관계를 맺을 때 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빛과 낮은 말씀을 말합니다. 우리들도 말씀화가 됐을 때  빛인 오라(aura)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은 밤으로, 공관복음은 새벽으로, 요한복음은 낮으로, 묵시록은 저녁으로 성경에서 나타납니다. 요한복음 전체해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어둠과 밤은, 율법 즉 육에 있는 사람을 말하며 죄중에 있는 세상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어둠에 있는 세상 사람들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빛이 들어와서 어둠을 비추기 때문에 자기들의 어둠인 죄가 드러나기 때문에 죽지 않으려고 빛인 말씀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말씀 거부하는 자는 성령 거부하는 사람이며 죄의 용서를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영으로 깨닫지 못한 사람들을 빛을 못보는 영적 소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서에서 예리고의 소경을 치유하시면서 율법에 있는 바리사이들이 영적인 소경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 9장에서도, 요한복음 8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율법으로 보고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영적인 소경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9장에서 실제 소경을 치료하시면서 바리사이들을 보고 너희들이 율법으로 보는 것은 소경이고 못보는 사람들이고, 복음인 사랑으로 보는 것이 보는 사람이고, 사랑은 생명을 주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지만 모르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실 때 육안으로 보면은 세상 살아가는데는 필요하나, 천국을 가는데는 예수님의 눈으로 영안으로 보셔야 영생이 오는 것입니다.

 6  하느님이 보내신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한이었다(마태 11,2~6).

 7  그는  증언하러 왔으니 빛에 관해 증언하여 그(예수님)를 통해 모두가 믿기 위함이었다.

 8  그는 빛이 아니었으며 다만 빛에 관해 증언하러 왔다.

 9  말씀이 참된 빛이셨으니 그 빛(예수님)이 세상에 오시어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10 그분(말씀인 예수님)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나도 포함됨)이 그분을 통해 생겨났건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설명- 예수님께 못 가는 것이 죄이고,  요한 5,39 에서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인데, 이 성경은 예수님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말씀을 깨닫는 것이 영생입니다(요한 17,3).
 세례자 요한이 빛이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역할을 우리들이, 성도들이, 말씀 증거함으로써 세례자 요한의 사역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11  그분이 당신 땅(말씀으로 창조하신 땅)에 오셨건만 그분 겨레는 맞아들이지 않았다.

 설명- 말씀이신 빛을 맞아들여서 빛과 관계를 기쁘게 맞이하는 것이,  땅인 우리들 마음에 하늘에서와 같이 하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주님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의 빛을 보지도 못하고 깨닫지 못해서 맞아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마태 2장에서 동방박사들은 큰 별(예수님 상징)을 보고 맞이하러 별을 보고 따라왔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서론(1,12~14)

 1,12 - 그러나 당신을 맞아들이는 이들 곧 당신 이름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는 하느님 자녀가 되는 권능을 주셨다.

 설명-  '맞아들인다' 는 말은 헬라말로 '람바노' 인데 이 동사는 직설법 과거 능동태로서 과거에 세례를 통하여 예수님을 맞이하는 것이며, '카타 람바노' 는 맞아들이는데 꼭 붙잡고 맞아들이는 것이고(요한 1,5),   '파라람바노' 는 기쁘게 맞아들이는 것이다.
 람바노(맞아들임)은 요한 15,3에서는 참 포도나무인 예수님과 가지인 사도들이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는 것처럼 우리들도 하느님의 말씀과 관계를 맺어야 생명이 오는 것입니다.

 마태 24,40 에서  "그 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둡니다. "고 했는데, 이 때  '데려간다' 는 말이 '파라람바노' 입니다. 
 여기에서 두 사람으로 볼 수 있지만 영적인 차원으로 보면 우리들 안에 있는 영은 데려가고 육은 놓아둔다는 의미입니다.

 믿는다' 는 동사는 '피스테오' 인데 현재분사 능동태입니다.
Time is now on.  믿음은 계속해서 현재이며, 과거와 미래의 신앙이 아니라 현재에 존재하는 신앙입니다.

 과거 세례로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현재 믿는 사람들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능을 주시고  요한복음 차원에서는 하느님의 자녀인 성도들이 되며 예수님의 족보인 생명의 책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성도들이라고 합니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에서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이들이다.

 설명-  '혈통'은 헬라말로 '하이마'이고  '육욕'은  '사르크' 인데       이것은 피와 살이라는 뜻인데 이는 동물성이라는뜻이며, 하느님의 자녀는 '호 로고스 사르크' 인즉 말씀화가 되어서 말씀육신 되어진 자들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의미입니다. 
 요한 3,5에서는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육신이 되어진 자가 부활한 자이며 살아 있으니까 아가페 사랑이 나오는 것입니다.

 14  정녕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거처하셨다.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로부터 오신 외아들다운 영광이라 그분은 은총과 진리로 충만하셨다.

 설명-  '가운데'라는 말도 헬라 원문에는 'ev(엔)' 동사인데  이 엔동사는 영어로는' in' 이라는 뜻으로 안에 즉 '우리들 안에' 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가 말씀으로 성령으로 내 안에 들어와서 말씀화가 되는 사람은고통도 없고 눈물도 없고 슬픔도 없고 죽음도 없는 것입니다(묵시 21,4). 
이런 상태가 영광을 받는 상태이며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상태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보는 사람이 보는 사람이고,성경 안에 있는 주님의 뜻을 보는 사람이 영적인 소경이 아니고, 성경이 아니 보이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영적인 소경이라 합니다.

 요한 9장에서 실제로 소경을 치유하시면서 율법에 매어 있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보고 영적인 소경들이라고 예수님께서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은총은 헬라말로 '카리스' 라는 뜻은  우리말로는 은혜 또는 은총이라는 뜻입니다.'카리스'라는 말은 '카리조마이(루가 7,43)' 라는 말에서 나왔고,  이 '카리조마' 는 은사라는 '카리스마(로마서 5,16)' 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같은 뜻으로 은혜 또는 은총 감사라는 뜻으로 성경에서 사용되었읍니다.
'카리조마이' 는 선물을 받았다, 은총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하느님 입장에서는 구원의 선물인 예수님을 우리한테 보내 주는 것이 은총이고, 우리들 입장에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물로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를 받는 것이 적으로 은혜 받는 것입니다.
물론 육적인 은혜는 기도를 통해서 재물 축복 받는 것이 육적인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과 심령이 죽는 것이 은총입니다.우리들의 마음이 죽어서 화가 없어지고 미움이 없어지고 시기 질투가 없어져서 미움 자체가 없고 자체가 없는 사람으로 변화가 됐을 때, 우리들의 본성이 없어지고 예수님의 성품으로 변화된 것이 부활이고 우리들이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오셔야 우리들의 마음이 죽는 것이므로 말씀을 받았을 때 은혜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1 에서  "아버지 제가 영광 받을 때가 됐습니다.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고 제가 영광을 받을 때입니다."  
이 '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아 죽으실 때입니다.

 우리들도 심령을 죽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으로 부활하였을때 하느님께 산 제물로 봉헌(로마서 12,1)하는 것이 하느님께 영광을 바치고  동시에 우리는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이럴 때 미움을 가진 사람이 사랑의 사람으로 변하고, 싸우는 사람이 평화의 사람으로 변합니다.
즉 심령의 변화를 심령의 부활이라고 합니다.

 진리라는 말은 헬라말로 '알레데이아'인데 이 말의 뜻은 숨겨져 있는 '뜻이 열린다.'는 뜻입니다.
 즉 성경 말씀을 영적으로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때 성경을 본다고 하고 만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은총을 받았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인 진리 말씀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성령의 은사와 열매도 이 때 은사, '카리스마' 라는 이 헬라말은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믿 음도 은사입니다(고린도 전서 12,9).

 그래서 가까운 친척이 세례를 받지 않으려고 할 때 기도를 해야 주님께서 그분의 마음을  움직여서 세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주님께서 은사 은혜의 선물로서 우리들에게 내려주시는 느님의 은총(은혜)입니다.  칠성사도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인 은사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이 모든 영적인 선물을 공동 유익을 위하여 서로서로 도우면서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도록 기도하고 말씀을 깨닫고  말씀(레마)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요한복음 서론(1,15~18) 

 1,15 - 요한은 증언하여 외쳤다. "이 분을 두고 나는 말했소. 내 뒤에 오시는 분이 나보다 앞서게 되셨으니, 나보다 먼저 계셨기 때문이오."

 설명- 세례자 요한의 말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외아들이시라는 것을 예수님의 신성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 증거는 성령께서 세례자 요한의 입을 통해서 예언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성령의 감화를 받아서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했듯이 하느님의 말씀을 증거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9~11에서 동방의 세 박사가 별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와서 경배를 드리고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이 나보다 먼저 앞서 계셨다'고 한 말은, 헬라말로  hv(앤동사)는 미완료 동사로서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계속해서 계시는 지존자이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세례자 요한보다 먼저 계신다고 한 것입니다.

 16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은혜)에 은총을 받았다.

 설명- 충만이라는 말은 헬라말로 '프레로오' 인데 말씀의 열매인 사랑(갈라디아서 5,22~23)은 계속 주어도 흘러 넘치는 것입니다.  기쁨도 슬플 때나 기쁠 때나 계속해서 기쁨이 오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상태가 충만한 상태이고, 주님의 부활 영광을 받는 상태입니다(요한 묵시록 21,4)

 17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어졌지만 은총(은혜)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왔다.

 설명- 시나이산에서 모세는 10계명을 받았으며  예수님은  시온산에서 복음의 핵심인, 마태 5장, 6장, 7장을 제자들에게 산상 설교하셨던 것입니다.

 율법은 613개의 율법을 다 지켜야지 한 가지만 못 지켜도 정죄가 됩니다(갈라디아서 3,20).
 모세는 기적의 은사로, 예언의 은사로 하느님을 보았지만 직접 얼굴을 못 보았습니다.(출애 33,17~34,9. 출애 33,11. 신명기 34,10)

 요한 1서 1,1 에서 요한 사도는 성령의 열매인 사랑의 하느님을 직접 뵙고 외칩니다. 눈으로 보고 살피고 또 손으로 만졌던 생명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정죄가 없습니다(에페소서 2,8).
 십계명도 사랑으로 풀어서 완성을 하셔야 하며 십계명을 예수님께서는사랑과 용서의 하느님으로 우리들 안에 오셔서 완성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명령형은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우리들 안에 오셔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용서하는 경우가 있으면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하시는 것이므로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은혜(은총)는 우리들이 죽는 것이 은혜입니다.

 육의 열매(갈라디아서 5,19)인 시기, 질투, 미움 등의 열매에서 우리들의 심령이 죽고, 성령의 열매(갈라디아서 5,22~23)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 등의 하느님의 성품으로 변화되어야 하는데  이 때 고난과 죽음을 통과한 다음에  부활 영광이 오기 때문에, 
고린토 전서 1,18에서는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음이지만 구원받는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능력입니다. 고난받고 죽고 부활하는 것입니다.

 의인들의 고난과 성도들이 받는 고난은 믿음을 한차원 높이기 위한 것이고 구원받기 위한 것이지만, 죄인들의 고난은 심판을 내리기 위한 고난입니다. 성도들이 고난을 통해서 심령이 죽는 것이 은총을 받는 것입니다. 
 이 말을 문자로 보고 육신의 자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살은 죄입니다. 구원과 심판은 동시에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우리들도 그리스도와 함께 육은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심령의 부활에 참여하도록 기도합시다.

 18  일찍이 아무도 하느님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 품안에 계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이 알려 주셨다.

 설명- 요한복음 14,8~9 에서  필립보는 예수님께 "아버지(성부)를 뵙게 해주십시요." 하고 간청하니까, 예수님께서 "3년 반이나 나와 함께 있으면서 나를 못 보았다는 말이냐?  나를 보았으면 아버지를 본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육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영안으로 보는 것인데,   성부, 성자, 성령은 말씀의 열매인 사랑으로 예수님 안에 계시기 때문에 아가페 사랑으로, 사도들 안에, 성도들 안에 계시는 그 사랑으로 만나고 보고 느끼라는 것입니다.

 하늘에 예수님이 계실 때는 말씀(호 로고스)으로 계셨던 하느님이셨는데,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지상에 오신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구원의 선물로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3,16 에는  "하느님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사 외아들을 보내주셨으니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아는 말씀이 육신의 옷을 입고 오셨으므로,매년 크리스마스 낮 복음이 요한복음 1,1~18을 낭독하는 것이며, 매일매일 말씀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인자의 내림은 성경 말씀으로 오시기 때문에 성경말씀 읽고 묵상하고 미사 참례를 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으로 오시는 메시아를 맨 먼저 세례자 요한이 증거합니다(요한 1,19~28).   우리들도 말씀 증거하면서 세례자 요한의 사역을 해야 합니다.

 서론을 마치고 다음부터는 예화를 들어서 서론 부분을 설명하겠습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말씀터나누기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