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는 사제를 필요로 한다.

2007. 8. 4. 오후 7:52:10

글자
 
 
 
    8월 4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마태오 14장 1-12절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사제는 사제를 필요로 한다>
    
    
    최근 며칠 동안 에밀 브리에르 신부님의 ‘사제는 사제를 필요로 한다’
    (분도출판사)는 영성서적을 읽고 크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절이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사제적 위신과 지위에 대해 그리고 사제들이 품고 있는 욕구에 대해 아주 
    특별한 변칙이 있음을 가끔 보게 된다. 이 욕구는 사제관이든 사제 양성소이
    든 어디에도 침투되어서는 안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데 답답함이 있다.
    
    
    사제들 간에 오가는 대화에 귀를 기울여 보라. 더 큰 본당을 추구하고 신학교
    나 대학의 학장 자리나 명예롭고 존경받는 지위를 주제로 하고 있음을 가끔 
    듣게 된다.
    
    
    아르스의 성자 비안네 신부는 전체 신자 수가 230명 정도 밖에 안 되는, 다 
    쓰러져가는 작은 시골 본당 주임 신부로 발령을 받게 되었는데, 주변 사람들은 
    비안네 신부가 뭔가 큰 잘못이라도 저질렀기에 문책성 인사를 당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비안네 신부는 230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영혼을 책임지고 있다는 생각
    에 두려워 몸까지 떨었다고 한다.”
    
    
    
    비안네 신부의 성소여정에 가장 큰 후원자였던 발레 신부가 세상을 떠나자 담당
    주교는 비안네 신부를 불러 아르스로 가라고 당부하였습니다.
    
    
    
    “비안네 신부, 미안하지만 아르스로 좀 가 주어야겠네. 그 본당 신자들은 
    하느님을 별로 사랑하지 않는다네. 
    자네가 가서 그곳에 하느님 사랑을 좀 심어주었으면 하네.”
    
    
    
    아르스에 도착한 비안네 신부님은 드디어 첫 번째 주일 미사를 신자들과 
    함께 봉헌하게 되었습니다. 
    신자들은 비안네 신부님의 행색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창백한 얼굴, 여기저기 툭툭 튀어나온 뼈들, 가냘픈 몸집, 수줍은 표정, 더듬
    거리는 말투, 흙 묻은 신발, 거친 천의 수단... 그 행색이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너무나 없어보였습니다.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 신부님을 본 신자들은 이렇게 수근 거렸습니다.
    
    
    “저 꼬락서니 좀 봐! 저러니 이런 시골까지 쫓겨 왔겠지.”
    
    
    세월이 흘러가면서 비안네 신부님의 덕행은 영롱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의 가난과 겸손의 덕은 더욱 깊어만 갔습니다. 
    
    
    
    비안네 신부님의 명성을 전해들은 수많은 순례자들이 유럽 전역으로부터 
    아르스를 찾아왔습니다. 비안네 신부님의 손짓 한번, 눈짓 한번, 단 한 방울의 
    눈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였습니다.
    
    
    너무나 많이 몰려드는 순례자들로 인해 아르스 사람들은 길을 넓혀야 했습니다. 
    마침내 순례자들의 인파는 유럽 전역에서 아르스를 향해 흐르는 큰 강이 되었습
    니다.
    
    
    
    고백소로 밀려드는 사람들의 질서유지를 위해 경비원까지 써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비안네 신부님의 수단 자락을 잡아당겼습니다. 어떤 사람은 온 
    몸으로 돌진해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옷을 찢어 달아났습니다. 그래도 비안네 
    신부님은 조금도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비안네 신부님은 죄지은 영혼들의 발자국 소리를 낱낱이 듣고 있었습니다. 
    일일이 그들을 만나셨고, 뒤틀렸던 그들 삶의 방향을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한편 이렇게 ‘잘 나가는’ 비안네 신부님에 대해서 갖은 욕설을 퍼붓고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30년 이상 집요하게 따라다니면서 비안네 
    신부님을 괴롭힌 사제도 있었는데, 신부님은 그 모든 수모를 묵묵히 참아내
    셨습니다.
    
    
    
    교구의 동료 사제들조차도 비안네 신부는 지지리도 못생겼고, 가난한 집안 
    출신이고, 무식하기 짝이 없다고 놀려댔습니다. 쥐뿔도 모르면서 무식한 시골 
    본당 신자들을 선동한다고 떠들어댔습니다. 낡은 수단과 꿰맨 구두, 거지같은 
    모자도 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 쇼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그 모든 비방 앞에서도 비안네 신부님은 묵묵히 침묵하셨습니다. 
    그 모든 업신여김 앞에 겸손하셨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고백소 앞 행렬은 비안네 신부님의 건강을 
    급속도로 악화시켰습니다. 57세 되던 1843년 5월 12일 비안네 신부님은 
    이런 말을 끝으로 하느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나의 하느님, 이렇게 저는 빈손으로 당신 곁으로 가옵니다.”
    
    
    비안네 신부님의 모범처럼 . . .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을 위한 매일의 희생양이 되는 길, 그 길이 결국 
    사제가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살레시오 수도회/양승국 신부님

♥God is love♥

 

 

댓글 1

  • 2007년 8월 4일 오후 7:55

    진정 우리들이 원하는 신부님은 바로 이런분이 아닌지요~ 하지만 어떤 신부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신부님 한분 한분을 모아 놓은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요~그러면 우린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겠지요? 그만큼 완벽한 사람이 없다는 얘기이기도 할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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