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도 서울대교구 지역 남성구역봉사자 피정 자료 1

2007. 3. 15. 오후 12: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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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도 서울대교구 지역 남성구역봉사자 피정 자료 1

- 소공동체와 복음화 -       강사:이동훈 신부님



1 ) 본 내용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과거 전통적인 사목에 익숙한 사목자들과 신자들은 이런 말을 한다.  “쉬자고 나오는 성당인데….  왜 개신교 사람들처럼 달달 볶아?”  세상사에 지칠 대로 지쳤을 때 위로를 받기 위해서 성당에 나오는건데 뭔가 자꾸 요구하면 누가 성당에 나오려고 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앙을 갖는 이유는 영혼의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이다.  신앙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 아니라 더 부담감만을 느끼게 된다면 무엇 때문에 신앙을 갖겠는가.

  그러나 ‘평화와 쉼에로의 초대’가 있는 한편 ‘복음선포 및 투신에로의 파견’도 있음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신앙을 갖는 궁극적인 목표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함이고, 이는 현세에서의 안일함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안위를 거부하고 복음에 투신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교회에서 하는 교육은 바로 이러한 투신을 도와주고 이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되겠다.


  과거에는 실질적으로 하느님의 뜻이 교회의 웃어른들의 명령을 통해 선명하고 정확하게 표출되던, 혹은 표출되어 보이던 이전의 시대에는 비교적 신앙생활을 하기가 편했다.

  해묵은 교회법전이나 사목자들과 주교들의 낡고 권위적인 또는 전제 군주적인 통치 양식 때문에 불만을 가졌다.  그래도 금요일에는 금육을, 주일 미사에 빠지면 대죄로 고해성사를 받아야 할 중대한 각오쯤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신자들이 영원한 신앙의 유아기, 사춘기에 머무를 수는 없다.  하느님 앞에서는 성숙하고 책임있는 순종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지도자의 권위가 할 수 있는 일과 또 해야 하는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우리네 삶에 필요한 보편적인 지침만을 제공해야 한다.



2 ) 구역봉사자 교육의 필요성


  구역봉사자들이이 구역반 소공동체와 본당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소공동체가 활성화되고 그 역할이 증대되면 될 수록 구역봉사자들의 역할이 커지고 그런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영적이 지원을 계속해 주어야 한다.  사제들을 길러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듯이 소공동체의 지도자인 구역봉사자들을 길러내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영적 양식을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분의 말씀과 삶을 바라보면 힘이 그분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이번 남성 구역봉사자 피정은 구역봉사자들에게 영성적으로 필요한 내용이다.  이 교육은 주님의 한없는 사랑과 기쁨을 체험하고 그런 체험을 전하는 기쁜 소식의 전달자가 되도록 도와주고, 늘 활동 속에서 지치기 쉬운 구역봉사자들이 아무리 큰 어려움에 부딪히더라도 기쁘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반소공동체의 봉사자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함이다(영성 = 삶의 무게 중심).



3 )  복음화와 소공동체


  “복음화란 종래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말해오던 ‘선교’나 ‘전교’보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보다 역동적이며 복합적인 개념이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에게 그리스도를 알리고 신자로 만들뿐만 아니라 그들이 생활하는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인 변혁과 역전이 전개되도록 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복음화라고 말할 수 있다.”


  독일의 신학자 메츠(J. B. Metz)는 1980-90년대 교회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는 기류를 진지하게 관측한 결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시대’는 이제 더 이상 위대한 예언자들의 시대도 아니요, 탁월한 신학자의 시대는 더욱이 아니다.  교회의 시대는 바야흐로 작은이들과 가난한 이들이 점차 주역의 자리를 차지하는 시대, 곧 작은 예언자들의 시대요, 작고 이름 없는 성인들의 시대이며, 이런 의미에서 바닥의 시대인 것이다.”


  그는 21세기를 염두에 두고 이 예지적인 선언을 하였다.  그의 말처럼 이 시대가 바로 ‘위대한 지도자’의 시대가 아닌 작은이들의 시대, 작고 이름 없는 소시민들의 시대라고 한다면, 이것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무대가 소공동체요, 이를 실현하는 주체가 소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이 점을 깨닫고 소공동체의 ‘기초’를 놓는데 헌신하는 것, 그것이 아닐 수 없다.


  교구마다 본당마다 또 각 소공동체마다 사정이 다를 수 있으나 대체로 보아 교구의 지원 정도, 본당 신부의 열성, 소공동체의 지도자의 자질 등에 따라서 소공동체 운동의 실적에 대한 편차가 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조사에 따르면 여성일수록, 40대 이상일수록, 학력이 낮을수록, 읍면 이하 거주자일수록, 입교과정에서의 자발성이 높을수록, 단체가입 신자일수록 구역 ․ 반모임 참여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남성, 20대와 30대, 대학원 이상의 학력자, 대도시 거주자, 태중교우, 단체 미가입신자의 구역 ․ 반모임 참여도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소공동체에 대한 저학력 고연령층 여성의 참여도는 그동안 꾸준한 것으로 나타났다.  확실히 잘나면 잘난 티를 꼭 내나보다.  예수님이 왜 특별히 그 당시 인텔리층과 사귐을 거부하고 적이 되었으며, 굳이 가난한 사람, 죄인들을 더 좋아하셨는지가 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4 ) 소공동체를 위한 사목적 필요성


  기초가 튼튼해야 계획한 대로 건물을 세울 수 있다.  기초가  부실하면 건물을 제대로 세울 수도 없고, 설령 세웠다 하더라도 가벼운 외풍에 쉽게 흔들리거나 오래 못 가서 허물어지고 만다.

  교회 공동체도 이와 같아서, 기초를 튼튼히 놓고 세운 소공동체는 거센 풍파 속에서도 한결같아서 사람들이 그 안에서 ‘아늑함’을 느끼고, ‘사랑’과 ‘친교’를 나누고, 오갈 곳 없는 이들을 맞아들여 ‘쉼터’를 제공하고, 이 모든 것에 감사드리며 손 모아 ‘기도’를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엉성한 기초 위에 세운 소공동체는 충분한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거나 삐걱거려서 사람들이 그 안에 안주하지 못하게 된다.

  소공동체의 건설을 미리 기획된 완벽한 설계도대로 추진하려 해서는 안 된다.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원리를 적용하도록 촉진과 지원을 할 수는 있지만, 소공동체 건설을 위한 획일적인 해법을 제공해 줄 수는 없다.

  따라서 당장 공동체 사목에 도입할 만한 재료나 프로그램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개선해야 할 문제점들을 방치한 채 우선 급하다는 이유로 임시방편으로 적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만을 계속 원한다면 장기적으로 볼 때 답보상태를 면치 못할 것이다.


  여러 연구들을 통해 확실해지는 법칙이 하나 있다.  그것은 본당이 비대하면 할수록, 교회 출석률, 교회 생활에 대한 참여도, 나아가 그리스도인다움, 신심과 종교심 등이 줄어드는 것이 통례라는 점이다.


  ( 1 )방법적인 제안

  그래서 현대 교회의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성서신학적인 방법으로 찾으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교회를 그 원천(源泉)에서부터 파악하여 교회가 공간과 시간 속에서 구체적으로 자기실현을 하기 위해 필요한, 변화하지 않는 본질적인 원리들을 찾아내어 현재와 미래에 적응하고자 한다.

  이러한 모색을 통해 도출된 견해 중 하나는 “교회는 본질적으로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공동체로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공동체는 교회의 ‘원형’(原形)이며, 교회의 ‘생활원리’이다.  성서에 따르면 부활 이후의 공동체인 교회는 스스로를 ‘구원과 복음선포에로 불리움을 받은 이들의 집회’(Ecclesia), 곧 ‘구원 공동체’로 이해한다.  말하자면 공동체는 세상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공동체는 결코 자체 목적이나 자기 존립을 위한 제도가 아니고, 본질적으로 사람들,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연대 속에서만이 예수의 공동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제직의 수행자는 모든 것을 혼자서 행하려 할 것이 아니다.  사제는 전체 공동체가 그저 ‘보살피는 자’와 ‘보살핌을 받는 자’로 단순하게 나뉠 수 없는 동등한 주체라는 점과, 공동체 내에 숨어 있는 다양한 성령의 은사를 감지하고 공동체에 유익이 되도록 발휘시키는 것이 자신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라는 점 등을 알고 있어야 한다.


  ( 2 ) 심리학적 요청

  인간의 ‘자아 정체성’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인격적인 상호 작용의 과정, 다시 말해 사회화와 문화화의 과정에서 형성되며, 이는 사교성, 행동양식, 가치체계 등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자아 정체성’은 새로운 인간관계, 새로운 체험 또는 새로운 업무 과제 등을 접하면서 여러 가지 심각한 위기에 빠지게 되거나 더욱 계발이 되기도 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새로운 사회상황이나 교회 상황이 펼쳐지면 마침내 정체성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기 때문에 결국 오늘의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위기를 헤쳐가면서 늘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재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아 정체성의 형성과 그 위기가 ‘사회적으로’ 조건 지워지고 있듯이, 정체성 위기의 극복 또한 ‘사회적 구성 단위’ 안에서의 인간관계의 재정립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노이로제 병증과 정상 사이를 넘나드는” 심리적 고통들이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와중에 각 개인들이 갖는 위기감의 직접적인 징후들이 많다.  교회 내에서 이런 위기현상을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을 제대로 마련해주고 있지 않은 데에도 그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 안에서의 단체나 공동체 활동이 구체적인 인격적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해주고, 신뢰와 협동심 등을 촉진함으로써 서로를 하나로 묶어주는 성령의 새로운 체험의 장이 된다.


  ( 3 ) 교회의 이중적인 도전과 사목적 제안

  이와 관련해서 교회는 이중으로 도전을 받고 있다.

① 교회 내 ‘친교의 마당’ 제공의 필요성 : 만일 개인들이 겪는 그 고통이 조금이라도 교회의 ‘의사소통체계’가 지니는 어떤 결함에 원인을 두고 있다면, 교회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사람들 사이에 형제자매적 ‘친교의 마당’을 마련하는데 힘써야 한다.

② 사회를 위한 ‘인격적 대화의 장’ 제공의 필요성 : 교회가 구원의 상징으로서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자신의 사명을 진지하게 여긴다면, 단지 교회 내적인 이유에서만이 아니고 오늘날 우리 사회 안에서 개인들이 의미 없거나 상처받은 대인 관계들로 고통을 받고 있음을 호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사람들이 서로에게 유익을 끼치며 의미충만한 대인관계를 정립하도록 인격적 대화의 장을 열어주는 것을 우선적인 과제로 삼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사목적인 실행을 위한 3 가지 제안

① 만남의 기회 제공

  신앙인의 정체성이 사회적 내지 교회적인 차원을 갖는다는 깊은 통찰은 신자들로 하여금 매 주일마다 익명성에 묻혀 교회만 방문하는 관행을 탈피하고, ‘정기적인 소그룹 모임’으로 만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음을 깨우쳐준다.  여기서 이 만남이 꼭 장시간 동안 유지될 필요는 없다.  새로운 신앙 안에서 자기가 누구인지 인식시켜 줄 수 있다면 시간적으로 제한된 만남이라도 괜찮다.


② 제도교회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한 소그룹 조직

  제도로서의 교회는 오늘 우리 사회의 공동 제도들이 갖는 공동의 숙명을 나누고 있거니와, 그 안에서 사람이 일차 집단으로서 또는 그와 유사한 대인 접촉으로서 의미충만하고 유익한 인간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일이 드물다.  교회는 스스로 고립되었다고 느끼고 거대하고 형식적인 제도교회 자체에 대하여 위압감과 무기력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곧 소그룹 차원에서의 친교의 필요성을 깨닫고 이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③ 협조자들의 양성(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가장 중요하다고 사려됨)

  교회 안에서 소그룹의 정착은 하나의 구조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인적 자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여기서 교회 안의 여러 직분 수행을 위해 잘 예비된 협조자를 양성할 긴급한 필요성이 대두된다.  조직을 재편성하면서 그 조직의 발생과 성장 과정을 동반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을 발굴하고 양성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5 ) 소공동체의 4 가지 요소


  한국 가톨릭 대사전에 나와 있는 소공동체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소공동체란 “현대에 교회의 본질과 복음을 실현하기 위해 채택된 새로운 교회형태”를 일컫는다.  부연하자면 “교회의 본질은 공동체이고, 공동체는 당연히 그 구성원이 서로 인격적인 사귐과 나눔을 실행하며 생활 전반에 걸쳐 긴밀한 유대관계 속에 사는 것을 말한다.  소공동체는 바로 이러한 교회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는 교회적 실체이다.  그래서 소공동체는 성령의 이끄심으로 현대 가톨릭 교회에 주어진 선물이며, 부활한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깨달음과 체험으로 이루어지고 퍼져 가는 새로운 교회형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소공동체의 4가지 요소

  교회 내 다른 단체, 혹은 일반 모임과 소공체와 구별되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① 삶의 현장(집, 직장)에서 함께 모인다

② 말씀(복음) 나누기를 한다.

③ 활동을 한다

④ 보편교회와 일치를 이룬다.


① 삶의 현장(집, 직장)에서 함께 모인다.

  신앙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소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데 소공동체를 이루기에 제일 편리한 곳은 신자들의 가정이다.  주일에는 본당에 모여서 미사에 참여하여 성찬을 나누어야 하지만 평일에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사는 신자들이 함께 모여서 서로 신앙을 나누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애덕을 실천하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가정은 삶의 현장인 동시에 하느님 체험의 현장이므로 가정에서 모임을 갖는 것이 좋다(사도 2, 42-47).

  그러나 사회, 문화, 경제적인 변화로 남녀 모두 직장을 가지고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는 오늘날의 여건에서는, 가정에서 모이기 어려운 경우에 일터에서도 얼마든지 신자들이 모여서 신앙을 나누고 어려운 동료들을 돌보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


② 말씀(복음) 나누기를 한다.

  말씀을 통해서 다가오시는 주님의 현존을 깨닫고 말씀으로 오신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그분께로부터 힘을 얻어야 한다.  말씀을 중심으로 모일 때 살아 있는 그리스도와 만나게 되고, 신앙생활이 심화/쇄신되며 자신의 복음화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복음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다양한 복음 나누기 방법을 이용할 수 있다(7단계, 공동응답, 아모스 복음 나누기 등).

  “나는 지금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다”는 바울로 사도의 고백처럼 바로 신앙은, 내 안에서 나는 점점 작아지고 주님이 계속 커질 수 있도록 내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는 것이다.


③ 활동을 한다.

  소공동체는 신앙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육화된 그리스도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믿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살아 계시고 활동하고 계심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외롭고 병들고 궁핍한 이웃에게 직접 가까이 다가가서 만나시고 어루만져주시면서 실천하셨듯이, 소공동체도 그 지역 안에서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 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사도직 활동을 통해 공동체는 세상과 만나게 되고 세상을 하느님 사랑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님, 주님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 21)


④ 보편교회와 일치를 이룬다.

  소공동체는 다른 공동체를 서로 방문하며 또 각 소공동체는 본당과 밀접히 연결되어야 한다.  또 본당 사목자들은 소공동체가 보편교회인 본당과 더 강한 유대를 맺도록 하기 위해 소공동체를 정기적으로 방문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본당은 공동체들의 공동체인 점을 항상 새롭게 기억해야 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한 15, 5)


  이들 네 가지 요소 중에서 하나라도 결핍되면 소공동체라고 하기 어렵다.  예컨대 첫째 요소가 결핍되면 본당 단체와 다를 바 없고, 둘째 요소가 결핍되면 비신앙인들의 지역공동체와 한가지이고, 셋째 요건이 결핍되면 교회의 기도 모임과 같고, 넷째 요건이 결핍되면 개신교와 같다.

❶ 활동만 하고 복음나누기는 하지 않는다면?

  어떤 본당에서는 교우들이 구역이나 반으로 나누고 그 안에서 상호 협조활동들을 활발히 하면서 여러 가지 임무들은 논의하고 공동체로서 활동한다.  그러나 이 모임에서 복음 나누기를 하고 있지 않다면 이를 신앙인 공동체라고 보기 힘들며 이 모임은 일반적인 친목단체로서 계모임의 성격을 띠기 쉽다.

❷ 활동이 없다면 어떤 모임이 되는가?

  어떤 본당의 소공동체는 활동은 하지 않고 복음 나누기나 친교에만 머물러 있다.  이런 모임은 ‘성서연구 모임’이나 ‘기도 모임’이라고 부를 수는 있어도 소공동체라고 볼 수는 없다.

❸ 행정조직에 머문 신자 모임

  어떤 본당의 소공동체는 지역을 작은 반이나 구역으로 나누고 있지만 이것이 행정적인 기능을 하면서 본당 소식 전달이나 본당을 위한 모금활동 등에 머물러 있다.  이렇게 관리 행정적 기능을 띠는 반이라면, 이 구역과 반은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보고 판단하고 실천해가는 전인적인 신앙 성숙에까지 이를 수 없을 것이다(관찰-판단-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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