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5주일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 윤병훈베드로 신부
53세 청주교구 / 놀체인양업 예비 사회적 기업 대표 / 청소년 학생직업훈련 학교장)
텃밭을 얻었다. 버려진 땅이었다. 땅을 로타리치며 몇 번이고 쟁기질을 했지만 땅이 돌같이 딱딱해 쟁기발이 깊이 있게 박히지를 않았다. 쟁기질을 하던 농부는 밭을 갈다 말고 우리게 이 땅은 ‘땅심’이 없어 이런 곳에서 어떻게 농사를 지으려고 하느냐며 걱정을 했다.
‘땅심’이란 말을 깊이 있게 생각하며 이런 텃밭이라도 거저 얻었으니 땅심이 큰 옥토를 만들자는 각오를 함께 했었다. 기계 쟁기발이 먹히지 않아 땅심을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가 힘을 써서 삽질을 깊이 있게 하며 밭다운 이랑을 일궈내자고 했다. 삽으로 고랑을 파서 ‘땅심’이 깊은 밭이랑을 만들었다. 비록 버려진 땅이지만 우리 선생님들이 억척스럽게 고랑을 파 땅심있는 이랑을 만들고 양질의 밭을 만들었다. 그곳에 묘를 구입해 심고 씨를 뿌리니 지금은 작물이 잘 자라남을 본다. 어느 옥답 부럽지 않은 땅심 깊은 밭이 되어 풍요롭게 작물이 병충해도 없이 커감을 본다.
우리들 마음이 흐믓하다. 토마토, 당귀, 고추, 상추, 가지, 오이, 들깨, 열무가 우리만 나타나면 신나하는 듯하다. 풍요의 수확을 맛보고 있다. 씨뿌리는 농부는 밭에 씨를 뿌린다. 씨는 밭에 닿으면 싹이 트고 뿌리가 내리고 줄기를 이루며 잎을 피운다. 그런데 밭 같지도 않은 땅에 닿을 수 있다. 문제는 밭이 문제란 말이다.
농사를 지으며 사람의 인격을 본다. 사람은 인격면에서 성격과 성품을 지니는데 성격은 외적인 부분으로 빙산의 일각으로 수면 위로 들어난다. 그런대 내적인 부분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을 성품이라고 하는데 그 내용이 다양하고 엄청난데 비해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다. 밭에서 지니는 ‘땅심(땅의 깊이)이나 마음이 지나는 ‘심심’(마음의 깊이)은 성품에 해당된다. 이 심심의 정도에 따라 사람의 질이 달라진다. 심심은 사람에게 무한대의 가능성을 갖게 된 다. 좋은 땅은 뿌려진 씨를 잘 받아드리는 성품의 소유자는 모두를 포함하며 받아드리고 생산의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인재로 발전한다. 뛰어난 리더십을 갖게 된다.
‘놀체인 양업’은 어린이와 학생들에게 다양한 체험을 하게 함으로 좋은 성품을 길러주는 동력을 지니게 함으로 자발적으로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기 하는 사회적 기업으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텃밭을 일구며 좋은 땅을 만들고 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마태13,23)
우리는 윤베드로 신부님 말씀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천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땅심이나 심심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단한 노력과 사랑이 접목될 때 비로소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의 결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레지오 마리애 교본 제4장 레지오의 봉사 3항에 “노고와 고통을 피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힘들다고 하신 말씀이 바로 땀의 노력 없이는 평화를 얻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평화를 빌어 주어도 평화를 받을 만한 심심이 없으면 평화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코로나 정국이라고 겁먹고 주님을 떠나서 방황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질병본부에서 지시하는 방역 수칙만 잘 지키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정국이 앞으로 일상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지금 건강한 레지오 단원들도 코로나라는 이름으로 하느님을 떠나고 있으니 걱정스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