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꼬리에 핸들을 묶고

2007. 4. 19. 오후 8:51:29

글자


 


"아들! 사제가 되기 전에는 신자들이 다 좋아 보여.
그런데 사제가 되면 신자들이 다 착한 것만은 아니란 걸 알아야 해.
더 중요한 것은 아들 스스로가 좋은 사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해.

 교만한 신부보다는 조금 부족해도 겸손한 사제가 더 이뻐 보여."

사제가 되기 전 새끼를 물가에 내 놓는 어미의 심정으로 하신 어머니의 말씀인데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속이는 지혜보다 속아주는 지혜가 더 큰 것이야.
사제로 살면서 행여 신자들이나 수녀들에게 상처받고 마음 아파하면 그 상처가 남에게로 옮겨가는 거야.
사제는 아파하는 것도 절제해야 돼. 때론 부끄러워할 줄도 알아야 하고...."

조그만 시골본당이라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려고 노력한다.
사목계획을 세우거나 일을 할 때 뜻대로 잘 안 풀리면 자전거를 타고 시골 정취를 느끼며
내 삶 안으로 다가온 사람들과 일을 생각한다.
안개비가 꽃잎 흩날리듯 하얗게 날릴 때 마주 오는 바람을 타고 내 얼굴에
묻는 물방울이 간지럽고 포근하다.
사제관 앞에 고추, 호박, 마늘을 놓고 가는 할머니들, 수단자락을 들어올리며
"아이스케키!" 하는 아이, "내가 침 묻힌 건데 먹을래요?" 하며 초콜릿을 내밀거나,
몸을 비비꼬며 손바닥 위에 빼빼로를 놓고 가는 아이들, 강아지 샀다고 안나 할머니가
가져온 3천 원, 그 강아지가 새끼를 낳아 팔았다고 가져온 천원.
살 때랑 팔 때랑 값이 다른 이유를 물으니
"파는 것은 아무 때나 팔면 되지만 사는 것은 내 맘에 드는 것이 없응께 그만큼 더
힘들잖여, 그래서 사는 값을 더 많이 쳐주는 겨."

이렇게 나는 많은 안개비의 촉촉함에, 그 사랑에 옷 젖는 것도 모르는 행복한 신부다.

햇빛이 싱그러울 때면 먼 산, 긴 강, 가지마다 점점이 박힌 감, 허공에 줄을 긋는 새소리,
바람꼬리에 핸들을 묶어 신밧드가 되어본다.

신앙적인 삶을 애타게 이야기해도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 먼 산이다.

샛강이든 여울이든 다 같은 곳으로 가는데 분파를 이루거나 본당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긴 강이다.

세파와 시련 속에서도 꿋꿋하게 신앙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 풍요로운
노란 점으로 알알이 박혀있는 감이다.

강이 하늘에서 거꾸로 쏟아지듯 힘겨울 때 소나기를 맞으러 나간다.
사실과 진실이 다를 때 대부분 사람들은 사실을 원한다.
진실이 자리를 잃을 때 서운함,배신감, 분노로 감정조절이 쉽지 않다.
화를 내면 화가 나를 지배하고 화를 내지 않으면 내안에서 열불이 난다.

안개가 자욱한 아침, 밤잠 설쳐 피곤한 몸을 무작정 자전거에 실었다.
강둑길을 따라 한 시간을 달려가면 옆 큰 마을에서 수영을 하고 올 수 있다.
25m를 왕복하고나니 힘이 너무 빠져 앞으로 갈 수가 없다.
근데 웬 아줌마가 물속에서 똥침이라도 놓을 기세로 젊은 오빠 비키란다.
그만 가려다가 은근히 이게 뭔가 싶어 아줌마를 쭉 지켜보았다.
'아니, 프로선수야?' 30분 내내 물에서 쉬지도 않고 나오질 않는다.
이날 그 아줌마가 나의 스승이 될 줄이야!
물에서 나는 힘이 너무 들어가 있었다.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물과 다투었고, 아등바등 빠지지 않으려 거친 숨과
발차기만 열심이었다.
그러나 힘이 들어갈수록 물에 가라앉는 원리를 몸으로 체득하였다.
'그래, 어거지였구나!' 몸에서 힘이 빠지는 순간 숨 고르기며 팔과 다리 몸 전체가
물과 하나가 된 느낌, '바로 이것이었구나!' 느낌에 온 몸을 맡기고 힘을 빼면 되는 것인데.
물과 싸우면 내 몸이 이길 리가 없는 것이다. 이런 깊은 뜻이...
가뜩이나 벗은 몸 부끄럽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돌아오는 길에 어제 밤잠 설친 일, 새벽 안개비, 소나기, 수영하는 나를 생각해보았다.
물은 내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과 여러 상황들이었다.
물은 싸우지 않는데 내가 싸우고 있었다.
물과 싸우지 않아야 하지만, 행여 싸울 때는 리듬을 타야 물에 빠지지 않는 법이다.
그 리듬은 교만, 우월감, 열등감, 위선에서 힘을 빼는 것이다.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은 나 자신이고, 안개비와 소나기, 먼 산, 긴 강, 허공에 줄을 긋는
새소리가 다 내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나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제가 되는 것이다.
부끄러움은 나의 천함과 경거망동과 허풍을 가려준다.
자기 모습에, 행동에, 말에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보다 더 좋은 예의는 없음을 생각해본다.


-가톨릭다이제스트  이길두 신부-

댓글 1

  • 2007년 5월 8일 오전 8:31

    '교만,우월감,열등감,위선에서 힘을빼고 물과 하나가 되고 싸움의 대상은 물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아침에 출근하여 좋은 명상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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