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1 주일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글 : 최인호 베드로
악마는 다음 기회를 노리면서 예수를 떠나갔다.<루가 4,1-13>
그리스가 자랑하는 니코스카찬차키스(1883-1957)는
≪희랍인 조르바≫란 소설로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사람입니다.
평생을 신(神),영혼, 자유, 죽음과 같은 문제에 매달려온 이 작가는
1953년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란 작품을 발표합니다.
카찬차키스는 예수께서 광야로 나가서 악마의 유혹을 받았던
장면에서 이 작품의 구상을 떠올렸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악마로부터 세 가지의 유혹을 받습니다.
그 첫 번째는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보라는 황금의 유혹입니다.
물질의 유혹을 물리친 예수께 악마는 세상의
모든 왕국을 보여줌으로써 명예와 쾌락의 미끼를 던집니다.
이 유혹 역시 물리친 예수께 악마는 마지막으로
'하느님과 대등한 힘'을 가져보라고 절대 권력의 덫을 던집니다.
주님께서는 악마의 이 세 가지 유혹을 물리치므로써 마침내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는 전도를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악마의 유혹은 끝이 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루가복음>은 이를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악마는 다음 기회를 노리면서 예수를 떠나갔다.'
카찬차키스는 바로 이 한 구절에서 소재를 떠올린 것이다.
그는 모든 유혹을 물리친 예수께 다음 기회를 노리면서 떠나간 악마가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유혹하였을까 하고 깊이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루가는 분명히 '다음 기회를 노렸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그다음 기회가 언제라고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카찬차키스는 이 다음 기회의 유혹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소설화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그 고통 속에서
악마가 찾아오는 것을 마지막 유혹으로 보았습니다.
악마는 황금과 명예와 권력을 물리친 예수께
이번에는 평범한 일상생활을 보여줍니다.
예수께 마리아와의 결혼생활을 보여주면서 사랑하는 여인
마리아와 아이를 낳아 기르는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카찬차키스는 이 '평범한 가족의 유혹'이야말로
최후의 유혹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생의 말년에 이르는 70세에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라는 작품을 발표하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예수를 지나치게 인성(人性)으로 보았다 하여
그 다음해에 교황청으로부터 금서목록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예수를 안간으로만 파악하려는
니코스 카찬차키스의 시각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는 않지만
'다음 기회를 노리면서 예수를 떠나갔다.'는
그 한 구절에서 예수께 찾아온 그 마지막 유혹이 무엇일까 생각한
그의 작가적 통찰력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좋은 묵상의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에게 찾아온 악마의 마지막 유혹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카찬차키스의 기도를 소개하겠습니다.
"나는 당신의 손에 쥐어진 활입니다.
주님, 내가 썩지 않도록 나를 당기소서.
나를 너무 세게 당시지 마소서, 주님.
나는 부러질지도 모릅니다.
나를 힘껏 당기소서, 주님.
내가 부러진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 중에서 ≫

<사순절을 맞아 실천해 볼 일>
사순절을 맞아 우리가 집착하고 배척하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기회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첫째, 나는 무엇을 가지고 누구와 함께 있어야 행복한가?
둘째, 나는 무슨 물건을 갖고 싶으며, 재산은 얼마나 소유하고 싶은가?
셋째, 나는 누구이며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넷째, 그것을 가졌더라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 또는 잃어버리거나
빼놓으면 ‘지금의 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섯째,늘 떠나지 않는 생각은 무엇인가?(의견.반응.좋아함.싫어함.추억 등)
이러한 물음은 집착 상태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문제는 애착물 자체가 아니라 얼마나 애착하는가에 따라
영적 생활에 지장을 받기 때문이다.
이번 사순절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루 한 가지씩 하지 않거나 없애버린다.
예를 들면 모닝커피를 마시지 않거나 악착스레 자동차를 자기 가게나
사무실 가까운 곳에 주차하지 않는다.
또 음악, 노래, 바둑, 골프, 쇼핑, 잡담, 저질 비디오나 인터넷 사이트
등을 하지 않는다. 등등.
여기서 ‘사순절 동안 무엇을 끊었느냐?’가 아니라
물건, 사람, 일, 습관, 환경 등 집착의 응어리를 끊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살핀다.
자신을 이길 수 있는 힘을 느끼는가?
저항감이나 거부감을 느끼는가? 명랑하고 즐거운가?
실천 자체가 즐거운가?
애착 대상을 끊어버리는 순간 해방감을 느끼는가?
보통 습관적으로 피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하되 원망이나 반감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한다.
매일 바꾸어 해도 좋지만 자신의 반응을 살핀다.
사순절 동안 걱정거리와 짜증나는 일, 신경질,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그건 문제가 안 돼!’ 하고 자신에게 말한다.
변화의 첫걸음은 바로 작은 실천에서 시작되므로 이런 것은
아무 문제가 안 된다. 처음에는 거짓말하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러나 개의치 말고 계속 ‘그건 문제가 안 돼!’ 라고 반복한다.
그러나 생각처럼 되지 않을 때는 없는지 살펴본다.
말버릇이나 표현 방식에도 집착이 있다.
사순절 동안 말하기 전에 먼저 생각한다.
‘내 생각엔’, ‘내가 보기에는’, ‘~이겠지’ 등등의 말버릇도
집착이므로 말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고착된 의견이나 추측이나
판단에 대해 ‘~인 듯 싶습니다’ 라든가 ‘정말 모르겠지만 ~’이라고
말하도록 한다. 아니면 아예 침묵을 지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 결과에 얽매이지 않음으로써 초탈에 대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어떤 결과를 기대하면서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덕행은 하느님 사랑을 위해서, 사순절 수련을 위해서,
참된 기쁨을 위해서 실천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덕행을 실천해 나가되
그 결과는 우리 것이 아닌 하느님의 것이므로 그 결과나 보상은
모두 하느님께 맡겨드려야 한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자기 행위나 모든 인간사에서 이익에
연연하지 않는 것도 훌륭한 초탈이다. 이러한 자유로움으로 인해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클 것이다.
초탈 수련으로 우리도 어느 날엔가 신학자 시므온처럼 말할 날이 있을 것이다.
“주님, 당신을 열렬히 포옹하는 이는 얼마나 복됩니까?
그런 사람은 찬란하게 변모될 것이니까요. 당신은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시니 그런 사람은 영혼으로 즐거워할 것입니다.
당신을 소유한 사람은 복됩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보화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며 당신이야말로 고갈될 수 없는 무한한 보물이시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