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할머니의 교훈
<이춘열아우구스티노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람도 사랑이다'에서 옮겨 적음>
오늘의 세상을 보노라면 당장이라도 종말이 도래할 것 같은 느낌을 떨칠 수가 없는 그런 세태입니다. 상아탑의 가치 부재, 정치인의 철학 부재, 그래서 어른다운 어른이 없는 사회 현장에서 저마다 인간 본연의 기본을 망각한 채 각자의 욕망을 채우려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을 온통 가치관의 혼돈으로 몰아가면서도 모두가 감각이 무디어져 기운이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제 욕망을 버리고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가치관의 모순은 지속되고 현세의 무질서와 갈등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오아시스에 조그마한 오두막을 짓고 살면서, 수정 같이 맑은 샘물을 오고 가는 나그네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낙으로 삶고 살던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할머니 덕분에 갈증을 해소하게 된 나그네들은 고마워서 한 푼 두푼 동전을 놓고 갔습니다. 본래 돈에 관심이 없던 할머니가 무심코 자루에 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엔가 자루에 돈이 넘치게 되었고, 이를 본 할머니는 또 한 자루의 돈을 갖고 싶은 욕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돈에 대한 욕망 때문에 이제는 노골적으로 나그네들에게 돈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욕망은 더 큰 욕망을 일으켜,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샘을 지키게까지 되었습니다. 혹시나 돈줄인 샘물이 줄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다가 샘 옆에 우거진 야자수의 잎에 물방울이 맺혀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할머니는 자기가 잠깐 잠든 사이에 그 야자수들이 소중한 물을 축내었다는 생각이 들어 당장 도끼를 가지고 나와서 야자수를 전부 잘라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더 많은 샘물이 펑펑 쏟아지겠지 하며 돈이 자루에 넘치게 될 것을 생각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막의 뜨거운 바람과 강렬한 태양빛 때문에 할머니의 뜻대로 되지 않고 그나마 있던 샘물까지도 다 말라버렸습니다. 야자수 그늘이 없어지자 나그네들도 오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할머니도 갈증과 내리쬐는 햇빛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부르시면 한 푼도 가지고 떠날 수 없는 연약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이 할머니는 그토록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려고 했을까요?
오아시스의 할머니 이야기는 단순한 우화처럼 보이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을 그저 아이들의 머리를 깨우쳐 줄 목적으로 쓰인 것일 뿐이라고 가볍게 넘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뻔히 알고 있는 것을 가슴으로 깨닫지 못하는 데에 있습니다.
어느 사회학자의 말을 빌리면, 사람은 욕망에 관한 한 짐승보다 못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짐승은 배가 부르면 먹던 것도 그대로 둔 채 떠나지만, 인간은 상상적 수요라는 것이 있어서 내일과 내년까지, 더 나아가 자자손손 만대까지 잘 먹고 잘 살 것을 대비하여 끊임없이 챙기려는 욕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욕망에 눈이 멀어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진정 멋있게 잘 살아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짐승만도 못한 파괴적인 욕망을 과감하게 베어 버리고, 오아시스의 할머니의 교훈을 되새기며 비우는 삶을 통해 가치관 부재의 현세를 정화해 나가는 데 도구가 되고 빛이 되어야 합니다.
오아시스 할머니의 교훈
2011. 11. 24. 오후 5:2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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