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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진이야기
중 2때에 처음으로 카메라를 접하게 되었다. Olympus Demi 지금의 똑딱이같은 소형, Demi는 필름원판 한장의 면적에 두장을 찍을 수 있게 만든것으로 그당시 24장 필름을 넣으면 48장이 찍혔다. 그당시에 카메라가 있는집은 아주 드문시기 였다. 아주 부자집이거나 아니면, 외국과 교류가 많은 집이었다. 그 카메라를 접할 수 있었던것도 친구아버지가 미국공보원 부원장으로 계셔셔 외국에 다녀오시면서 구해가지고 오신 거였다.
하여튼 친구와 함께 그카메라를 가지고 산으로 들로 바다로, 부산의 용두산 공원으로 마구 찍으러 다녔다. 현상인화는 지금의 4x6”의 절반정도 되는 조그만 사이즈로 흑백으로 밖에 안되었다.
그당시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구입한 일본원서 번역본 사진강좌 책을 구하여서 거의 외울 정도로 정독을 한 기억이 난다. 조그만 똑딱이 수준의 카메라로 예술사진을 찍으려고 했으니, 그 무모함이란? 지금 그때 찍은 사진이 있으면 좋으련만, 칼라가 나오고 slr카메라를 만지고 하면서 그조그만 흑백사진이 유치해져서 천덕구러기 취급만 받다가 세월과 함께 다 사라져 버렸으니,,, 지금은 그때 그 사진이 너무 아쉽다.
그친구의 올림푸스 데미 카메라가 너무 부러워서 그때부터 돈을 모으기 시작해서 중3때 Cannon Half라는 올림푸스데미보다 조금큰 카메라 중고를 구입해서 열심히 찍으러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고1때인 70년도에 드디어 아사히펜탁스의 slr카메라를 내것으로 손에 쥐게 된다. 일본에 계시던 이모님이 해방되고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시면서 내게 선물로 주셨다. 그때의 그 기쁨이란! 50mm 1.8 단렌즈를 달고 작품사진 찍는답시고 엄청 싸돌아 다녔다. 그중 아픈 기억이 있었으니, 작은 누나 결혼식에 사진을 찍게 되었다. 36방 짜리 필름을 4-5통 씬나게 찍었는데, 현상을 하고나니 아무것도 안찍혀 있다고 사진관 아쩌씨가 그런다. 이유는,,,,필름장전이 잘못되어서 전부 헛돌았던 것이다. 나의 실수덕에 작은누나의 결혼 스냅사진은 한장도 없다. 사진관 아저씨가 찍은 가족사진, 친구우인, 신랑신부 큰 사진만 있다.
제대하고 2달이 지나서 박통이 시해를 당했고 곧이어 시국이 엄청 뒤숭숭해지기 시작했다. 학교는 개점휴업이었다. 복학을 하지않고 좋아하는 카메라점을 학교앞에 열었다. 카메라와 렌즈몇개 진열하고, 현상인화, 카메라수리, 악세사리등을 취급했다. 그러나 경험이 없고 어린나이에 시작한 장사는 몇번의 사기를 당하고,1년을 못버티고 문을 닫게 되었다. 그리고는 다시 복학하여 공부를 마치고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돈벌고 집사고 이민병에 역마살이 단단히 끼어서 이곳 멜번에 살고 있다.
2001년도에 디지털카메라가 멜번시내의 Michael 카메라점에 진열되기 시작할때 저 카메라는 웨 생긴게 저 모양이야 하고 그냥 지나쳤다. 그러다 먹고살기 바빠서 사진은 잊고 지낸다. 뒤늦게 2년여전부터 시작한 dslr,,,필카와 비교해서 처음 장비구입하고 나면, 돈 안들고 마음껏 수백장을 찍을 수 있고, 컴에서 화질을 조정하고(뽀샵으로 별걸 다한다지만 나는 자제도하고 귀찮키도하고, 복잡하고해서 잘 안함), 이미지를 변색도 안되게 장기보관이 가능하니 얼마나 편리한지 모른다. 그러나 사진을 찍을때 신중하게 한장한장 찍던 그 필카 시절의 절약정신이 어느덧 없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