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이 눈 떠가는 삶

2005. 3. 6. 오후 8:23:09

글자
1사무16,1ㄴ. 6-7. 10-13ㄱ
에페5,8-14
요한 9,1-41

묵상길잡이 : 어린 아기는 육체의 눈을 뜨면 엄마 아빠를 알아본다. 초등학생 때는 글눈을 뜬다. 사춘기가 되면 이성에 눈을 뜬다. 40이 지나면 불혹(不惑)의 경지에 이른다. 그러나 인간의 영적인 눈은 죽는 날까지 계속 새롭게 떠가야 한다. 자기 편견이나 영적인 오만은 우리를 눈멀게 한다.

1. 우리는 때때로 보아도 보지 못한다.

마산 촌놈이 하루는 부산엘 갔다. 점심때가 되어 식당 앞에 주차를 하려하는데, 식당 앞에 우리 본당 신자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데레사씨 거기서 뭐하세요?"하고 물었다. 한번 슬쩍 쳐다보더니 딴 곳을 보며 모른 체 한다. 나는 다시 조금 큰 소리로 "데레사씨, 여긴 웬일로 오셨어요?" 하였다. 한번 힐끔 쳐다보더니 또 딴 곳을 본다. 나는 할 수 없이 차에서 내려 팔뚝을 툭 치면서 "데레사씨 사람 못 본체 하기요?"하며 바싹 다가섰더니, "아이고 신부님이시네. 나는 웬 사람이 나보고 뭐라카노 싶었더니"하면서 집안에 결혼식이 있어서 이곳까지 왔다는 것이었다.

두 번이나 나를 분명히 보았는데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이런 곳에서 본당신부를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아예 그 가능성까지도 배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실을 인식하는데 있어 육체의 눈보다는 열린 마음, 영적인 시력이 더 중요한 모양이다. 마음이 닫혀 있으면 보아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2. 인간은 일생동안 눈 떠 가며 산다.

어린 아이는 100일이 지날 무렵이면 얼굴을 알아보고 낯선 사람을 보면 울기도 한다. 육체의 눈이 뜨이는 것이다. 그러다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면 글눈이 뜨인다. 사춘기에 들어서면 이성(異性)에 눈뜨게 된다.  인간은 죽는 날까지 끊임없이 새롭게 눈을 떠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태생소경의 눈을 뜨게 해주신다. 태생소경은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하는 물음에, "선생님 믿습니다"하고 신앙을 고백했다. 그러나 두 눈이 멀쩡하고 똑똑하다고 자부하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지 못하였다. 아무리 두 눈으로 본당신부를 보았어도 알아보지 못할 수 있다. 육체의 눈으로 아무리 똑똑히 보아도 그것을 제대로 해석할 마음의 눈이 열려있지 못하면 헛일이다. 육체의 소경 됨보다 마음의 소경 됨이 더 큰 문제이다. 신앙의 눈이 뜨이고, 또 영원한 세상에 대한 영적인 눈이 열리면 인생의 넓이와 깊이를 보는 시력이 확 달라질 것이다.

3.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게 하는 장애들

우리 마음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는 선입견이다. "그 사람, 좀 그런 사람이라 카더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에게 들은 "...... 라 카더라" 라는 한마디는, 갑자기 시야를 막는 안개처럼 실체를 보지 못하게 한다. 선입견이라는 마음의 색안경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둘째는 영적 오만이다. 남을 무시하고 자만하는 사람,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오만은 명경지수(明鏡止水) 같아야 할 우리 마음의 호수에 돌을 던지는 것과 같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기준을 수시로 바꾸고, 모든 것을 그 잣대에 따라 판단하는 사람이다. 바리사이들의 모습이다.

셋째는 원한과 마음의 상처이다. 원한과 증오, 죄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정서적인 상처가 되어 일그러진 거울처럼 참된 상(像)을 비치지 못하게 한다.

사순절(빠스카 준비시기)이 깊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남을 판단하고 단죄한다. 나도 잘못 볼 수 있음을 깨닫자.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보는 사람과 못 보는 사람을 가려, 못 보는 사람을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을 눈멀게 하려는 것이다."하신 복음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자. 내가 만사에 기준이 아님을 깨닫자. 혹시라도 나의 선입견과 오만과 영적 상처로 주변의 형제 자매들을 판단하고 매도함으로 고통을 안겨준 적은 없는가 반성해보자.

태생 소경의 눈을 뜨게 해주신 주님께 "주님 제 마음의 눈을 뜨게 해주십시오."하며 겸손되이 청하자. 삶의 깊이와 넓이를 제대로 볼 수 있도록. ...... * 마산교구 유영봉 신부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미사/묵상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