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원하고, 노력하자

2005. 1. 23. 오전 10:18:43

글자
어떤 수도자가 깊은 산에서 은수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수도자는 홀로 조그 마한 움막을 짓고는 그곳에서 매일같이 기도와 묵상을 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아랫마을에 사는 한 젊은이가 와서 이렇 게 간청을 합니다.

"수사님, 제가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가르쳐 주십시오. 저는 하느님을 꼭 만나고 싶습니다."

누차 간절하게 청했지만 그 수도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청년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집으 로 돌아갔지요. 하지만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지요. 이 청년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수도자를 찾아와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가 르쳐 달라고 애걸하였습니다. 그 청년이 매일 찾아오자 수도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대가 하느님을 정말 만나고 싶은가? 그렇다면 내일 강가로 오게! 내일은 내가 목욕하는 날일세. 그때 가르쳐 주겠네."

젊은이는 고맙다는 인사를 수도 없이 하면서 돌아갔지요. 다음날 수도자가 목욕을 하기 위해 강에 들어가 있을 때 젊은이가 도착했습니다. 수도자는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지요. 젊은이는 큰 기대를 갖고 강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수도 자가 달려들면서 그를 물속에 집어넣고 머리를 있는 힘을 다해서 누르는 것이 아닙니까? 갑자기 당한 일이라 젊은이는 허우적대기 시작 했지요. 젊은이가 죽을 힘을 다해 허우적댈 때 수도자는 머리를 치켜 세우게 하여 잠시 숨을 쉬게 하고는 또다시 집어넣었습니다. 젊은 이는 죽을 것만 같아 용을 쓰며 물 위로 나오려고 했으나 수도자는 있는 힘을 다해 그를 눌렀지요.

젊은이가 기진맥진했을 때 수도자는 그를 꺼내주면서 말했습니다.

"내일 산으로 오게."

젊은이는 영문도 모르고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갔지요. 다음날 젊은이는 산으로 갔습니다. 수도자에게 정중히 인사하자 수도자가 물었습니다.

"어제 강에서 왜 그렇게 발버둥쳤는가? 자네는 물 속에서 죽을 힘을 다해 허우적거렸는데 왜 그랬는 지 말해보게."

"스승님, 그건 공기가 없어서 그랬습니다. 공기를 마셔야 살지 공기가 없으면 죽을 것입니 다."

"그래! 그대가 하느님을 만나고 싶다면 어제 물 속에서 간절하게 공기를 필요로 했듯이 그렇게 하느 님을 필요로 해야 하네. 그러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네."

그제서야 젊은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얼마나 하느님을 간절히 찾습니까? 어쩌면 너무나 싶게 하느님을 체험하고 싶고, 그 하느님 의 은총과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은 아닌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전도를 시작하시며 말씀하십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

사실 세레자 요한의 "회개하라"는 외침과 똑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담 긴 의미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세례자 요한은 우리가 먼저 회개함으로써 하느님의 구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자는 의 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선포는 당신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늘나라를 깨달으라는 외침인 것이지요. 그리고 이것이 바로 회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선포하신 뒤, 백성 가운데서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치유해주십니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원의 빛으로 다 가오시는 하느님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주님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저 아픈 몸을 치유해주고,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주시 는 분으로만 생각했을 뿐, 참된 기쁨과 참된 사랑을 주시는 분, 그래서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캄캄한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신 구세주 예수님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것이지요.

나에게 있어서 주님은 어떤 분인지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그 주 님을 깨닫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 지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2000년 전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그저 나에게 무엇인가를 베풀어주는 분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요?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약속하셨지만, 그 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간절히 원해야 합니다. 그 리고 노력해야 합니다. 물 속에서 공기가 없어서 허우적 거렸듯이, 물 속의 공기가 바로 주님이라는 생각을 가지고서 간절히 원해야 합니 다. 이런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본당의 어느 부인으로부터 남편이 너무 고약해서 이혼하고 싶다는 의논을 받게 된 신부님은 여간 난처하지가 않았는데, 다행히 그녀에게 일곱명의 자녀가 있어 자녀수를 반반으로 나누어 맡을 수가 없어 서 고민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신부님은 지혜로우신 분이었으므로 "그렇다면 한 일년 더 함께 사시다가 애가 하나 더 생기면 되지 않겠어요?"하고 말했지요. 그후 일년 반이 지났다. 신부님은 교구 신년교례회장에서 우연히 그녀와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잘 돼가나요?"

"아니요"

"하지만 아이를 낳으셨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요?"

"네, 틀림없이 아이는 낳았지요. 글쎄 그런데 그게 그만 쌍둥이지 뭐예요"

하느님의 섭리를 유한한 존재인 우리 인간이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다고,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하고 부정하고 있다면, 그것은 커다란 욕심이며 커다란 착각일 것입니다.

하늘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그 말씀을 기억하면서,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을 느끼도록 노 력했으면 합니다. 그때 우리는 더 커다란 행복과 기쁨을 체험하면서, 주님과 함께 하늘나라에 함께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 니다. 아멘.

* 인천교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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