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를 만드는 방법(1/20)

2005. 1. 20. 오후 7:2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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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20일 연중 제2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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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히브리서 7,25-8.6
형제 여러분, 예수께서는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중재자의 일을 하시니 당신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언제나 구원해 주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에게는 이렇게 거룩하고 순결하고 흠도 죄도 없고 하늘보다 더 높으신 대사제가 필요합니다. 다른 대사제들은 날마다 먼저 자기들의 죄를 용서받으려고 희생 제물을 드리고 그 다음으로 백성들을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날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분은 당신 자신을 속죄 제물로 바치심으로써 이 일을 한 번에 다 이루신 것입니다. 율법을 따라 대사제가 된 사람들은 연약한 인간이지만 율법이 생긴 이후에 하느님의 맹세의 말씀을 따라 대사제가 되신 그분은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영원히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위에서 말한 요점을 말하면 우리는 하늘에서 전능하신 이의 옥좌 오른편에 앉아 계시는 대사제를 모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하늘 성전의 일을 맡아보시는데 그 성전은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세우신 참다운 성막입니다.
대사제는 누구나 봉헌물과 희생 제물을 바치도록 임명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 대사제도 무엇인가 바칠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만일 예수께서 세상에 계시다면 율법을 따라 봉헌물을 바치는 사제들이 따로 있으므로 결코 사제가 되실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사제들은 하늘 성전의 모조품과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모세도 천막 성전을 지으려고 할 때에 "산에서 너에게 보여 준 그 본을 따라 모든 것을 만들도록 하여라."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훨씬 더 훌륭한 사제직을 맡으셨습니다. 그분은 더 좋은 약속을 바탕으로 하고 세운 더 좋은 계약의 중재자가 되셨으니 말입니다.


복음 마르코 3,7-12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셨을 때에 갈릴래아에서 많은 사람들이 따라왔다. 또 유다와 예루살렘과 에돔과 요르단 강 건너편에 사는 사람들이며 띠로와 시돈 근방에 사는 사람들까지도 예수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많이 몰려왔다. 예수께서는 밀어닥치는 군중을 피하시려고 제자들에게 거룻배 한 척을 준비하라고 이르셨다.
예수께서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예수를 만지려고 밀려들었던 것이다. 또 더러운 악령들은 예수를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하고 소리질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남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명령하셨다.





지금 현재 운영하고 있는 저의 홈페이지는 2002년 7월부터 시작한 두 번째 형태의 홈페이지입니다. 첫 번째 홈페이지는 저의 없는 디자인 감각으로 아주 이상한 형태로 만들었는데요, 그래도 참 재미있는 시간들을 홈페이지에서 보낼 수 있었지요. 물론 회원 숫자도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서 사랑이 무엇인지, 기쁨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해드리고 싶던 중에 지금의 홈페이지를 제공해주는 업체를 알게 되었고, 2002년 7월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형태로 쭉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늘어난 회원수가 4천명을 넘어 이제 5천명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네요.

그런데 이렇게 회원 수가 많아질수록 저는 부담이 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특히 처음에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원했던 사랑이 가득한 홈페이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홈페이지라는 지향이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서운했던 것은 제가 처음에 홈페이지를 만들고 그곳에서 만났던 분들을 이제는 만나기가 힘들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분들의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이 홈페이지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러한 따뜻함도 줄었기 때문에 한분씩 떠났던 것은 아니었는가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제 홈페이지를 통해서 Daum 카페로의 이전을 공고했고,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카페에 이런 식의 글을 남기시네요.

“신부님, 더욱 더 번성해서, Daum 카페 중에서 제1의 카페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말도 많아지고 싸움도 많아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그렇게 외적인 번창은 욕심도 가져오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외적인 성장을 원하지 않습니다. 대신 비록 숫자는 적더라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공동체, 서로에게 사랑을 전하는 공동체를 원합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도 그러한 우리들이 되길 원했던 것은 아닐까 싶네요.

예수님의 놀라운 행적과 말씀으로 예수님의 추종자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합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나에게 명예와 재물을 갖다 바치겠다고 하는데 사실 거부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피하십니다. 왜냐하면 욕심이 자리 잡으면 또 다른 욕심을 불러온다는 것을 잘 아셨고, 그 모범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심으로써 우리 역시 그 욕심들을 버리도록 하기 위함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의 욕심이 있어야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어느 정도의 욕심이 있으면 그 욕심만큼 주님과의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하느님께서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십니다. 즉, 아담과 하와에게 다른 것은 다 누려도 되지만 딱 하나만은 하지 말라고 하셨지요. 하지만 그들은 그 딱 하나까지도 취하려는 욕심에 에덴 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딱 하나만하지 말아라.” 그런데 우리들은 우리들의 원조인 아담과 하와처럼 그 하나마저도 취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그래서 저 역시 이제 홈페이지에 대한 욕심, 제1의 홈페이지가 되겠다는 욕심을 접습니다. 대신 작지만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홈페이지를 지향하면서 새로운 시작을 해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가지지 말아야 할 “딱 하나”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찾아보시고, 그것을 갖지 말도록 합시다.



여유를 만드는 방법(‘빙점’, 미우라아야꼬 여사의 젊은 시절 이야기)

어떤 가정주부가 남편의 수입이 적어서 동네에 구멍가게를 냈습니다. 이 아주머니가 정직하고 친절하게 물건을 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손님이 점점 많아졌고, 물건이 달리게 되어 트럭으로 물건을 들여놓으며 하루 종일 정신없이 팔아야 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퇴근하여 바쁘게 장사를 하고 있는 부인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동네 다른 가게들은 이제 손님이 거의 없대. 저 건너의 가게는 아예 곧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더군.”

이 말을 듣고 그 부인은 물건을 트럭으로 주문하지 않았고, 파는 물건의 종류도 줄여서 손님들이 찾아오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물건은 건너편 가게 가시면 살 수 있습니다.”

그 후로 장사로부터 벗어나 시간이 많아진 부인은 좋아하던 독서에 빠질 수 있었고, 틈틈이 글도 쓰기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욕심을 부리면 여유로워 질 수 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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