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전달자

2005. 1. 23. 오전 10:12:29

글자
세례자 요한의 체포 사건은 예수님의 고유한 사명을 시작하라는 일종의 표징입니다. 그런데 복음서 원문은 세례자 요한이 그냥 ‘체포’된 것이 아니라 ‘넘겨졌던’ 것으로 표현합니다. 이는 ‘의로운 이, 결백한 이를 악한 이들의 손에 넘겨 준다’는 뜻으로, 하느님의 신비로운 계획이 여기서 계시되거나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께서 갈릴래아의 나자렛을 떠나 근방에 있던 가파르나움으로 가셨다고 전해 줍니다. 이러한 장소의 이동은 신학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파르나움은 예수께서 당신의 사명을 시작한 곳이고 동시에 마무리 지은 곳이기 때문입니다(마태 28,16 -20 참조).

  예수께서 가신 ‘이방인의 갈릴래아’에는 즈불룬과 납달리, 두 도시가 포함되어 있어, 마태오는 이사야서의 예언(이사 8,23-9,1)이 실현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마태 4,14-16). 이를 통해 예수께서는 모든 민족과 나라를 위한 하느님 나라의 보편성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을 통하여 인류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나섰고, 구원하시는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세례자 요한이 회개를 요청하는 것은 하느님께 되돌아가기 위한 길을 열어 주는 사고방식, 태도 및 행위의 전환입니다. 하느님만이 인간 존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에 있어서 가장 큰 도전은 우리 세대, 특히 젊은이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시대를 초월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 말씀의 전달자인 우리에게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부르심을 받는 첫 제자들의 사건을 묘사하면서 합당한 증인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고, 참된 제자의 본분을 설명합니다.

  주님의 참된 제자는 소중한 모든 것에 대해 ‘초연함’을 지녀야 합니다. 자꾸 미련을 갖고 뒤돌아보면서, 잃어버린 모든 가능성에 대해 걱정하는 이는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완수할 수 없습니다. 초연함은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의 ‘유산’(신명 18,1 이하 참조)이 되는 여정을 시작할 때 가능합니다. 이러한 초연함은 회개의 길로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내포하며, 주님과 하느님 나라에 대해 지속적으로 집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영광과 권위 안에서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고 인간에게 봉사하시는 하느님의 오심을 통해 구체화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작은 이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통해 확장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결코 ‘낙원’이 아닙니다. 오히려 의인이든 죄인이든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하느님 사랑이 이 세상에 개입하는 곳입니다. 모든 생명이 변화를 일으키고, 하느님과 이웃과 삶 자체를 우리와 화해시켜 주시는 표현할 수 없는 지극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걸고 증언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기쁜 소식입니다.

*  에밀 P. 체릭 대주교·주한 교황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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