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럿거라

2005. 1. 23. 오전 10:13:09

글자
“물럿거라, 대감 행차시다~” 사람들은 모두 땅에 엎드려 고개를 조아리고, 대감은 하인 네 명이 떠받치고 있는 가마에 약간 삐뚤게 앉아 수염을 쓰다듬고 있습니다. 아마 대감이 어디론가 출타하시는가 봅니다. 이런 장면을 우리는 사극을 통해 자주 접합니다. 가마는 높은 직위의 상징적인 도구입니다. 위에 높은 직위의 사람이 올라가 있고, 아래에는 낮은 신분의 사람이 그것을 지탱합니다. 내가 군림하고 다스리고 있다는 사실, 내가 이만한 권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눈에 보이게 드러내는 도구라 할 수 있습니다. 가마를 통해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눈에 보이게 확실히 구분됩니다. 위에 있는 사람은 그야말로 윗사람이며, 아래에 있는 사람은 그야 말로 아랫사람입니다.

또 한 가지 장면을 떠올려 봅시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부하들을 이끌고 나를 따르라며 돌격신호를 외치는 소대장입니다. 그는 가장 맨 앞에 뛰어가며 병사들에게 모범을 보입니다. 병사들은 그의 목숨을 건 돌격에 감명받아 소대장과 함께 앞으로 뛰쳐 나갑니다. 부상당한 병사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위로하고,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병사들의 사기를 생각해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들을 따뜻이 대합니다. 맨 앞자리에서 돌격신호를 보내는 그는 병사들에게는 영웅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어부 네 사람을 제자로 삼으십니다.

제자들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나를 따라 오시오. 당신들을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소.” 나를 따라오라는 말은 내 뒤로 오라는 말입니다. 200주년 성서에는 “내 뒤로 오시오.” 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내 뒤로 오라는 것. 예수님이 맨 앞자리에 첫 번째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밑으로 들어오시오.”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내 뒤로 오라.” 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새로이 다섯 명으로 구성된 이 집단의 최고 우두머리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뒤에 서시오.” 한 무리를 대표하는 사람은 그 집단에 맨 앞에 서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위에 서지는 말아야 합니다. 앞에 펼쳐져 있는 험한 길을 뒷사람을 위해 닦고, 뒷사람이 당할 위험까지 모두 앞 사람이 보호해 줍니다. 또한 앞사람이 가는 대로 뒷사람은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군림하는 자나 다스리는 자가 아닌,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는 자요, 희생하며 보호해 주는 자입니다. 함께 해 주는 자이며 먼저 움직이는 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알고 있고, 쉽게 볼 수 있고, 또한 쉽게 행동하고 있는 원칙은 오늘 복음과는 다릅니다. 시키면 어김없이 해야 하고, 잘못되면 큰 소리로 지적을 해야 하고, 자신이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시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제자들은 선뜻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렇게 제자들이 예수님을 잘 따르는 이유는 어떻게 보면 예수님이 그들 앞에 서서 지켜주고, 모범을 보여주고, 희생해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님은 성부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 저에게 맡겨진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을 부를 당시부터 당신이 죽기까지 어떠한 자세로 제자들을 대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러한 역할을 우리 모두는 크게든 작게든 짊어지고 있습니다. 작게는 가정에서 자녀를 이끄는 부모의 역할을 맡고 있고, 성당에서 한 단체의 대표를 맡기도 합니다. 또한 직장에서 아랫사람을 두고 있는 윗사람으로 서 있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 따르면 아랫사람이라는 말은 틀린 표현이겠지요. 아랫사람이 아니라 내 뒤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이끈다는 것은 ‘앞자리에서 서있는 사람’이 모범을 보이면서 ‘뒤에 서있는 사람’을 따라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앞자리에서 예수님이 보여 주신 모습 그대로 이웃들에게 자녀들에게 직장의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저절로 그들은 따라 올 것입니다.

* 천주교 안동교구 점촌동성당 보좌 류한빈 안드레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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