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벌써 방배동을 떠난지도 어느새 햇수로 5년,
문득 돌아서 떠나온 고향처럼 애틋하고 가슴 뭉클한 추억의 편린들이 항상 내곁에 맴돌고 있읍니다.
개인적으로도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롤러 코스트를 탄것처럼 가장 힘들었던 세속생활속에서 오로지
매달릴곳은 주님 한분인듯, 전심으로 주님의 일들을 열심케하여 신앙생활을 한단계 향상시켜주신
신부님과 여러 교우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지난 날의 추억의 조각들을 들추어 그때 그시간들을
되돌려 보려 합니다.
에피소드#1 불낙집 감사패
방배동 성당으로부터 분당의 통보를 받은 4동 교우들에게 우여곡절속에 현위치에 성당 부지를 마련
하였으나 성당신축은 4동에서 자체 해결을 하라는 방침이 정해진 가운데 김현귀,안차수,박윤식 회장님등
몇몇분들의 강한 반발과 항의로 1차건물 준공까지 지원을 받기로 하였읍니다.
그 와중에 설계도면을 검토할 겨를도 없이 계획도면을 가지고 본당 사목위원였던 교우가 시공을 하게
되었읍니다.당시 건축위원회는 가장 빠른 시간에 준공을 목표로 하여 공사를 진행한 관계로 차후 증축의
여지를 꼼꼼히 챙기지는 못하였읍니다.
또한 그당시 imf로 인한 열악한 상황속에서 힘들게 준공을 끝낸후 시공회사는 부도를 내고 말았읍니다.
결국 준공이 끝난후 그동안 수고한 건축위원들에게 감사패를 증정하려고하니 이미 갈라진 윗성당과
아랫성당의 신자들의 마음을 읽으신 신부님께서 회식자리였던 불낙집에서 감사패를 수여하셨읍니다.
에피소드#2 초대 신부님 부임
어렵사리 성당 준공을 끝내고 곧이어 초대신부이신 조형균요한 신부님 께서 발령을받고 부임하시게 되었읍니다.
그래서 총회장님과 사목위원들이 당시 근무하시던 평화신문사로 모시러 가셨읍니다.
원래 동안이신 신부님을 뵈오니 외모 만큼이나 성격도 무난 하시리라 지레 짐작을 하였읍니다.
모셔온후 점심 식사를 삼호가든에서 대접하게되었읍니다.
첫상면인 만큼 암소갈비를 대접하고 싶으신 총회장님께서 드실 메뉴를 권하자 메뉴판에 가장 값싼 갈비탕을
시키시는 것이었읍니다.졸지에 당황한 일행들은 동일한 메뉴로 통일을하고 식사를 끝낸후 또한번 신부님의
기습공격에 어안이 벙벙 하였읍니다.
연세가 많으신 교우 어르신들께 한마디 양해도 없으신채 담배를 꺼내시어 태우시는 모습에 또한번 놀랬읍니다.
성당에 돌어온후 마침 골프회 회장님께서 골프에 대해 말씀을 드리자 나 골프 안칩니다 라고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시니 그회장님은 얼마나 머쓱하셨겠읍니까?
젊으신 신부님께서 하도 거침없는 언행을 하시니 앞으로 어떻게 대처하나 생각케하는 우리들에게
한방 가득히 가져오신 책들과 cd들은 신부님의 만만찬은 내공을 짐작케하는 증거품들 이었읍니다.
에피소드#3 요씨천하와 숭구리 당당
그후 신부님은 보좌도 안계시고 수녀님도 안계신 가운데 꿋꿋하게 버티시며 매사를 분명하게 사목을
하셨는데 그때부터 4동성당엔 "요씨천하"가 시작되었읍니다. 신부님의 본명인 요한을따라 요한,요셉, 요안나,
등 요씨들이 득세(?)를 하게 되었읍니다. 신부님의 사목방침의 특성은 구역모임(특히 여성)과 연령회의
지속적인 지원과 격려를 통해 사목을 이끄셨는데 그중에서도 연령회에 대한 애정은 편애의 지경까지
이르셨읍니다. 그때 연령회가 정말 활성화되어 모든 회원들이 열정을갖고 힘든줄 모르고 봉사를 하였읍니다.
신부님이 가끔 입장이 어려우시고 할때 하시는 숭구리 당당 숭당당은 어느때 의정부 청소년 수련장에서
피정을 하던중 형님신부이신 조승균 신부님께서 강의도중 그분도 숭구리 당당 을 쓰시는것을 보고
접신(?)하는 조씨가문의 전통이구나 하고 원조는 가리지 못했지만 가풍을 확인하는 선에서 의문을 풀었읍니다.
그러나 아직도 밝혀내지 못한 정다방 미쓰박은 지금은 어느 하늘아래 있는지-----------
에피소드#4 성당 증축에 대해
그후 성당에 1차신축에 대한 하자 문제 때문에 보증보험회사와의 줄다리기 끝에 약 7천만원 정도의 보증금을
받게되자 신부님께서 꿈꾸셨던 2차 성당 증축을 계획하게 되셨읍니다.
그러나 막상 설계를 시작하다보니 뼈대만 남기고 모두 다시 시작하는 큰 공사가 되었읍니다.
신자들의 염원을 담아 정말 아름다운 성전을 만드시고 싶은 신부님의 열정은 제2기 건축위원회 모두에게
깊은 사명감과 책임을 느끼게 하였읍니다.엄정한심사와 입찰을 통해 설계와 시공이 선정되고 공사를
시작하였느데 신부님은 독립운동 이라도 하시는지 귀청을 뚫는 소음과 온몸이 떨리는 진동과 매캐한
먼지등 최악의 조건속에서 꿋꿋하게 사제관을 지키시며 현장감독을 자청하셨읍니다.
틈나는대로 좋고 아름답고 잘지었다는 성당을 찾아다니시며 장점만을 선택하시어 아름다운 성전과
황홀한 성모동산, 투박함속에 어머니를 느끼게하는 성모상등 이러한 모든것들을 이루어내신 신부님께
머리숙여 존경을 드리게됬읍니다.
에필로그
저는 신부님과 같이했던 5년동안 신심을 통해 봉사를 알았던 내적인성장과 함께 신부님의 사제로서의
철저한 자기관리,성실한생활태도,깊은 신앙심에서 나오는 말씀들,맑은 영혼과해맑은 웃음을 통해
사제들의 영원한 표상을 갖게 되었읍니다.
특히 떠난뒤의 신부님께대한 어떠한 뒷말도 들리지 않을만큼 아름다운 퇴장은 저희들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것 입니다.정말 행복 했었읍니다.
두서없이 나열된 지난 방배동의 시간들이 제게는 값진 보석들처럼 항상 반짝이며 제가 지칠때나
외로울때나항상가슴깊이 간직하고 살겠읍니다.
항상 모든 교우들께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 하겠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