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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이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되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2-26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벳사이다로 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눈먼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는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그분께서는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는 앞을 쳐다보며,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 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말씀하셨다.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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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1독서의 야고보서는 말씀을 듣고 실행하지 않을 때에는
마치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쉬이 잊히게 된다고 알려 줍니다.
독서에서 지적하는 대로, 말씀을 자주 듣기는 하지만
제대로 실행하지는 못하는 게 우리의 일상인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어쩌면 우리의 마음가짐에 결의와
절박함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실 모든 실행이
그렇듯 말씀의 실천에는 각고의 노력과 결심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대음악가 베토벤이 말년에 남긴 작품
현악 사중주 16번(작품 번호 135번)에 관한 유명한 일화는
우리 신앙인의 삶을 찬찬히 돌아보게 합니다.
베토벤은 이 위대한 작품의 마지막 악장의 시작 부분 의 악보 위에다
“그래야만 하는가?(Muss es sein?)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
(Es muss sein! Es muss sein!)라는 메모를 남겼습니다.
이 문장의 뜻과 유래에 대한 몇 가지 설명 가운데 한 통설을,
체코의 작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소개하고 있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악장의 시작 부분에 “힘들게 내린 결정”이라는
말을 덧붙인 것을 보면, 이 자문과 자답은
베토벤이 말년까지 소홀하지 않았던 진지한 삶의 태도,
곧 여러 가지 어려움을 이겨 내고 다다른
삶의 경지를 절묘하게 요약한 것임이 분명합니다.
젊은 나이에 청력을 잃는 등 그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 찼지만 고뇌와 결단의 순간들을 통해 가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 삶의 여정에 주시는 주님의 말씀과
은총의 수많은 사건은 우리의 내적 결단을 기다립니다.
이를 통하여 말씀과의 만남은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대신
진정한 말씀의 실천으로 지속됩니다.
이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적정한 무게를 획득합니다.
그러한 삶 안에서 우리와 주님의 만남은 더 이상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으로 변모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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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내눈을 뜨게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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