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13세의 회칙 '새로운 사태' 전문 | 사회윤리 (1)

2005. 9. 27. 오후 3:51:12

글자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새로운 사태


RERUM NOVARUM


1891. 5. 15.






LEONIS XIII

SUMMI PONTIFICIS

LITTERAE ENCYCLICAE

RERUM NOVARUM


AD PATRIARCHAS, PRIMATES, ARCHIEPISCOPOS ET EPISCOPOS

UNIVERSOS CATHOLICI ORBIS GRATIAM ET COMMUNIONEM

CUM APOSTOLICA SEDE HABENTES


DE CONDITIONE OPIFICUM






























노동자들의 상황에 관하여

사도좌와 더불어 평화와 일치를 누리는

존경하는 형제들인

총주교, 수석주교, 대주교, 주교들에게 보내는

교황 레오 13세 성하의

회칙


새로운 사태


차 례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 7

갈등의 원인들 8

사회주의자들의 해결책 8

사유 재산 9

재화의 공동 사용과 사적 소유 10

실정법과 신법에 의해 인정되는 사유 재산 12

가정과 국가 13

빈곤에 대한 공산주의 원리 14

교회와 사회 문제 15

투쟁 없이도 계층들간의 화목은 가능하다 16

노동자와 고용주의 의무들 17

재화의 소유와 사용 20

노동의 존엄성 22

자연의 재화 및 은총의 보화의 공동 소유 23

교회의 모범과 교도권 23

교회가 실천하는 애덕의 활동 25

국가의 협력 27

국가 번영의 기원 27

국민들을 위한 국가의 통치 29

국가의 의무와 개입의 한계 30

국가는 사유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 31

국가는 노동 파업을 예방해야 한다 32

국가는 영적 보화들을 보호해야 한다 32

노동자 및 부녀자와 연소자의 노동에 대한 보호 33

노동자의 적정 임금 34

계층들간의 화해의 방편인 절약 36

노동 조합의 역할 37

사적 단체와 국가 38

가톨릭의 노동 단체 40

노동 조합의 규율과 목적 42

가톨릭 노동자들의 단합 44

결정적 해결책:애덕 45


존경하는 형제들에게 인사와 더불어 사도적 축복을 보낸다.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


1.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의 열망이 한번 불타올라, 오랫동안 여러 나라들을 동요시켜 왔으며, 그러한 열망으로 인해 언제부터인가 변혁의 추구가 정치의 영역에서 경제 관련 분야로 옮겨가게 되었다.

실제로 새로운 산업의 성장과 새로운 기술의 발전, 변화된 노사 관계, 극소수의 막대한 부요와 대다수의 빈곤, 노동자들의 자기 신뢰 증가와 상호 결속의 필요성, 그 밖에 윤리의 타락이 투쟁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 같은 사태는 사람들의 마음을 우울하고 불안하게 만들 정도로 극히 심각하여 각계 각층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 문제 해결에 고심하게 하고 있다. 학자들은 연구하고 현인들은 숙의하고 대중들은 모임을 개최하고 입법자들은 협의하고 통치자들은 심의한다. 이 문제보다도 오늘날 세상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존경하는 형제 여러분, 치명적인 오류를 반박해야 하는 순간이 닥칠 때마다 본인이 교회의 선익과 공공선을 수호하기 위하여 󰡐공권력󰡑, 󰡐인간의 자유󰡑, 󰡐그리스도교 정신에 따른 국가 조직󰡑 등에 관한 회칙들을 반포하였던 전례에 따라, 또한 똑같은 동기로 인하여, 이제 본인은 노동자 문제에 개입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본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미 수차례 이 문제를 다루었지만 본인의 사도적 직무에 대한 자각으로 말미암아 정의와 평등의 기준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원칙들을 부각시키려는 목적으로 다시금 이 문제를 광범위하게 취급하고자 한다. 이 문제의 해결은 어렵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자본가들과 노동자들 사이의 관계에서 상대적인 권리와 상호 의무를 명확하게 규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교활하고 선동적인 사람들이 이 같은 허점을 이용하여 그릇된 판단을 유도하고 민중을 혼란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위험한 일이다.


갈등의 원인들


어떻든 근로자들 대부분이 부당하게도 비참한 처지에서 살아가고 있으므로 그들을 도와주는 적절한 해결 방안이 시급히 강구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며 또한 모든 사람이 이를 인정하고 있다. 지난 세기에 숙련공들의 오랜 협동 조합(길드)이 무너져버린 채 그러한 역할을 맡을 다른 보호 조직이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또 그와 동시에 제도와 법률들이 그리스도교 정신을 온전히 망각하기 시작하여 노동자들은 점차 고립 무원의 상태에 빠지게 되었으며, 인정머리 없는 고용주들의 무절제한 경쟁의 탐욕에 무참히 희생되어 왔다. 교회가 수차례 엄중히 금지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고리 대금업은 여전히 성행하고 파렴치한 모리배들로 말미암아 또 다른 형태로 그러한 불의가 자행되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생산과 상업이 소수에 의해 독점 장악되어 극소수의 탐욕스런 부자들이 가난하고도 무수한 노동자 대중들에게 노예의 처지와 전혀 다를 것이 없는 멍에를 뒤집어씌우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의 해결책


2. 이러한 악의 치유를 위하여, 사회주의자들은 부자들에 대한 가난한 이들의 질투를 불러일으키면서 사유 재산을 없애야 하며 그 대신 모든 이를 위한 공동 재산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유 재산을 공유화하고 또 모든 재화를 국민에게 공평하게 분배할 때에 사회악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그들은 믿는다.

그러나 투쟁을 종식시킬 수 없는 그들의 이론은 노동자 계급에 손해를 입히며, 그 밖에도 정당한 소유주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국가의 임무를 변질시키며, 사회를 혼란에 빠지게 하기 때문에 부당하다.


사유 재산


3. 사실 노동의 목적, 즉 노동자가 자각하고 있는 노동의 근본 동기는 사유 재산이며, 또한 그가 고용되어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자기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동기가 자기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획득하기 위한 것임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노동자는 노동의 대가로서 임금을 요구할 뿐 아니라, 자기의 합당한 임금을 원하는 대로 활용할 수 있는 진정하고도 완전한 권리도 요구한다. 그러므로 만일 노동자가 자기 임금을 절약하여 저축하고 또한 그 임금을 증식시키기 위하여 토지 매입에 그것을 투자하였다면, 이 토지는 결국 다른 형태로 변형된 똑같은 임금이며 또 결과적으로 그 자신의 재산인 것이다. 그것은 다른 형태의 임금에 지나지 않는다. 동산이든 부동산이든 재산이 그런 식으로 형성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의 주장대로 모든 사유 재산을 공유화한다면, 그들은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을 투자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함으로써 자기의 자산을 유용하게 활용하고 자기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권리와 희망을 빼앗아버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게 된다.


4. 더 나쁜 것은 사회주의자들이 제시한 해결책이 명백하게 정의에 어긋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사유 재산권은 인간의 타고난 권리이기 때문이다.

사유 재산권은 인간과 짐승을 구분짓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짐승에게는 자기를 통제하는 능력이 없다. 짐승은 두 가지 본능, 즉 개체 보존의 본능과 종족 보존의 본능에 의해 지배당하고 규제받는데 그 본능들은 짐승이 민첩한 행동을 하게 하고 그 힘을 발휘하게 해주는 반면에 짐승의 모든 움직임을 결정하고 제한한다. 이 두 가지 목적을 성취하는 데에는 짐승이 자기 주변에서 발견하게 되는 제한된 수단들을 이용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짐승은 감각과 특수한 감수성에 의해서만 움직이므로 자기 주변의 테두리를 벗어나 멀리 내다보지 못한다.

인간의 본능은 짐승의 본능과 전혀 다르다. 인간도 다른 짐승들과 마찬가지로 감각 기능을 갖추고 있지만 물질 세계의 재화들을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감각 능력을 충만히 구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적 본성이 아무리 영향력을 미칠지라도 인간의 본성을 제한하기는커녕 오히려 인간의 본성보다 훨씬 열등하며 또 이 본성에 봉사하고 따르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의 출중한 특권, 즉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고 짐승과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존재가 되게 해주는 구성 요소는 지성 또는 이성이다. 그리고 인간이 이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인간은 다른 모든 짐승들처럼 이 땅의 재화들을 단순히 이용하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최대한으로 활용하기를 원한다. 이것이 곧 안정된 재산의 소유권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사용됨으로써 소모되는 일시적 사물들뿐 아니라 사용되더라도 소모되지 않는 항구한 사물들까지 소유하는 권리인 것이다.


재화의 공동 사용과 사적 소유


5.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본성을 더욱 깊이 통찰해 보면 한층 더 명백해진다.

인간은 하느님의 영원 불변한 법과 보편적 섭리 안에서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까지도 내다보는 폭넓은 인식 능력과 자유 덕분에 자신을 스스로 보살필 줄 안다. 따라서 인간은 일시적 순간뿐 아니라 장래를 위해서도 자기의 삶을 꾸려나가기에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방편들을 선택해야 한다. 이는 땅에서 생산되는 결실들을 향유하는 권리 이외에도 땅 자체를 소유할 권리를 인간이 가지고 있으며, 또 인간은 땅의 풍요로운 생산물들에 힘입어 미래에 대비한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인간의 욕구는 한번 충족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되살아난다. 즉, 오늘 충족된 욕구가 내일 다시 꿈틀거린다. 그러므로 자연은 인간이 자기의 끝없는 욕구를 적절히 충족시켜 줄 재화들을 지배할 수 있도록 그 권한을 인간에게 부여하였음이 분명하다. 풍성한 결실로써 인간에게 갖가지 재화들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토지뿐이다.


6. 국가의 보살핌에 무턱대고 의존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국가보다 먼저 인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국가가 형성되기 이전에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돌볼 권리를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온 인류로 하여금 땅을 지배하고 활용하게 하셨다는 사실은 사유 재산의 소유와 상반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공동으로 소유해야 한다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한 특정인에게 어느 한 부분의 땅도 독점 분배되지 않고 개인의 노력과 각 민족들의 제도에 따라 사적 소유의 규정이 허용되야 한다는 뜻으로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땅을 선사하셨기 때문이다.

더욱이 토지가 비록 각 개인 소유로 분배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여전히 모든 이들에게 공동 이익과 편의에 봉사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왜냐하면 땅으로부터 양식을 구하지 않는 인간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재화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노동으로써 생계를 꾸려나간다. 진정 생계 유지를 위한 보편적 방편이 노동인데, 그것은 자기의 토지를 직접 경작하는 형태의 노동일 수도 있고 또는 노동이나 기술을 제공하여 그 대가로 땅의 여러 가지 소출 대신에 임금을 받게 되는 형태의 노동일 수도 있다.


7. 사유 재산권이 자연법에 온전히 부합된다는 것을 입증하는 또 다른 증거가 있다. 실제로 인간이 토지를 경작하고 열성껏 관리할 때에 한하여 토지는 생계 유지와 인간 생명의 성숙에 필요한 것을 인간에게 제공한다. 인간은 자연의 결실들을 획득하는 과정 중에 육체적으로 수고하고 정신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이로써 그는 자연의 일부를 자신 안에 간직하여 자연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자연 안에 자기 인격의 흔적을 낙인처럼 남겨두게 된다. 이런 까닭으로 인하여 인간은 당연히 토지를 자기 소유로 삼으며 그 토지를 존중해야 하는 권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정법과 신법에 의해 인정되는 사유 재산


8. 이처럼 명백한 근거에 비추어볼 때, 어처구니없는 이상론을 되풀이하는 사람들의 주장 안에 모순점들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그들은 땅의 활용과 땅의 여러 가지 생산물들은 인간에게 허용하지만 인간이 경작한 토지나 새로 개간한 농토에 대한 소유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처럼 소유권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마침내 인간에게서 자기 수고의 결실을 교묘하게 빼앗아가게 된다는 것을 그들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다. 토지는 경작인의 노동과 기술에 의하여 변화된다. 즉 황폐한 땅, 불모지가 비옥한 농토로 된다. 이와 같이 토지를 개량하는 노동은 그 토지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을 정도로 인격의 자국을 남겨둔다. 그렇다면 그 토지를 경작하지 아니한 다른 사람이 그 결실을 가로채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이겠는가? 결과가 반드시 원인에 뒤따르는 것처럼 노동의 결실도 당연히 수고한 당사자에게 돌아가야 한다.

따라서 인류가 소수의 다른 의견들을 세밀히 고찰하지 않더라도 자연법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면, 자연법에서 재화 분배의 기본 원리를 확인하고, 또 사유 재산이 인간의 본성 및 평화로운 사회 생활에 지극히 부합된다는 것을 깨닫고 전 세기에 걸쳐 실천해 오면서 사유 재산의 소유와 그 권리를 공공연하게 인정해 온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리고 자연법 안에 그 고유한 권위와 효력의 바탕을 두고 있는 정당한 실정법들은 그러한 권리를 승인하고 공권력으로 보호해 준다. 신법 또한 다른 사람의 재물에 대한 탐욕까지도 엄금하면서 사유 재산권을 인정한다. 󰡒너희는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못한다. 이웃의 집이나 밭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지 탐내지 못한다.󰡓1)


가정과 국가


9. 우리가 개인의 사유 재산권을 가정 생활과 관련하여 고찰해본다면 그 권리의 의미는 더욱 명백해진다.

자기의 고유한 생활 상태를 선택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이다. 인간은 자기 처지에서 독신 생활의 복음적 권고를 따를 수도 있고 혼인의 계약에 매여살 수도 있다. 결혼 생활의 권리는 자연적이고 기본적이기에 실정법이 그것을 폐지할 수도 없고,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라󰡓2)는 하느님의 명령으로 제정된 혼인의 목적을 제한할 수도 없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가정은 가족 사회로서 작은 사회이기는 하지만 다른 모든 사회에 우선하는 진정한 사회이고 국가와는 독립된 권한과 의무를 지닌 사회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사유 재산권에 관하여 우리가 이미 말한 사실은 가정의 우두머리인 가장에게 해당된다. 더욱이 가정 생활에 있어서 그의 인격이 미치는 영향력이 광범위하고 포괄적일수록 그가 향유하는 사유 재산권은 더욱더 강한 힘을 지닌다. 가장은 침해될 수 없는 자연법으로 말미암아, 자녀들을 부양할 책임을 맡고, 그로 하여금 자녀들 안에서 자신의 모상과 인격의 연장과 계승을 인식하게 해주는 자연의 충동 때문에 그는 자녀들이 고된 삶의 여정 중에서 그들의 욕구를 정당하게 충족시킬 수 있도록 당연히 그들을 보살펴주기 마련이다. 자녀 부양의 책임 완수는 가장이 후에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상속시켜 주게 되는 풍성한 재화를 획득함으로써 가능하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진정한 사회인 가정은 국가와 마찬가지로 고유한 권한인 부권에 의하여 다스려진다. 따라서 가정은 자기 목적의 제한된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기를 지탱하고 자기의 정당한 독립을 유지하기에 필요한 방편들을 선택하고 활용하는 데 있어 국가와 대등한 권리를 가진다. 왜냐하면 가족 사회는 논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국가에 선행할 뿐 아니라 국가보다 더 중요한 사회이므로 이에 마땅한 권리와 의무를 지녀야 한다. 만일 인간이나 가정이 국가에 예속되어 국가로부터 도움은커녕 손해를 보거나, 보호받기는커녕 자기의 고유한 권리들을 침해당한다면 그러한 국가는 바람직하기보다는 오히려 배척되어야 할 것이다.


10. 그러므로 국가가 가정의 신성한 영역을 침범하기를 바라는 것은 위험 천만한 큰 잘못이다.

만일 어떤 가정이 불행하게도 극심한 곤경에 처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그 곤궁에서 헤어날 수 없다면 그러한 상황에 공권력이 개입하는 것은 분명히 타당한 일이다. 가정은 국가를 형성하는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가정의 가족들간에 심각한 마찰이 생겨 큰 혼란이 야기될 경우에 국가가 개입하여 각 가족에게 각자의 몫을 되찾아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조정 역할은 시민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공명 정대한 정의의 원칙에 따라 그 권리들을 확인하고 보호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가의 개입은 이 선에서 끝나야지 그 이상의 개입은 안된다. 그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자연이 용납하지 않는다. 가장의 권한은 인간 생명의 근원 자체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국가가 그것을 철폐할 수도 그 역할을 대신 담당할 수도 없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분신이다.󰡓 말하자면 아버지의 인격의 연장이다. 정확히 말한다면 자녀는 그들 자신의 존재로서가 아니라 그들이 태어난 가정을 통하여 국가의 한 구성원이 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즉, 󰡒자녀들은 당연히 아버지의 분신이기 때문에 그들이 이성을 사용할 수 있기 전에는 부모의 보호를 받는 것이다.󰡓3)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부모의 보살핌을 국가의 배려로 대치시킴으로써 자연의 정의를 거스르며 가족들간의 유대를 파괴한다.


* 소제목은 이탈리아어 번역문을 따랐고, 항 번호는 라틴어 원문(Libreria Editrice Vaticana, 1971)의 단락에 따라 매겼다.


1. 신명 5,21.

2. 창세 1,28.

3. 성 토마스 데 아퀴노, [신학대전」, II-II, q.10, a.12.


빈곤에 대한 공산주의 원리


11. 또한 국가의 개입은 정의에 어긋날 뿐 아니라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혼란과 무질서 속에 빠뜨려 증오와 견디기 어려운 참혹 상태를 초래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상호간의 원한, 비방, 불목의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고 개인의 재능과 근면을 고취시키는 자극이 전혀 없어져 재화의 원천이 근원적으로 고갈되어 버리고 그토록 염원해 온 평등의 꿈은 결국 굶주림과 헐벗음이 널리 만연되는 지경에 이르고 말 것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에 근거하여 볼 때,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사회주의자들이 주창하는 재산의 공유화는 정작 혜택을 받아야 할 노동자 당사자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므로 배격되어야 한다. 재산의 공유화는 각 개인의 타고난 권리들을 침해하고 국가의 기능들을 변질시키며 만인의 평화를 교란시킨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추진하려면 확고 부동한 기본 원칙으로 사유 재산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 명명백백하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본인은 참다운 해결책을 어디서 찾아낼 수 있는지를 밝히려 한다.


교회와 사회 문제


12. 본인은 분명히 본인에게 속한 권한으로 확신을 가지고 이 문제에 접근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신앙과 교회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결코 그 진정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의 권한에 속한 방편들을 관장하며 종교를 보살피는 일이 본인의 주된 임무이므로, 침묵을 지키는 것은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같이 보일 것이다.

분명코, 이토록 어려운 문제는 다른 사람들의 활동과 노력을 요청한다. 즉, 국가의 통치자들, 고용주들과 부유한 자들, 그리고 이 문제에 직접 연루되어 있는 노동 계층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교회의 협조가 없다면 그 모든 노력은 분명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사실상 교회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갈등을 해소시키는 데에 적절한 가르침을 복음으로부터 얻어낸다. 교회는 자신의 가르침으로써 인간 정신을 계몽하고 각 개인의 생활과 습관들을 교화시키는 데에 노력을 쏟는다. 수많은 유익한 제도들을 활용하고 모든 사회 계층의 여론과 역량들을 수렴하여 노동자들의 상태를 개선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모색하는 데에 기여하기를 교회는 바란다. 또한 교회는 이러한 목적의 성취를 위하여 적절하고도 합당한 범위 내에서 국가의 권위와 법률의 개입에 의지하여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투쟁 없이도 계층들간의 화목은 가능하다


13. 무엇보다도 먼저 확립되어야 할 주요 원칙은 인간의 고유한 조건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 조건에 비추어볼 때에 세상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제거하기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사회주의자들은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이지만, 사물의 본성을 거스르는 온갖 시도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가장 뛰어난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즉, 모든 사람이 똑같은 재능, 성실, 건강, 체력을 지니지는 않는다. 이같이 불가피한 차이로부터 당연히 사회적 조건들의 차별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 차이는 오히려 개인에게나 사회에게나 모두 이득이 되는데, 사회 생활이 다양한 소질들과 서로 다른 직분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러한 직분들을 수행하도록 움직이게 해주는 기본 충동이 곧 각 처지의 불평등인 것이다.

그리고 육체적 노동에 대해서만 생각해 본다면, 원죄 이전과 똑같은 󰡐무죄󰡑 상태에 인간이 처하여 있다 해서 그가 전혀 일하지 않는 게으른 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상태에서는 마음의 휴식을 위하여 인간이 기쁨으로 노동하였지만 범죄한 이후로는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마땅히 힘겹고 지겨운 처지에서 노동을 해야만 하였다. 󰡒땅 또한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죽도록 고생해야 먹고 살리라.󰡓4)

이와 같이 고통도 이 땅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견디어내기가 어렵고 가혹한 것은 인간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죽을 때까지 인간을 따라다니는 죄악의 탐탁치 아니한 결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숙명이다. 또 인간이 아무리 애쓰고 발버둥치더라도 진정 이 세상의 고통을 없앨 수 있는 방법과 기술은 결코 없다. 이 땅에서 고통을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가련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죄벌과 고통이 없는 삶과 완전한 평화와 기쁨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사람들은 백성을 기만하는 것이며 현 상태보다도 더 심한 고통에의 길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고통에 대한 가장 적절한 태도는 인간의 모든 사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고 동시에 우리가 말한 대로 악에 대한 해결책을 다른 곳에서 찾아내는 것이다.


` 지금 우리가 다루는 문제 중에서 가장 잘못된 견해는 한 사회 계층이 다른 계층과 본성상 적대 관계에 있으므로 부유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은 성격상 상호간에 끝없이 투쟁하기 마련이라고 내세우는 것이다. 이 주장은 이성과 참된 진리에 완전히 상반된다. 인체에는 다양한 지체들이 서로 일치하며 좌우 대칭이라 불리는 균형 잡힌 조직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본래 국가도 부유한 자들의 계층과 가난한 자들의 계층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또 그 결과 균형을 유지하기를 요구한다. 두 계층은 각기 다른 계층을 절대 필요로 하는데, 자본은 노동 없이 있을 수 없고 노동은 자본 없이 있을 수 없다. 화합이 만사를 아름답고도 질서 정연하게 만드는 반면에 끝없는 반목은 혼란과 잔혹만을 조장할 뿐이다. 그리스도교는 분쟁을 종식시키고 나아가 분쟁의 뿌리 자체를 근절시키는 놀라운 힘을 풍성히 지니고 있다.

교회가 해석하고 수호하는 모든 그리스도교 가르침은 무엇보다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에게 정의가 당당히 요구하는 의무들에서 출발하여 그들에게 그들 상호간의 의무들을 상기시켜 줌으로써 서로 화해시키고 일치시키는 강한 힘을 지닌다.


노동자와 고용주의 의무들


정의의 원리에 따르면 근로자와 노동자의 의무는 다음과 같다. 그들은 자유와 평등에 따라 체결된 업무를 온전하고도 충실하게 수행해야 하고, 사용자의 재산을 침해하거나 그의 인격을 손상하지 말아야 하며, 자기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경우에라도 폭력의 사용을 삼가야 하고 자신을 수호하려는 노력을 폭동으로 변질시켜서는 안된다. 또한 허황된 것들을 약속하면서 교활하게 선동하는 자들과 야합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결과는 무익한 후회와 만사를 끝장내는 파멸일 뿐이다.

자본가와 고용주가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들은 고용인들을 노예처럼 취급하지 말아야 하고 그들이 혹시라도 그리스도교인이 됨으로써 더욱 품위를 지니게 되는 인격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 이성과 신앙에 비추어볼 때 노동은 인간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수고로써 정직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품위를 드높여준다. 참으로 부당한 일은 인간을 마치 이윤 추구를 위한 물건처럼 마구 다루는 것이고 오직 노동 기술이나 노동력으로써만 인간을 평가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종교 생활 및 영혼의 선익과 관련된 의무를 준수하도록 고용주들은 배려해 주어야 한다. 따라서 종교적 의무들을 수행하는 데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와 편의를 노동자들에게 제공하는 것, 타락의 온갖 유혹과 저속한 행위의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해주는 것, 가정에 대한 책임감과 절약 정신을 잃지 않도록 해주는 것, 연령과 성별에 적합치 않는 힘겨운 노동을 강요하지 않는 것은 고용주들의 당연한 의무들이다. 그들의 의무 가운데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각 노동자에게 정당한 임금을 주는 것이다.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하여 정의에 따라 임금을 결정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자본가들과 고용주들이 대체로 명심해야 할 원칙은 자신의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곤궁한 자들과 불쌍한 자들을 억압하고 이웃의 비참을 이용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신법과 실정법이 모두 금한다는 사실이다. 정당한 임금을 착취하는 것은 하느님께 복수를 호소하리만치 중대한 과오이다. 󰡒잘 들으시오. 당신들은 당신들의 밭에서 곡식을 거두어들인 일꾼들에게 품삯을 주지 않고 가로챘습니다. 그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또 추수한 일꾼들의 아우성이 만군의 주님의 귀에 들렸습니다.󰡓5) 마지막으로 부유한 자들은 폭력으로나 속임수로나 고리 대금업의 방법으로든 노동자의 보잘것없는 소득에 손해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의무는 노동자가 자신을 보호하기에는 미약하고 능력이 부족하며 또한 그의 밑천이 빈약하기 때문에 더욱 각별히 준수되어야 한다.


15. 이러한 의무들이 잘 지켜진다면 비참한 상태가 충분히 완화되고 분쟁의 여러 원인들이 제거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모범을 따르는 교회는 더욱 높은 목적을 지향한다. 즉, 두 사회 계층을 가능한 한 가깝게 접근시키고 친구 사이가 되도록 노력한다.

인간의 마음이 또 다른 삶, 곧 영원한 삶을 향해 있지 않으면 현세의 사물들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한다. 영원한 삶이 없다면 도덕적 선에 대한 참다운 개념은 반드시 없어지고 말 것이며 나아가 온 창조계가 설명할 길 없는 수수께끼가 될 것이다. 장차 실현될 세상의 삶이 인간의 참 삶이라는 것은 자연 자체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리이고 그리스도교의 교리인데, 이 가르침을 근본 바탕으로 하여 종교의 모든 진리가 구성되어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지상적이고 일시적인 재화들이 아니라 천상적이고 영원한 보화들을 향유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이 땅은 고향으로서가 아니라 유배의 장소로서 하느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재산 및 다른 지상적 보화들을 많이 소유하고 있든 적게 소유하고 있든 그것은 영원한 행복에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그 재화들을 선용하거나 악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구속 행위로써 우리를 구원하셨지만 현세의 삶 안에 얽혀 있는 여러 가지 번민과 고통들을 없애신 것이 아니라 덕을 쌓는 자극제 및 공로를 쌓는 기회로 그것들을 변화시키셨다. 따라서 아담의 후손들 중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의 피 흘리신 발자취를 따르지 않는다면 하늘 나라에 도달할 수 없다. 󰡒우리가 끝까지 참고 견디면, 그분과 함께 다스리게 될 것이다.󰡓6) 예수께서는 번민과 고통들을 스스로 기꺼이 떠맡으심으로써 놀랍게도 고통과 수고의 짐을 가볍게 하셨고 또한 모범으로써뿐 아니라 당신의 은총 또는 영원한 보상에 대한 희망으로써도 우리로 하여금 고통을 더욱 쉽게 이겨낼 수 있게 해주셨다. 󰡒우리는 지금 잠시 동안 가벼운 고난을 겪고 있지만 그것은 한량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입니다.󰡓7)


16. 그러므로 부유한 이들은 경고를 받는다. 재화는 부자들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지 못하며 그것들은 장차 올 행복을 위해서 유익하기보다는 오히려 해로운 것이다.8) 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상당히 엄중한 경고9)를 상기하고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그들은 재화의 사용에 대하여 심판관이신 하느님께 가장 엄격한 셈을 바쳐야 한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기초윤리신학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