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13세의 회칙 '새로운 사태' 전문 | 사회윤리 (2)

2005. 9. 27. 오후 3:55:27

글자

재화의 소유와 사용


재화의 사용에 대하여 가장 훌륭하고 중요한 원칙은 역시 철학에 의하여 제시되었지만 교회에 의하여 완전하게 보충되어 정립된 가르침이다. 교회는 순수 사변에 만족하지 않고 실천의 영역에로 나아가 삶을 교화시키려고 애쓴다. 그러한 가르침의 바탕은 재산의 부당한 소유와 정당한 사용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있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사유 재산권은 인간의 천부적인 권리이며, 또한 이 권리의 행사는 특별히 사회 생활에 있어서 합법적일 뿐 아니라 절대 필요한 것이다. 󰡒인간이 자기 재산을 소유하는 것은 인간의 생활에 정당하고, 나아가 필수적이다.󰡓10) 재화의 사용이 어떠해야 하느냐고 질문을 받는다면, 교회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한다. 󰡒인간은 물질적 재화를 자신의 것으로뿐 아니라, 공동의 것으로 가져야 한다. 이에 대해 사도께서도 말씀하신다. 이 세상의 부자들은 자기의 소유를 기꺼이 나누어주어야 한다.󰡓11) 물론 아무도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에게 꼭 필요한 것까지 남들에게 베풀어야 할 의무를 진 사람은 없다. 더욱이 자기 신분에 알맞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까지 내놓아야 할 의무는 없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자기의 처지보다 못하게 살아야 할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12) 그러나 자기 생활에 필수적인 것과 신분에 필요한 것 이외의 나머지를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마땅한 의무이다. 󰡒그릇 속에 담긴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13) 극도로 궁핍한 경우를 제외하고 이러한 의무들은 분명히 정의에 입각한 의무가 아니고 그리스도교 애덕의 의무이므로 법률로 그 실천을 강요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인간의 법과 판단에 그리스도의 법과 판단이 선행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너그러이 베풀어주는 덕행에 관하여 여러 가지 형태로 말씀하시면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14)고 가르치시고 또 궁핍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푼 것이나 거절한 것은 곧 당신 자신에게 선행을 행한 것이나 거절한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15)

결론적으로 외적이고 물질적인 재화이든 정신적인 재능이든 하느님께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기의 인격 완성에 그것을 활용하는 동시에 하느님 섭리의 봉사자로서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그것을 활용하도록 그 은혜를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재능이 있는 사람은 그 재능을 숨기지 말아야 하고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은 자선을 베푸는 데에 너무 인색하지 말아야 하고 기술을 가진 사람은 이웃 사람의 편의와 이익을 위하여 그것을 나누어야 한다.󰡓16)


노동의 존엄성


17. 교회는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처지와 가난이 하느님 앞에 결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모범을 보이시어 이 진리를 확인하셨다. 그분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부요하셨지만 가난하게 되셨고󰡓17)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하느님 자신이시지만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시고 사람들에게 그렇게 인정받기를 원하셨다. 더욱이 그분은 노동하심으로써 생애의 대부분을 보내시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저 사람은 그 목수가 아닌가? 그 어머니는 마리아가 아닌가?󰡓18) 이러한 모범을 친히 보여주신 하느님을 생각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진실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인간의 진정한 존엄성과 고귀함은 전적으로 도덕 곧 덕행으로 응답하는 태도에 있다. 덕은 높은 신분의 사람이건 낮은 신분의 사람이건, 부유한 자이건 가난한 자이건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쌓을 수 있는 공동 유산이다.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간에 영원한 행복의 보상은 오로지 덕을 쌓는 행업에만 베풀어진다. 더욱이 하느님께서 불쌍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쏟으시는 것 같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자들은 행복하다고 선언하시기 때문이다.19) 그분은 무거운 짐에 허덕이는 모든 사람을 인자로이 부르시어 당신께로부터 위안을 받게 하신다.20) 무력하고 박해받는 사람들을 넘치는 사랑으로 감싸주신다. 이러한 진리들은 부유한 자들의 오만한 태도를 낮추고 불쌍한 자들의 굴욕적 자세를 치유해 주는 놀라운 효력을 지닌다. 또한 부유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 모두에게 절제와 관용의 정신을 고취시키는 힘을 지닌다. 이러한 진리에 힘입어 교만이 빚어낸 간격이 좁혀지고 두 계층이 서로 화해함으로써 우정 어린 화합에 일치하게 되는 일이 어렵지 않게 이루어질 것이다.


자연의 재화 및 은총의 보화의 공동 소유


18. 그러나 두 계층이 복음의 법에 순종한다면 단순한 우정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형제적 사랑의 결속을 염원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사람이 만인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로부터 태어났으며 궁극 목적이신 하느님께로 향해 나아가고 있고 하느님 홀로 사람들과 천사들을 완전하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았고 그들 서로만이 아니라 󰡒많은 형제들 중의 맏아들󰡓이신 주 그리스도와 결합되도록 하느님의 자녀의 품위에 부르심을 받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아가 그들은 자연의 재화와 은총의 보화가 인류의 공동 유산이고 자신의 결함이 없다면 천상의 보화들을 상속받는 데에 제외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느끼게 될 것이다. 󰡒자녀가 되면 또한 상속자도 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을 받을 사람입니다.󰡓21)


19. 바로 이것이 복음 안에 내포되어 있는 이상적인 권리와 이상적인 의무이다. 복음이 세상 안에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면 온갖 분쟁이 종식되고 평화가 회복되지 않겠는가?


교회의 모범과 교도권


20. 교회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어머니다운 태도로 그 자신이 몸소 그것을 실천한다. 교회는 자기 교리가 내포하고 있는 구원의 생명수가 주교들과 사제들을 통하여 넘쳐 흘러서 온 땅을 적시도록 배려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고 고취시켜 주려고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이 하느님의 계명을 잘 지킬 수 있도록 인간의 마음과 의지를 순화시켜 준다. 그리고 실제로 모든 선익을 가져다 주는 가장 중대한 이 역할은 오로지 교회만이 참으로 효과 있게 수행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가 이 목적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을 감화시키기 위하여 이용하는 방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고, 따라서 그 자체 안에 신적인 효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방편들만이 사람들의 깊숙한 마음속과 양심에까지 가닿아,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의무감을 갖고 행동하게 해주고, 여러 가지 욕망과 격정들을 잘 다스리게 해주며, 고귀하고 드높은 사랑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해주고 덕을 쌓는 과정에서 생기는 모든 장애들을 대범하게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사실을 확인하려면 역사적인 사례들을 일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들과 사항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업적으로 말미암아 인간 사회가 변화되었고, 이러한 변화는 인류의 발전이었으며 나아가 도덕적인 죽음으로부터 도덕적 삶에로의 소생이었고 일찍이 전혀 볼 수 없었고 앞으로도 더 나은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더없이 완벽한 발전이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변화의 근원이고 완성이시므로, 그 모든 변화가 그분에게서 연유되었으며 그분과 결부되어 있음을 우리는 명심하고 있다. 세상이 복음의 빛을 통하여 말씀의 강생과 인간 구원의 위대한 신비를 깨달았을 때에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인간 사회 안에 파고들었으며, 세상은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계명과 법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만일 세상의 죄악을 척결하는 해결책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그리스도교적 생활과 그리스도교적 제도로 되돌아가는 길밖에는 없을 것이다. 몰락하여 가는 사회를 일으켜 세우려면 그 사회가 존재하기 시작할 때에 부여받은 근본 원리들에로 그 사회를 다시 이끌어가야 하는 것이 중요한 원칙이다. 모든 사회 단체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그 자신의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고 거기에 도달하여야 한다. 사회 단체의 모든 움직임과 활동을 유발시키는 원리는 그 단체를 발생시킨 똑같은 원리이기 때문이다.


4. 창세 3,17.

5. 야고 5,4.

6. 2디모 2,12.

7. 2고린 4,17.

8. 마태 19,23-24 참조.

9. 루가 6,24-25 참조.

10. 성 토마스 데 아퀴노, [신학대전], II-II, q.66, a.2.

11. 「신학대전」, II-II, q.65, a.2.

12. [신학대전」, II-II, q.32, a.6.

13. 루가 11,41.

14. 사도 20,35.

15. 마태 25,40.

16. 성 대 그레고리오, Evang. Hom. 10, 7항.

17. 2고린 8,9.

18. 마르 6,3.

19. 마태 5,3:󰡒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참조.

20. 마태 11,28:󰡒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편히 쉬게 하리라󰡓 참조.

21. 로마 8,17.

22. 1디모 6,10:󰡒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참조.


21. 따라서 교회의 모든 배려가 지상의 현세적 삶에 속하는 것을 무시하면서까지 오로지 영혼의 구원에만 전적으로 쏠려 있다고 믿어서는 안된다.

교회는 특히 노동자들이 그들의 가련한 처지에서 헤어나고 그 상태가 호전되기를 바라며 또 그렇게 배려하고 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들을 덕행으로 인도하고 교화시킴으로써 그 일을 추진한다. 그리스도교의 관습들이 그러한 역할을 계속 수행해 나갈 때에 그 자체로서도 현세 삶의 번영에 기여한다. 왜냐하면 그 관습들은 온갖 선의 근원이며 원천이신 하느님의 축복을 얻어 누릴 수 있으며, 모든 것이 풍족한 상황에서도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재난, 즉 재산에 대한 탐욕과 쾌락에 대한 탐닉을 규제하기 때문이다.22) 그 관습들은 검소한 생활에 만족하면서 재산의 부족을 절약으로 보충하며, 적은 재화들은 물론 큰 재화들을 낭비하고 심지어 엄청난 유산까지 탕진하게 만드는 악행들을 멀리하라고 가르친다.


교회가 실천하는 애덕의 활동


교회가 하는 일은 그 밖에도 또 있다. 교회는 빈곤의 구제에 효력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진 수많은 단체들을 설립하고 또 운영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교회는 자기를 반대하는 적들로부터도 찬사와 경탄을 자아낼 정도로 훌륭하게 이 자선 사업을 추진해 왔다. 초기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안에는 형제적 사랑의 열정이 뜨겁게 달아올라 부유한 이들이 다른 형제들을 도와주기 위하여 너무나 자주 자기 재산을 희사하였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23) 사도들은 매일의 자선 행위를 부제들에게 맡겼는데 부제직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하여 제정된 직분이었다. 또한 사도 바오로는 모든 교회를 돌보는 일에 여념이 없었는 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모은 희사금을 가난한 신자들에게 직접 전해주기 위하여 고달픈 여행을 감내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신자들이 집회 때마다 자발적으로 모은 헌금들을 󰡐신심의 보증금󰡑이라 불렀다. 왜냐하면 그것은 󰡒구차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죽었을 때 장례를 치러주고 남녀 구별 없이 가난한 사람들과 고아들과 늙은 사람들과 파산당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데에 사용되었기󰡓24)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점차로 교회의 세습 재산이 형성되었는데 교회는 그것을 항상 종교적인 배려로써 가난한 사람들의 공유 재산으로 활용하였다. 더욱이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의 참신하고도 결정적인 구제 활동 덕분에 구걸하는 부끄러움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사실상 교회는 가난한 이들과 부유한 이들 모두의 공동 어머니로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영웅적인 자선 행위를 독려하고 실천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여러 수도 단체와 다른 자선 단체들을 탄생시켰는데, 이 단체들은 도움과 위안을 받지 못하는 온갖 종류의 비참한 처지를 그냥 방치해 두지 않았다. 이교도들이 과거에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이미 그렇게 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훌륭한 자선 활동에 대해서조차 비난을 퍼붓는다. 그들은 이 자선 활동을 법률적 성격의 원조 사업으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재간이 있고 성실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의 선익을 위하여 전적으로 헌신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자선 활동에는 전혀 미치지 못한다. 자선 활동은 교회의 도덕적 힘에서 나온 것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심으로부터 생겨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를 등지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협력


22. 물론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간적 방편들도 활용하여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 문제에 관심을 쏟는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역할에 따라 또한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본받아 협력해야 한다. 좋은 결과는 그것을 전적으로 좌우하는 모든 원인들이 조화 속에서 함께 작용하여 이루어지는 결실이라는 평범한 원칙을 명심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우리는 국가의 협력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안다.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국가란 어떤 특정한 나라들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구성되어 있고 또 기능을 다하는 그런 국가가 아니라 가톨릭 교리 내용과 완전히 부합되고 올바른 이성의 원칙들 위에 근거를 둔 참된 의미의 국가이다. 본인 자신이 󰡐그리스도교 정신에 따른 국가 조직󰡑에 관한 회칙에서도 이러한 국가관을 제시하였다.


국가 번영의 기원


따라서 국가의 통치자들은 우선 모든 법과 정치 제도들을 총괄적으로 또 균형 있게 운용하여 사회의 번영과 개인의 복리가 자연스럽게 증진되도록 국가를 다스리고 운영해야 한다. 이러한 일은 현명한 정치가의 직분이고 통치자의 본분이다. 그런데 국가의 번영은 특히 도덕적인 사회 관습, 건전한 가정 생활, 열심한 종교 생활 및 정의의 실천, 조세 공과금의 적절한 부과와 균등한 배분, 상공업 및 농업의 발전 그리고 이와 유사한 다른 정책들, 즉 더 훌륭히 촉진될수록 더욱더 백성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여러 요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오로지 이런 제도들을 통해서만 국가는 다른 사회 계층들과 노동자 계층의 복지를 상당히 촉진시킬 수 있으며 또한 부당한 간섭의 의혹을 받지 않고서 자기의 충만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공동선을 보살펴주는 것이 국가의 본분이고 권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가의 이러한 총괄적인 배려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전체 이익이 크면 클수록 노동자들의 복리 증진을 추구하기 위한 다른 방법들을 강구하려는 필요성은 줄어들 것이다.


24. 우리 문제의 핵심에 더 가까이 가려면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 또 있다. 즉, 국가는 더 낮은 계층과 높은 계층의 사람들을 조화 속에서 똑같이 포용하는 단일체라는 점이다. 노동자들도 부자들에 못지 않게 타고난 권리를 가진 시민들이고 참되고 살아 있는 국가 구성원들이며 또 그 결과 두말할 나위 없이 절대 다수인 노동자 계층의 가정들을 통하여 국가가 한 생명체로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계층의 시민들을 소홀히 하면서 어느 한 계층의 시민들을 보살피는 것은 불합리하며 노동자들의 복지를 마땅히 배려해 주는 것이 국가의 진정한 의무이다. 이 본분을 다하지 않을 때 각 사람에게 각자의 몫이 되돌아가게 해주는 정의는 손상된다. 이 점에 대해서 성 토마스 데 아퀴노가 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부분과 전체가 어떤 식으로든 한 단일체를 이루기 때문에 전체에 속하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부분에 속해 있다.󰡓25) 그러므로 공동선을 위해 애쓰는 통치자들이 수행해야 할 많은 중대한 의무들 가운데 으뜸가는 임무는 󰡐분배 정의󰡑를 엄격하고도 공정하게 준수함으로써 모든 계층의 시민들을 공평하게 보살펴주는 일이다.


25. 모든 시민이 예외 없이, 나중에 각 개인들의 이익으로 환원되는 공동 복지에 각자가 협력한다 할지라도 공동 협력은 모든 부면에 있어서 일률적으로 똑같을 수는 없다. 국가의 통치 방식이 아무리 변할지라도 국민 각자의 처지는 항상 서로 다르며 불평등할 것이다. 이러한 다양성과 차이가 없는 인간 사회는 존재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 법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사람들, 판결을 내리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단적으로 말해서 평화시에 치안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 전쟁 중에 나라를 방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여러 직분들이 공동선을 실현하는 더욱 용이하고 효과적인 방편들이기 때문에, 국가의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은 쉽게 이해된다. 근로자들도 똑같은 방식이나 업무로써 공동선에 협조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역시 그들의 업무 수행으로써 공동선의 실현에 큰 일익을 담당한다. 물론 사회 복지의 궁극 목적이 국민 각자의 손색 없는 안녕이기 때문에 사회 복지는 반드시 덕을 바탕으로 하여 실현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물질적 재화의 사용이 덕을 실천하는 데에 필수적이기󰡓26) 때문에 질서 정연한 모든 사회는 그런 재화들을 풍부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물질적 재화들을 생산하는 데에는 논밭에서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전반적인 노동과 기술이 필수적이고 효과적이다. 이 점에 있어서 노동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므로 노동자들의 노동에 의해서만 국가의 부가 생산된다는 것이 아주 확실하다. 그러므로 정부는 노동자 자신이 생산해 내는 국가의 재산에 그가 어떤 방식으로든지 참여할 수 있도록 노동자에게 적극 배려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노동자는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게 되고 또 더욱 편리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어떤 방식으로든지 노동자의 처지를 호전시킬 수 있는 모든 방도가 최대한 강구되어야 하며 또 이러한 배려가 분명히 어느 한 사람에게도 손해를 끼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균등한 혜택을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국가의 그토록 중요한 이득을 산출해 내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처지의 해결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국민들을 위한 국가의 통치


26. 이미 말한 대로 국가가 개인이나 가정을 장악하는 것은 부당하다. 개인이나 가정이 공동선과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국가는 마땅히 개인이나 가정이 가능한 한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 또한 국가의 통치자들은 사회 전체와 그 부분들을 보호해야 한다. 사회를 보호하는 것이 최고 통치권자에게 맡겨진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에 공공의 안녕은 최고의 법으로 보장받을 뿐 아니라 정부의 유일하고 근본적인 존재 이유이다. 정부의 설립 목적이 통치자 개인의 이득이 아니라 국민들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임을 철학과 복음이 한결같이 가르치고 있는 만큼, 통치자는 사회의 구성원들도 마땅히 보호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 권력은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또한 하느님의 주권에 참여하는 것이므로 하느님의 다스리심을 본받아 행사되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자부적 배려로써 온 우주뿐 아니라 각개 피조물까지도 보살피시고 다스리신다. 따라서 사회 전체나 일부 구성원들이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하고 손해를 입게 되는 상황에서 그 침해를 회복하거나 미연에 방지할 만한 별다른 방도가 없을 때에 국가가 개입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의무와 개입의 한계


개인의 복지도 사회의 안녕과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은 사항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공공 질서와 평온이 유지되어야 하고, 가정 생활이 하느님의 법과 자연의 원리들에 따라 영위되어야 하고 종교가 존중되어야 하며 사회의 미풍 양속과 개인의 건전한 생활이 확산되어야 하고 정의가 침해당하지 말아야 하고 사회의 한 계층이 다른 계층들을 억압하지 말아야 하고 국가의 이익을 신장시키고 국가를 수호할 능력을 갖춘 건전하고 강한 시민들이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만일 노동자들의 폭동이나 파업으로 말미암아 사회 질서가 극도로 교란된다면, 가난한 노동자들의 가정이 뿌리째 흔들린다면, 노동자가 종교 생활의 의무를 수행하는 데에 필요한 시간적 여유와 기회를 갖지 못하여 그 생활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한다면, 성문란 및 악으로 유인하는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하여 공장 내의 건전한 풍속이 문란해진다면, 기업주들이 강요하는 부당한 부담 때문에 노동자들이 억압당하거나 인간의 존엄성에 상반되는 계약 조건에 희생된다면, 성별과 연령에 맞지 않는 과도한 작업량과 작업 환경으로 인하여 노동자들의 건강이 위협받는다면, 이런 경우에 법이 힘과 권위로써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법의 개입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는데 국가의 개입이 필요한 경우에 적용되는 똑같은 한계를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악이나 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다른 방도가 없을 때에 한하여 법이 개입해야 한다.


27. 권리를 가진 사람은 누구든지 그 권리를 마땅히 보호받아야 하며 공권력은 권리의 침해를 미연에 방지하거나 그 침해에 대해 처벌함으로써 각 사람에게 그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개인의 권리를 옹호함에 있어서, 국가는 특별히 약자들과 빈자들을 보살펴야 한다. 부유한 이들은 자기 방어 능력이 있으므로, 공적인 보호를 받을 필요가 덜하다. 이와는 반대로 빈곤한 대중은 든든한 재산이 없으므로, 국가의 재산에 크게 의존한다. 따라서 임금 노동자들이 빈곤한 대중에 속하기 때문에, 국가는 이들을 특별한 배려와 관심을 가지고 돌봐야 한다.


국가는 사유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


28. 아주 중요한 몇 가지 개별 원칙들이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국가의 통치자들이 법을 훌륭히 집행함으로써 사유 재산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탐욕의 열기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달아오르고 있는 오늘날에 특히 국민 모두가 각자의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기의 처지를 향상시키는 것은 정의가 허용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을 빼앗거나 평등을 빌미로 하여 다른 사람의 재산을 침해하는 것은 정의와 공동선이 결코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히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다른 사람의 인격을 손상하지 않고 정직하게 자기의 처지를 개선하려고 하겠지만, 그릇된 주장에 물들고 위태로운 변화에 광분하여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소란을 일으키고 다른 사람들을 자극하여 폭동을 선동하려는 자들도 적지 않다. 따라서 국가의 공권력은 이에 즉각 개입하여 선동자들을 규제하고 나서 선동의 위험으로부터 선의의 노동자들을, 약탈의 위험으로부터 양심적인 기업주들을 보호해야 한다.


국가는 노동 파업을 예방해야 한다


29.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키는 동기는 대개의 경우 작업 시간이 너무 길며 고되고 또 임금이 적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자주 발생하는 이런 심각한 불상사를 국가가 미리 방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파업은 고용주들과 노동자 자신들뿐 아니라 상업과 공공 이익에도 손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적 파업에 뒤따라오는 폭력과 소요 사태들이 가끔 사회의 평화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에 가장 큰 도움이 되고 효과적인 해결책은 적절한 법이 노사간의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들을 제때에 제거함으로써 악을 예방하고 또 노사 분규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국가는 영적 보화들을 보호해야 한다


30. 그와 동시에 국가는 노동자가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을 보호해야 한다. 그 가운데 으뜸가는 것이 영적 보화이다. 현세의 삶이 아무리 좋고 바람직할지라도, 그 자체는 창조 목적이 될 수 없고 진리에 대한 완전한 인식에 이르고 또 선을 실천함으로써 영적 생명을 완성시키기 위한 방편이며 길일 뿐이다. 인간의 영혼은 그 자체 안에 하느님의 모상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이 영혼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다른 모든 피조물들을 지배하고 또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온 땅과 온 바다를 이용할 수 있는 주권을 누린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27) 이 점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다. 즉,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주인과 하인, 우두머리와 그 수하 사람 사이에 아무런 차별이 없다. 왜냐하면 󰡒같은 주님께서 만민의 주님이 되시기󰡓28) 때문이다. 하느님 자신이 대단한 존경심으로 다루는 인간 존엄성을 어느 누구도 부당하게 침해할 수 없으며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완성에로 나아가는 길을 걷지 못하게 방해할 수도 없다. 더군다나 인간은 자기의 자유 선택권을 단념하여 영혼의 예속 상태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방치되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이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권리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하느님께 대해 엄격히 수행해야 할 절대적 의무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의무로부터 주일과 축일에 일하지 말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생긴다. 이 휴식은 오랜 시간 무료하게 지내는 상태로 이해해서도 안되고, 더욱이 많은 사람들이 흔히 바라듯이, 범죄의 동기와 낭비의 기회가 되는 전적인 태만으로 생각해서도 결코 안된다. 그것은 종교에 의해 거룩하여진 휴식, 곧 안식이다. 종교와 결부된 휴식은 인간을 노동과 일상 생활의 업무로부터 해방시켜 천상 보화에 유념하게 하고 하느님께 마땅한 예배를 드리도록 해준다. 이것이 바로 휴식의 근본 동기이고 안식의 목적이다. 하느님께서는 구약성서에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29)고 인간에게 말씀하시면서 안식을 율법으로 제정해 주셨고 또한 몸소 안식을 준수하심으로써 직접 가르치셨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 일곱째 날에 창조 사업을 마치시고 안식을 취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엿새날까지 하시던 일을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30)



23. 사도 4,34.

24. 테르툴리아누스, Apologia II,39.

25. 「신학대전」, II-II, q. 61, a.1 ad 2.

26. 성 토마스 데 아퀴노, De Regimine Principum, I, c.15.

27. 창세 1,28.

28. 로마 10,12.

29. 출애 20,8.

30. 창세 2,2.


노동자 및 부녀자와 연소자의 노동에 대한 보호


31. 외형적이고 육체적 안녕을 보호하는 문제에 관하여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이득을 목적으로 사람들을 마치 물건 취급하듯 무차별 혹사시키는 악덕 기업주들의 인권 유린으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해 주는 일이다. 과중한 노동으로 정신이 무디어지고 육신이 핍진해지도록 노동을 요구한다는 것은 정의도 인간성도 용납하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활동에도 한계가 있다. 인간의 활동은 훈련과 실행을 통하여 촉진될 수 있으나, 이는 적절한 시기에 활동을 중지하고 휴식을 취할 때에 한해서 그러하다. 따라서 체력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노동 시간이 길어져서는 안된다. 휴식 시간은 노동의 질, 작업 시간과 작업 장소의 환경, 노동자들의 체질 자체와 건강 상태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예컨대, 채석 작업이나 철, 구리 따위의 지하 자원의 발굴 작업은 건강을 해치는 힘든 노동이므로 작업 시간이 단축되어야 한다. 역시 계절에 따라서도 작업량과 시간이 정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계절에는 쉽게 견딜 만한 노동이 다른 계절에는 참으로 견디기 어렵고 너무 고된 작업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결국 신체 건장한 성인 남자에게나 적합한 노동을 부녀자나 연소자에게 강요하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 연소자들이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충분한 힘을 기르기까지는 공장에서 일을 하지 못하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 사춘기에 발산하는 힘은 한창 자라나는 풀과 같아서 조속히 발육시켜 버리면 그 힘이 빨리 소모되며 나아가 연소자에 대한 교육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직종의 노동은 원래 가사를 돌보는 데에 적합한 부녀자들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다. 여자들은 온유한 성품의 여성다움으로써 정절을 훌륭히 지키며 자녀들을 교육하고 가정의 안녕을 유지하는 데에 타고난 자질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의 규범은 꼭 지켜져야 할 일반 원칙이다. 즉, 노동자에게 필요한 휴식은 노동으로 소모된 체력에 비례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노동으로 소모된 체력은 휴식으로써 회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용주들과 노동자들이 서로 맺은 모든 협약에는 노동자들에게 정신과 육신의 휴식을 보장하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 조건이 있어야 한다. 이것과 달리 합의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하느님과 자기 자신에게 대해 지고 있는 의무들을 저버리도록 유도하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든 절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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