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적정 임금
32. 이제¦ 우리는 지극히 중요한 문제를 다루게 되는데, 그것은 상반되는 양 극단의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하여 올바로 이해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흔히 말하기를 임금은 고용주와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고용주는 합의된 임금을 지불함으로써 할 바를 다하고 그 이상의 것은 아무것도 더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고용주가 합의한 임금 전부를 지불하지 않거나 노동자가 계약한 작업을 완수하지 않을 경우에만 불의가 저질러지며 또한 고용주와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만 국가의 개입이 정당할 뿐이고 그 밖의 다른 경우에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런 논리 전개는 공정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에게 쉽게 납득되지도 않고 모든 사람에게도 인정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측면에서 사태를 관찰할 줄 모르고 또 결정적인 몇 가지 고려해야만 할 사항을 빠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한다는 것은 생활의 다양한 요구, 특히 생계 유지에 필요한 것을 마련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다.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 먹으리라.31) 그러므로 인간의 노동은 인간이 날 때부터 타고난 두 가지 특성을 지니는데, 인격적인 특성과 필연적인 특성이 바로 그것이다. 인격적인 특성이라는 이유는 활동의 힘이 인격 안에 천부적으로 내포되어 있으며 그 힘을 발휘하고 활용하는 사람에게 전적으로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필연적인 특성이라 함은 노동의 결과가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수적이며 또 생명 보존이 자연에 의하여 부여된 불가피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격적인 특성에 비추어서만 고찰해 본다면 노동자가 정당한 수준에 못미치는 임금으로 계약할 수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그가 노동을 원하는 만큼 제공할 수 있으므로, 그가 원해서 적은 임금에 만족할 수도 있고 실제로 그것마저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격적인 특성과 함께 필연적인 특성도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에 현실에 비추어 도저히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이 두 가지 특성은 논리상으로 구별되지만 실제로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사실 생명의 보존은 의무이고 이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은 죄악이므로 아무도 그 의무를 저버릴 수 없다.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생계 유지를 위한 것을 취득할 권리가 나오며, 가난한 이는 노동으로 취득한 임금을 통해서만 그렇게 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와 고용주가 양자 합의로 계약을 체결하고 임금을 분명하게 결정하더라도, 쌍방간의 자유 의사를 우선하고 능가하는 기본적인 정의가 항상 반영되어야 한다. 임금은 노동자가 검소한 생활, 말하자면 최소한의 안락한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 미흡해서는 안된다. 만일 노동자가 궁핍 때문에 강요되거나 더 큰 악이 두려워서 더욱 힘든 조건들을 받아들인다면, 또 원하지도 않는데 고용주와 기업주가 부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것은 폭력을 당하는 것이며, 이에 정의가 항의하는 것이다.
그 밖에도 이와 유사한 다른 문제들이 있다. 작업 시간 및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작업 환경에 대한 세심한 배려는 국가가 부당하게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 환경, 시기, 장소에 따라 사정이 너무나 달라지는 문제이므로 이에 대한 결정은 앞으로 우리가 다룰 당사자들의 협동 단체에 맡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또는 국가의 보호나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만 국가의 개입을 요청하면서 정의에 따라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다른 방도를 강구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계층들간의 화해의 방편인 절약
33. 노동자의 임금이 그 자신과 가족의 생계 유지 및 안락한 생활에 충분할 경우에 그가 현명하다면 쉽게 절약을 생각하게 될 것이고 또 그리하여 본성 자체의 충동에 따라 지출을 줄이고 임금의 일부를 남겨 어느 정도의 재산을 장만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미 지적한 대로, 침해될 수 없는 사유 재산권은 노동자 문제의 실제적이고 효과적인 해결에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법은 이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하며 재산을 소유한 국민의 수효가 가능한 한 늘어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몇 가지 큰 혜택이 뒤따를 것이다. 우선 국가의 재화가 더욱 공평하게 분배될 것이다. 혁명은 사회를 두 계층으로 분리하였으며 큰 차이로 벌어지는, 두 계급으로의 분열을 만들어놓았다. 한 계층은 굉장히 부유하여 막강한 세력을 지닌다. 온갖 종류의 생산과 교역 체계를 장악함으로써 부의 모든 원천을 독점하고 국가의 운영에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다른 계층은 가련하고 힘없는 수많은 대중이다. 이들은 생활고에 쪼들려 마음이 조급하고 항상 소요에 쉽사리 휩쓸린다. 그러나 만일 이들이 안정된 재산을 획득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근면해진다면 두 계층은 서로간에 점차 가까워져서 결국에는 극도의 가난과 극도의 부유 사이의 거대한 장벽이 무너지게 될 것이다.
두번째 혜택은 땅에서 훨씬 많은 소득이 산출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토지에서 일하고 있다는 보람을 느낀다면 더욱 기꺼이 또 열심히 수고한다. 더욱이 토지가 자기 자신과 가족을 위하여 양식뿐 아니라 안락한 생활을 마련해 준다는 기대감 때문에 자기가 손수 경작하는 토지에 대해 더 큰 애정을 가지게 된다. 농토에 대한 이 같은 마음가짐이 땅의 소출과 국가의 재산을 증식시키는 데에 얼마나 많이 기여하는지는 쉽게 이해된다. 그 결과 고향에 대한 애향심이라는 세번째 혜택이 생긴다. 왜냐하면 고국이 대체로 편안한 생활을 마련해 준다면 자기 고국을 등지고 외국으로 떠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유 재산이 각종 세금의 과도한 부과에 의하여 고갈되지 아니할 경우에만 그러한 혜택들이 생길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유 재산권은 인간의 법이 아니라 자연법에서 나온 것이므로 국가는 그것을 폐지할 수 없으며, 다만 재산의 사용을 규제하고 또 공동선과 융화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을 뿐이다. 국가가 각종 세금의 명목으로 각 사람들에게서 그가 바쳐야 할 것 이상으로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고 비인간적인 처사이다.
노동 조합의 역할
34. 결국 고용주와 노동자 당사자가 가난한 이들을 적절히 도와주고 두 계층을 서로 접근시킬 수 있는 단체들을 통하여 노동자 문제의 해결에 상당히 공헌할 수 있다. 그런 단체들로서 상부 상조의 사회 단체, 노동자와 과부와 고아들이 갑작스런 불상사를 당하거나 고질병을 앓거나 그 밖의 사고를 겪게 될 때에 그들을 보살펴주는 사설 단체들이 있다. 그 가운데서 으뜸가는 단체가 노동 조합이며 이 협동 단체는 다른 모든 단체가 지니는 기능을 거의 다 간직하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이 협동체로부터 여러 가지 현저한 혜택을 누렸다. 그 단체는 숙련공들에게 큰 이득을 주었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기념비적 업적들이 증언하고 있듯이, 기술 자체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그런데 문화가 발전하고 새로운 생활 풍습이 형성되어 일상 생활의 요구가 늘어남에 따라 이러한 단체는 오늘날의 실정에 맞게 적응되어야 한다. 이 같은 조직체가 노동자들만으로 구성되거나 또는 고용주와 노동자가 함께 이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며, 그 숫자가 증가되고 그 기능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우리가 이 협동 단체에 대하여 이미 수차례 언급하였지만, 여기서는 노동 조합의 필요성과 긴급성을 다시 한번 설명하고 그 결성 시기, 합법성, 조직 방법, 활동 계획 등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사적 단체와 국가
35. 인간은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뼈저린 체험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활동을 다른 사람의 활동과 연합시키려는 강한 충동을 느낀다. 성서도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혼자서 애를 쓰는 것보다 둘이서 함께하는 것이 낫다. 그들의 수고가 좋은 보상을 받겠기 때문이다. 넘어지면 일으켜줄 사람이 있어 좋다. 외톨이는 넘어져도 일으켜줄 사람이 없어 보기에도 딱하다.32) 또한 의좋은 형제는 요새와 같다.33) 이 자연적 성향으로 인하여 인간은 큰 사회 단체인 국가 및 다른 개별 단체들을 형성하게 된다. 이 개별 단체는 분명히 작고 불완전하지만 참다운 사회 단체이다. 이 개별 단체들과 국가 사이에는 각기 그 직접적인 목적이 서로 다르므로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국가의 목적은 보편적이며 공동선에 관심을 두는 것으로서 모든 국민 각자가 적절한 비례에 따라 그 공동선에 대한 권리를 누린다. 이 때문에 국가는 공적 사회라 불린다. 공적 사회로 말미암아, 성 토마스 데 아퀴노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한 국가를 세우기 위하여 서로 친교의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34) 반면에 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형성되는 다른 사회 단체들은 그 구성원들만의 사사로운 이익을 그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사적 단체라 불린다.
성 토마스 데 아퀴노의 말을 빌리자면, 사적 사회는 둘이나 셋이 공동 교역의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는 것처럼 사사로운 목적을 추진하기 위하여 결성되는 것이다.35) 그런데 이 사적 사회 단체들이 국가 안에서 형성되고 또 많은 부분으로서 존재할지라도, 일반적으로 또 단적으로 말해서 국가가 그 결성을 금지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회 단체에 가입하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권리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는 자연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없애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국가가 시민들의 단체 결성을 금지한다면, 이는 명백히 국가의 존재 자체에 모순을 초래한다. 다른 사회 단체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유래도 바로 사회성이라는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개별 사회 단체가 정의의 공정성과 국가의 안전에 명백히 상반되는 목적을 획책하려 할 때에 국가가 그 결성을 금지함으로써 또는 이미 형성되었다면 그 단체를 해체시킴으로써 반대하는 것은 합법적이다. 그러나 국민의 이 자연적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또 죄악을 저지르지 않도록 그 점에 있어서 최대한의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법은 올바른 이성에 부합될 때에만, 또한 따라서 하느님의 영원한 법에 일치될 때에 한해서 구속력을 지니기 때문이다.36)
36. 이제 교회의 권위와 신도들의 신심이 탄생시킨 수많은 형태의 수도회, 협동 단체 및 그 밖의 다른 사회 단체들을 살펴보려 한다. 지금까지 이러한 단체들이 인류에게 얼마나 많은 혜택을 주었는지는 역사가 증거한다. 이 단체들을 오로지 이성에 비추어서만 고찰해 보더라도 그것들이 정당한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타고난 권리로 말미암아 분명히 합법적인 단체이다. 더욱이 이 단체들은 종교와 결부된 것이므로 오직 교회의 권위에 예속되어 있다. 따라서 국가는 이 단체들에 대하여 어떠한 권한도 행사할 수 없으며 관할권을 주장할 수 없고, 그 대신에 그것들을 존중하고 보존해야 하며 또 필요하다면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현실은 그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여러 곳에서 수많은 방식으로 국가가 그 단체들을 장악하고 실정법에 예속시키며 법인체로서의 권리를 박탈하고 사유 재산을 강탈함으로써 그 단체들의 권리를 침해해 왔다. 그 단체들의 사유 재산에 대한 권리는 교회 및 그 단체의 각 구성원들, 그리고 그 단체가 일정한 목적에 따라 모은 재산을 나누어주려고 작정한 사람들에게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당하고 악독한 강탈 행위를 통탄해 마지않는다. 더군다나 결사의 권리에 대한 요구가 드높아져 가고 있는 이때에 평화를 유지하며 많은 이득을 주는 가톨릭 단체들의 결성이 금지당하고 또 종교와 국가에 해를 끼치려고 공공연하게 획책하는 사람들에게 결사의 권리가 널리 주어지고 있는 현사태를 볼 때에 더욱 통탄스럽다.
가톨릭의 노동 단체
37. 확실히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여러 사회 협동 단체들, 특히 노동자들의 단체가 늘어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단체들 가운데 많은 단체의 기원, 목적, 진로 방향에 관하여 논의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은 정보에 의해 확인된 공통 견해에 따르면, 이 단체들 중 상당수가 그리스도교 정신과 공익에 위배되는 조직으로서, 배후의 우두머리들에 의하여 은밀히 조정되고 있다. 이 막후 인물들은 산업을 독점함으로써 자기 단체에 가입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위협하여 거절하면 큰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고 협박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하에서 그리스도인 노동자는 두 갈래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 생활을 위태롭게 하는 사회 조직에 가담하든가 아니면 자신들의 힘을 규합하고 자기들의 고유한 단체를 결성하여 불의와 견딜 수 없는 탄압으로부터 과감하게 벗어나는 길밖에 없다. 그런데 인간의 가장 고귀한 선을 위기에 빠뜨리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찌 후자의 길을 택하는 데에 주저하겠는가?
38. 가톨릭 신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최고의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그들은 시대의 요구를 통찰하여 노동자들의 처지를 적절하게 향상시키는 일에 온갖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들은 노동자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의 원인을 면밀히 파악하여 노동자 자신은 물론, 그 가족들의 행복을 증진시키며 형평의 원칙에 따라 고용주와 피고용인 사이의 상호 관계를 원만히 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그들은 이 두 계층이 서로 지키고 수행해야 할 근본적으로 중요한 의무들과 복음적 계명들을 생생하게 인식시켜 준다. 복음의 계명들은 인간의 마음이 온갖 종류의 탈선에 빠져들지 않게 해줌으로써 절제를 몸에 배이게 해주며, 국가 내에서 상당한 다양성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과 사물들 간에 조화가 이루어지도록 해준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여러 모임들이 열리는데, 토론 중에 현명한 인사들이 의견을 교환하고 힘을 합쳐서 더 나은 해결 방안에 뜻을 모은다. 또 어떤 사람들은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들이 각기 알맞은 노동 조합에 가입하도록 노력하고 조언과 수단들을 제공하여 그들을 도와주며, 그들이 공정하고 유익한 일거리를 확보하도록 배려한다. 이에 주교들은 그들의 용기를 북돋아주고 그들을 보호하며, 많은 수도 사제들과 교구 사제들은 주교의 지도하에 노동 조합원들의 영신적 선익을 열성껏 보살펴주고 있다. 끝으로 부유한 가톨릭 신자들 가운데는 노동자들과 함께 거의 공동 보조를 취하면서 조합을 결성하고 널리 보급시키는 일에 자기 재산을 아끼지 않고 투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으로써 당장의 어려움을 해결하게 할 뿐 아니라 또한 장래의 영예로운 퇴직과 평온한 노후를 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토록 다양하고 자발적인 성실한 활동이 공동선에 미치는 혜택들은 너무 잘 알려져 있으므로 이에 대해 새삼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본인은 다만 그러한 활동들이 앞으로도 더욱더 활발해지기를 염원할 뿐이다. 그러한 단체들이 갈수록 언제나 번창하고 또 현명하게 운영되기를 희망한다. 국가는 시민들의 합법적인 단체들을 보호해야 하지 그 조직과 규율에 깊숙이 간여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생명력의 움직임은 그 내재적 원리에서부터 저절로 나오며 외부로부터의 거친 간섭은 그 생명력을 말살하기 때문이다.
노동 조합의 규율과 목적
39. 어느 단체가 일관된 목적을 향하여 원활한 활동을 펴나가려면 훌륭한 조직과 현명한 규율이 절대 필요하다. 만일 시민들이 실제로 누려왔던 것처럼 한 사회 단체에 가입하는 자유로운 권리를 가지고 있다면 그들이 자기 목적에 더욱 부합된다고 판단하는 방향에서 조합을 선택하는 권리를 똑같이 누려야 한다. 조직과 규율이 각기 세세한 부문에 있어서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가 여기서 분명하고 구체적인 규범들을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각 국민의 성격, 노동자들의 경험과 재능과 생산 능력, 상공업의 발전 그리고 나아가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할 제반 환경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보편적이고 항구적인 규범으로 설정될 수 있는 근본 원칙이 있다.
노동 조합은 조합원 각자가 가능한 한 최상의 신체적 경제적 도덕적 조건을 증진시키기 위한 목적의 달성에 더욱 적합하고 용이한 방편들을 마련할 수 있도록 조직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관심이 그 주요 목적이 되어야 하며 또 사회 단체의 모든 규율이 그 목적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 아니하면 이러한 조합들이 다른 성격의 단체로 변질되어 버리고, 종교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엉뚱한 단체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더군다나 노동자가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 주는 단체에 가입할지라도 그의 영혼이 영적 양식을 구하지 못해 파멸의 위험을 겪게 된다면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37)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르면, 바로 이 점이 그리스도인과 이교인을 구분짓는 특징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38) 그러므로 이 단체들이 먼저 하느님을 찾게 해야 하고, 조합원 각자가 하느님께 대한 자신의 의무들을 깨닫도록 그들을 위한 종교 교육에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 각기 조합원이 믿어야 할 바, 바라야 할 바 그리고 자기 구원을 위하여 행해야 할 바를 잘 인식하게 해주어야 하며 널리 유포되어 있는 오류들과 타락의 유혹에 물들지 않도록 용의 주도한 방비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노동자가 하느님을 흠숭하고 열심한 신앙 생활을 영위하도록 해주고, 특히 주일과 축일의 의무들을 잘 지키려는 투철한 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모든 이들의 공동 어머니인 교회를 존중하고 사랑하기를 배워야 하고, 교회의 계명들을 준수하며, 죄의 사함과 거룩한 생활을 위하여 하느님께서 몸소 제정하신 성사들을 자주 받도록 해주어야 한다.
40. 사회 단체의 규약들이 종교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그 구성원들의 평안하고 풍요로운 삶과 경제적 안녕을 위하여 그들 상호간의 결속을 다지는 길이 열리게 된다. 공동 이익에 적합한 방식으로 업무들이 분담되고 다양성이 일치를 깨뜨리지 않도록 업무 분담이 조화 속에서 이루어진다. 구성원들 중 어느 누구도 피해를 입지 않도록 업무들을 분담하고 그 책임 한계를 명확하게 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일이다.
각 사회 단체의 공동 재산은 구성원 각자가 필요에 따라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또 고용주의 권리 및 의무가 노동자의 권리 및 의무와 융화될 수 있도록 온전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만일 고용주와 노동자 중 어느 한편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되면, 규약의 구속력 때문에 쌍방 모두가 받아들여야 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정직하고 유능한 인물들을 쌍방의 조직 안에서 각각 선출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톨릭 노동자들의 단합
또 배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노동자들에게 일자리가 부족해서는 안되며 각기 노동자가 어려움을 겪을 때, 즉 갑작스럽고 돌발적인 산업 위기가 발생하였을 때뿐 아니라 병고나 노령이나 그 밖의 불상사가 일어났을 경우에도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기금이 조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규약들이 자발적으로 준수된다면 가난한 사람들의 물질적 복지와 안녕이 충분히 보장될 수 있으며 또한 가톨릭 협동 단체들이 국가 자체의 융성한 발전에 적지 아니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우리가 가까운 과거로부터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결코 경솔한 짓이 아니다. 실제로 인류의 모든 세대가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역사의 사건들은 서로간에 닮은 점이 많다. 왜냐하면 그 사건들은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 규제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섭리는 인류를 창조할 때 미리 정해놓은 목적을 향하여 인류의 모든 사건이 진행되어 가도록 인도한다.
교회의 초창기에 희사나 노동에 힘입어 삶을 꾸려나간 그리스도인들은 세인들로부터 멸시를 받았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하고 무력하였지만 부유한 자들의 동정과 권력 있는 자들의 보호를 받아내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들은 활동적이고 근면하고 평화를 애호하며 정의를 모범적으로 실천하였고 특히 애덕의 정신으로 가득 차 있었으므로 모든 이들에게 인정받았다. 그토록 놀라운 생활과 관습 앞에서 온갖 편견이 사라졌고 악담하는 자들의 험담이 잠잠해졌으며 뿌리깊은 미신의 거짓이 그리스도교의 진리 앞에 굴복당하고 말았다.
오늘날 노동자 문제는 열띤 논쟁의 대상이 되어 있는데 그에 대한 해결책이 좋든 나쁘든 그것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였다. 그리스도교 노동자들이 단체를 결성하여 연합한다면 그 문제를 훌륭하게 해결할 수 있고 또 현명한 지도를 받는다면 그들 자신과 노동자 단체를 위하여 그들의 선조들이 걸어갔던 똑같은 길을 따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인간의 편견과 노여움이 거셀지라도 사악한 마음으로 정의감이 상실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노동자들에 대한 자비심을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노동자들이 근면하고 절도 있으며 이익보다는 정직을 더 중요시하고 다른 모든 것보다 의무감을 앞세우는 것을 사람들이 보게 될 때에 더욱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또 다른 혜택이 초래될 것이다. 즉, 믿음이 부족하거나 믿음의 생활을 영위하지 않는 노동자들에게 회개의 마음과 희망의 열정을 쉽게 불러일으킬 것이다. 노동자들은 너무 자주 거짓 희망, 허황된 기만에 속아왔음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탐욕스런 고용주들로부터 비인간적 대우를 받아왔고 노동으로써 생산해 내는 것 이상의 평가를 거의 받지 못하였음을 자각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에게 올가미를 씌우는 노동자 단체 안에 애덕과 형제적 사랑 대신에, 거만하고 불신에 찬 가난과 함께 수반되는 뿌리깊은 불화가 지배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노동자들 가운데에는, 영육의 비참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참혹한 노예 상태의 멍에를 벗어버리기를 절실히 원하지만 인간 관계나 빈곤에 대한 공포 때문에 감히 실행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자가 얼마나 많겠는가. 만일 망설이는 그들을 가톨릭 단체가 도와 자기의 품안에 따뜻이 맞아들이고 또 그리하여 각성한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원조를 베푼다면 노동자 문제의 해결에 큰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결정적 해결책:애덕
41. 존경하는 형제 여러분, 본인은 이토록 어려운 문제를 누가 또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여야 하는지를 제시하였다.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의 역할을 즉각 수행하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미 심각한 상태의 악이 지연으로 인해 치유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일을 미루다 보면 그토록 심각한 악을 퇴치하는 일이 더욱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국가의 통치자들은 훌륭한 법과 현명한 제도로써 전력을 기울여야 하고, 자본주들과 고용주들은 항상 자기의 의무들을 명심해야 하고, 이 문제에 직접 관련되어 있는 노동자들은 정의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해야 한다. 우리가 처음부터 줄곧 역설해 왔듯이 참되고 근본적인 치유책은 오로지 종교로부터 나올 수 있으므로 모든 사람이 반드시 그리스도교 생활을 다시금 영위해야 한다. 그 생활을 영위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뛰어나고 효과적인 방안일지라도 소기의 목적을 결코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교회를 두고 말하자면, 교회는 모든 시대에 모든 방법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 교회의 활동은 자유로울수록 더욱더 큰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러므로 국민들의 안녕을 돌보는 직책을 맡은 모든 사람이 이 점을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성직자들은 문제 해결에 온 힘과 온 열성을 다 쏟아야 한다. 존경하는 형제 여러분은 권위와 모범으로써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복음의 말씀을 성심 성의껏 꾸준히 가르쳐야 한다. 그들은 각자 최선을 다하여 공동선의 증진에 이바지하고 특히 자기의 안녕을 보살피기 위하여 전심 전력을 다해야 하며 또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 안에 모든 덕의 근원이고 절정인 애덕의 열정을 불러일으켜 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두가 염원하는 안녕은 근본적으로 사랑이 널리 확산되어 생겨난 결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본인이 말하는 사랑은 그 자체 안에 복음 전체를 요약하며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항상 자신을 희생시킬 만반의 태세를 갖춘 그리스도교 사랑, 곧 애덕이다. 애덕은 그야말로 세속의 교만과 이기심을 해소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약이다. 애덕의 신적 요소들에 대하여 성 바오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39)
42. 존경하는 형제 여러분, 본인은 여러분 각자와 여러분의 사제들과 신자들 모두에게 주님께 대한 크나큰 애정과 더불어 하느님 은총과 본인의 호의의 표시인 사도적 축복을 보낸다.
31. 창세 3,19.
32. 전도 4,9-12.
33. 잠언 18,19.
34. Contra impugnantes Dei cultum et religionem, cap.II.
35. 상동.
36. 성 토마스 데 아퀴노, 「신학대전」, I-II, q.13, a.3.
37. 마태 16,26.
38. 마태 6,32-33.
39. 1고린 13,4-7.
로마 성 베드로좌에서,
교황 재위 제14년,
1891년 5월 15일
교황 레오 13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