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대

2007. 1. 16. 오후 11:20:07

글자

"몇 년 전 서울에 있는 어느 본당에서 새 독서대를 구입하였습니다. 그 독서대는 무늬목으로 만들어졌는데, 독서대 앞면에 있는 무늬가 마치 예수님의 얼굴처럼 보인다 하여 수많은 신자들이 그 성당에로 순례(?)를 갔다고 합니다. 신자들의 미신적 믿음을 염려한 교구청에서 그 독서대를 교구청으로 갖다 놓음으로써 소동이 가라앉았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 사건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신자라면 누구나 하느님을 직접 뵙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닌지라 사람들은 기적이나 이상한 표징을 통하여 하느님을 만나고자 합니다. 그래서 병을 고치는 능력을 가졌다는 사람들에게로, 신기한 현상이 일어난 곳으로 사람들은 몰려다닙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행복하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들은 체 만 체하고.

굳이 이상한 현상을 통하지 않고서도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음을, 아니 우리는 매일 주님을 뵐 수 있고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 지요?


우리 믿음을 다시 한번 생각합시다. 우리는 미사를 드리는 가운데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감실 안에 모신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여 계심을 믿어 고백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대와 감실에 경의를 드립니다. (제대에 경의를 드리는 까닭이 이 때문만은 아니지만.) 또 성체와 성혈을 담는 그릇을 정성 들여 다룹니다.

우리는 하느님이신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것을 전하는 요한 복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성서는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특히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인 자리에 바로 하느님께서도 계시리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약속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인 성당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낭독하는 그 순간에 하느님이 우리 가운데 현존하실 뿐 아니라 바로 하느님 자신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왜 우리는 자주 잊고 있을까요?

성체를 받아 모실 때 우리는 행여 성체 조각이라도 땅에 떨어질까 조심하면서 경건하게 성체를 입 안에 모십니다. 그러면서도 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흘려 버리는지요? 성체를 모시는 감실은 화려하게 장식하고 빨간 등으로 다른 것과 구별지으면서도 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독서대는 버림을 받습니까? 감실 안에 종이 나부랭이나 남에게 보이면 지저분해 보이는 것을 넣어 둔다면 얼굴을 붉힐 우리들이 왜 독서대 안과 위에 너저분한 것들을 놔두고도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을까요? 성체를 담는 그릇은 정성 들여 닦고 주의 깊게 다루면서도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성서, 특히 전례 때 사용되는 성서는 어떤 식으로 다루고 있습니까? 성서나 독서책을 사용하면 그래도 나을텐데, 우리는 한번 쓰고 버리는 매일미사 책을 사용하면서도 과연 말씀을 존중하는 마음이 우러나오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말씀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어떻습니까?

 

(고 김인영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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