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아래 저녁, 묵주기도를 드리고 아주 감사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욕설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누워서 감사 어쩌고저쩌고 하느님께 이야기 한다는 게 순간적으로 이상한 욕 하나가 뒤따라 붙으니까 이건 완전히 하느님을 욕하는 꼴이 되고 말았네요. 죄의식이 들면서 십계명 중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자,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최근, 묵주기도 중에 성적인 영화장면이 찰나적으로 떠오른 적이 몇 번 있어서, 그럴 때마다 가볍게, ‘하느님, 제 안의 모든 더러운 생각들, 주님께서 거두어 가주시고 대신 그 빈 자리에 주님께서 생각하시는 귀하고 좋은 것들로 가득 채워주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구 드립니다, 아멘’ 그렇게 화살기도를 쏘고 나면 묵주기도에 다시 전념할 수 있었기에, ‘하느님 왜 욕설이 튀어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제 본 마음은 주님에 대한 감사뿐이라는 거, 주님 아시죠? 용서해 주시고...’ 어쩌고저쩌고 기도 드려봤지만, 욕설은 사라지지 않고 머릿속을 계속 맴돌 뿐이었습니다.
성장기 때 가까운 친구들끼리 흔히 쓰는, ‘기집애’라는 말도 지금 이때껏 써 본 일이 없는데, 지금 이 나이에 입에 담기 민망한 욕설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머리 속에 들리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내 인생에서 하느님을 알게 된 게 최고 복이니 뭐니 1시간 넘게 감사기도 드린 지 얼마 됐다고 뒤돌아 누워 기도와 욕설을 병행하는 제 자신이 너무 낯설게 느껴지더군요. 마치, 내 안에 나아닌 다른 누군가가 들어앉아 절 갖고 노는 기분이었지요.
하느님한테 죽었다 싶어 제대로 된 사죄의 기도를 드린답시고 “하느님....” 무릎 꿇고 일어나 앉았지만, 하느님이란 단어가 나오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그 욕설 때문에 돌 지경이었습니다. “왜 이러지? 하느님...ㅠ.ㅠ 아닌 거 아시죠?” 위를 쳐다보며 온갖 제스처를 떨어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내 진심과는 상관없이 하느님이란 말 바로 뒤에 따라붙는 그 욕설... 욕설이 들리면 하느님께 바로 기도올리고, 하느님이란 단어가 나오면 욕설은 또 들리고, 그럼 전 또 하느님께 기도올리고... 그러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나 봅니다.
알람소리에 벌떡 일어나 앉아 핸드폰을 보니 새벽미사 갈 시간이었습니다. 온 몸은 물젖은 스펀지 마냥 축축 늘어지며, “아이고, 하느님....” 신음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더 불쌍한 건 내 안에서 들려온 어제 바로 그 욕설이었습니다. 이쯤 되자 인력으론 안 되는 일이라 결론내리고 아예 그 욕설의 존재를 인정하기로 한 나는 대신 하느님께 내가 얼마나 하느님을 사랑하며 하느님께 감사해하고 있는지 진심만 알아달라고 기도드리면서 새벽미사 길에 올랐습니다. 그래도, 욕설은 하느님이란 단어 사이사이마다 어김없이 따라붙었지만요.
성가도 흥얼거리며 새벽길을 걷노라니 천근만근 무거운 몸도 서서히 정상으로 회복되는 거 같고 기분도 상쾌해지는 것이 하루아침에 욕쟁이로 전락해버린 나 자신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알 길 없는 이 은밀한 상황이 왠지 우습기까지 하더라구요.
성당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좀 불안이 엄습해오긴 했지만 미사가 끝나면 고해소에 들를 것이라 위안하며 본당에 앉아 감실을 쳐다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제 주위로 구린내가 풍기는 거예요.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미사가 시작됐기에 정신을 집중하려 애썼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정체불명의 냄새는 생선 썩는 비린내로 독하게 변하며 그것이 나한테서 난다는 확신만 들었지요. 집을 나서기 전 분명 샤워에 새 옷으로 전부 갈아입었기에 이 상황을 정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내 안에선 욕설이 들려오고, 밖에선 이상한 냄새가 나고... 견디다 못한 나는 하느님께 제발 벌이라도 내려달라고 기도드릴 밖에요.
시간이 흘러 주변 분들이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쯤 되자 저마다 인상을 찌푸릴 정도로 냄새는 정말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영겁 같은 시간이 또 흐르고 영성체할 때쯤 일어나 앞으로 나가 영성체하겠다고 합장한 손을 내린 순간 냄새의 원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내 왼편 가슴 쪽에서 아래로 길게 지도를 그리고 있는 이물질을 제 옷에서 발견하게 된 것이지요. 세상에... 아깐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던 그것이, 수녀님 앞에서 이게 웬 망신이란 말입니까.... 미사 내내 손을 합장한 채 있었던 터라 그 자국을 발견할 수 없었던 가 봅니다.
영성체 후 후닥닥 제 자리로 돌아와 앉아있으려니, 내 앞에 앉았던 분은 제 자리로 돌아오지 않고 어느새 먼 곳으로 자리를 옮겨버리고 텅 빈 자리만 제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극심한 수치감 속에서 기도고 뭐고 겉옷을 둘둘 말아 가방 속에 넣는 순간, 그 이물질의 정체는 새똥이란 확신이 들면서 하느님이 주시는 메시지를 깨달을 수 있었지요.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안다.’ 제가 본의든 아니든 하느님의 이름에 똥칠을 해버렸음을...
고해를 해야 한다는 것보다 인간의 창피한 감정이 나를 성당 밖으로 미친 듯이 내몰았습니다. 행여 누군가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싶어 고개를 푹 숙이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내내, 주마등같이 스치는 과거 일 중, 섬광처럼 몇몇 떠오르는 사건들이 있었어요.
추운 겨울날 고장 난 수도꼭지마냥 콧물이 줄줄 흘러 병원을 찾았다가 컴퓨터 검사 후 비염5기라는 병원 진단을 받고 코에 칼 대야한다는 의사의 말이 무서워 수술 대신 목사님 기도 받고 하루아침에 나았던 일, 수업 중에 농아들이 보는 앞에서 갑상선이 끔찍하게 무너져 내려 목 안쪽으로 상처가 나, 한 달 동안 말 못하고 평생을 벙어리로 살 뻔했던 일, 육교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몇 달 동안을 절름발이로 산 일 등등... 여기엔 남도 알거나 혹은 남은 모르지만 새똥 사건처럼 나만 이유를 알고 가는 하느님과 저 사이의 비밀이 숨겨져 있지요.
내가 비염에 걸린 이유를 세상 사람들은 몸을 춥게 하고 다녔기 때문이랍니다. 그와는 반대로 하느님께서 제게 가르쳐주신 메시지는 ‘하느님 당신의 생각은 세상 시스템에 단련된 제 이성적인 논리와는 다르다.’는 거였습니다. 수업 중 말 좀 들으라고 농아들한테 훈계를 늘어놓던 날 갑상선이 내려앉은 건 하느님께서 칼 같은 제 혀에 재갈을 물리기위해서랍니다. 대신 목안의 상처로 인해 몇 년간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제게서 하느님께서는 재갈도 끌러 주시고 성가를 곱게 부를 수 있는 발성법까지 덤으로 선물해 주셨지요.
이런 일들로 인해 이성적인 카테고리 속에서만 사로잡혀 살던 제 영혼이 이성의 세계 저 너머 영성적인 사고란 것에 발을 디디기 시작했다고나 할까요.
새똥 사건 이후 어제 오늘, 겉으로는 아무 일 없었던 듯 사람들과 어울려 웃으며 지냈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느님께 망발을 하게 된 일을 돌아보면서 사람들이 죄를 짓게 되면 아닌 게 아니라 아담과 하와처럼 하느님을 피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오늘 다시 새벽미사와 고해소가기까지의 수치심, 창피함은 성당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을 만큼 이미 벌 그 자체인 고로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인과 당신을 모른다 부인한 베드로를 왜 회개하자마자 사랑으로 용서해주셨는지 예수님과 죄인들이 용서받기까지의 심정이 이해갔습니다.
아, 정말이지 새똥만 생각하면 수치스럽고 창피해서 손발 떨리며 몸이 냉해지지만, 고해소에서 주님의 평화를 빌어주신 신부님의 기도는 오늘 하루를 행복과 기쁨으로 나게 해 주신 주님 선물 그 자체였습니다. 지금도 욕설이 생각 안 나는 건 아니지만, 언젠간 뚝 끊길 때까지 고해소를 매일이라도 들락날락거릴 각오가 서있기 때문에 고해소에서 하느님께 용서받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우리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도 듭니다.
지금 제일 안 된 분들은 어쩌면 조당에 걸린 분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께 망언하든 살인하든 사음이든 간음이든 수십 년 냉담했든 뭔 짓을 해도 고해소에 들어가 사죄권으로 다 용서받기만 하면 다음날 바로 영성체를 할 수 있는 우리들이지만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심판까지 덤으로 받으며 사는 조당에 걸린 분들은 그렇지 못할 테니까 말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교회에서의 제일 큰 벌은 조당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세상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이 세상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하신 성서 말씀처럼 사죄권 통해 오는 주님 용서는 주님 사랑이심을 새삼 느끼는 오늘 하루입니다. 그렇지만, 저 위해 누가 기도 좀 해주세요. 욕설이 사라지게끔 제발 화살 기도라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