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한창 더위가 기승이라면서요?
몸 보신잘하시고 여름 더위 이겨내세요.
아래 원고는 한국 카리타스 사회복지 위원회에서 부탁한 원고입니다.
"나디에쥐다 우메라엣 파슬레드니에"
먼저 이렇게 지면으로나마 여러분들을 찾아 뵙고 인사 드릴 수 있게 배려해주신
카리타스 임원진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전 한국외방 선교회 소속으로 러시아에서 일하고 있는 선교사입니다.
이곳에서 만 4년을 살았고 지금 5년 차에 들어선 아직도 선교 경험이 부족한 신참 선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제게 카리타스 사무실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한국 카리타스회와 2년 전부터 인연을 맺어 왔고, 고마운 회원들을 늘 기억하고 있던터라 당연히 지면을 통해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4년 전 이곳을 왔을 때 받았던 첫 충격은 이들의 가난이었습니다.
80년 가깝게공산주의의 종주국이었던 러시아의 실태를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기 전 까지는이들의 삶을 감히 상상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1년 정도의 언어연수와 반년 정도의 사목 실습을 마치고 제가 맡았던 본당이 있는 곳은 ‘사하공화국’의 네륭그리라는 곳이었습니다.
한국과 직행 비행기편이 있는 ‘하바로브스크’라는곳에서 북쪽으로 36시간 이상
열차로 이동해야 하는 시베리아에서도 더욱 북쪽에 위치한 네륭그리는 27년전 즈음에 석탄 채굴을 위하여 건설된 탄광촌이었습니다.
그곳은 1년 중 8개월이 영하권이었고, 한 겨울에는 영하 40도에서 50도까지
수은주가 내려가는 고립무원의 동네였답니다.
이곳에서는 주로 성당으로 이용하던 아파트에서 매주 가난한 가정을 선발하여 7-10가족 정도에게 생필품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함께 미사도 드리고, 묵주 기도도 드리고… 그리고 부모로부터 장애자라는 이름으로 버람받은 180여명의 지체부자유 아동들을 보호 관리하는 ‘인터르낫’이라는 곳에 아동들의 장난감과 학용품 등등을 월 2회 보급해 주었고, 아동범죄자를 수용하고
있는 시설에도 간헐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먼 곳으로 돈 몇 푼을 벌기 위하여 벌목공으로 러시아에 입국하였다가 탈주하여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창고 등지에서 숨어 살면서 하루 하루를 연명하던 북한 동포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었답니다.
조심한다고 했지만, 더 이상 네륭그리에서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인구 8만 정도였던 그곳에서 전 돈 많은 외국인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저녁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저를 가다리고 있던 괴한들로부터 쇠파이프로 몰매를 맞고 2달 이상을 고생하다가 결국 그곳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현재 제가 있는 곳은 교구청이 있는 이르쿠츠크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앙가
르스크’라는 인구 30만 정도의 중소 도시입니다.
이곳에서의 삶도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이곳에서는 매주 장애자 10가족들에게 생필품을 전달해 줍니다.
지금까지 이곳 장애자 센터를 이용해 도움을 준 가정이 400가정에 가깝답니다.
단지 물질적인 도움 만이 아니라 그들과 만나 무료이발도 시행 하면서 삶의 희로애락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눈답니다.
한 가정에 돌아가는 생필품의 가격이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만원 꼴인데 이것으로 한 장애자 가정이 한 달을 연명한다면 믿어지시겠습니까?
그리고 매주 호스피스 활동을 나갑니다.
대부분 말기 암환자들을 수용하고 있는 이 병동은 쉴새 없이 죽은 자들이 실려나가고 다시 죽음을 기다리는 다른 환자들이 들어옵니다.
역시 그들의 이발이며 면도 등을 해주고 환자들에게 필요한 기저귀를 보급하는 일이 주중행사가 되었답니다.
한국 속담에 ‘가난은 나랏 임금님도 구제 못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하는 사회 복지 일이란 이곳 현지인들게 과연 얼마만한 가치가
있는 지는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한국이라는 아주 작은 나라에서 선교사로 파견되어 끊임없이 소외 받은 이들과
접촉하면서 말로써가 아니라 몸으로써 복음을 전한다는 자부심이 있기에…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 앞에서 평등하며 존엄한 존재임을 믿기에…
제가 보여 줄 수 있는 사랑은 비록 작은 것이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사랑의 위대함은 瘙?치수를 잴 수 없는 것이라 믿습니다.
늘 여러 은인들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사회복지위원회로부터 2년 동안 매년 만 불을 복지기금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면, 제가 이곳에서 이런 작은 활동도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저마다 어려운 중에서도 나보다 더 못한 이들을 위하여 여러 은인과 회원들이 바치는 희생이 있기에, 여러분들의 희생이 이곳 먼 동토의 나라 러시아에서도 사랑과
희망으로 꽃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와 사랑을 담은 성금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연금 5-7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하는 장애자들과의 교제. 평균 봉급 15-25만원
으로 어렵게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하는 이곳에서의 삶은 저와 여러분들이 다시 한번 하느님께 더 많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라고 깨우쳐 줍니다.
얼마 후면 전 다른 도시에서 계속적으로 복음을 전하며 그리고 기회가 닿는 데로
작으나마 사회복지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에서 어긋나지 않는다면 극빈자들을 위한 작은 무료식당을 열어 볼 꿈을 꾸고 있답니다.
여러분 들의 기도 부탁 드려도 괜찮을런지요?
나디에쥐다 우메라엣 파슬레드니에
“희망은 마지막 순간에 죽는다.” 러시아 격언입니다. 격언의 뜻은 우리가 지상
에 살아가는 동안 늘 희망이 있다는 뜻이며, 희망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는 다
는 뜻입니다.
희망이 있기에 고단한 지상의 삶을 우리가 영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늘 여러 은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여러분 들의 사랑이 이곳 러시아에서도
겸손되이 꽃 피고 있음을 함께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러시아 앙가르스크에서…
- Fr. lawrence joung 편지에서 옮깁니다 -
- 사진들 -.
이발봉사 하시는 lawrence joung 신부님
장애자와 함께
생필품을 전달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