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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나 비가오나 오염 된 거리를 의연하게 서 있는 푸른 은행나무들. 그 사이를 마치 쫓기듯 종종걸음치며 뛰어다니는 사람들.
우리는 빠른것에 가치를 더 부여하는 현대사회에 살고 있다. 빠르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의 능력이라는 사회통념은 우리를 더 빠른세계로의 여행을 강제하고 사람들은 화답이라도 하듯 정신없이 앞으로만 달려간다 마치 거대한 급물살에 떠밀려가듯 살아가는 대량 생산품 같은 처지같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빠른것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시간이 남으면 불안해하거나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 하기일쑤다. 느긋하게 시간을 즐기며 주변의 사물이나 풍경과 교감을 나누는 방법을 잊었기 때문이리라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시공간에 대한 이론을 떠올려본다 1687년 뉴턴은 '프린스키피아'에서 시간과 공간 그리고 물질은 서로 관계가 없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당시의 천문학 역학을 평정한다 그러나 200년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제시되면서 상황은 역전 되었다 시간 공간 그리고 물체의 질량에 대한 유기적 관계. 즉 공간이동의 빠르기가 극에 달하면 시간의 느림이 극에 달한다는 위대한 사실이....
정보의 광속도가 소용돌이 치는 한 복판에 사는 우리들. 과연 이 속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혹시 기술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는 아닐런지 그 속도감의 엑스터시에 빠져 육체와 우리 육체의 본래의 리듬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우스개소리로 외국에 가면 우리나라 사람의 별명은 '빨리빨리'라 한다. 식당에서도 '이집에서 제일 빨리되는 것 주세요'라 외치고, 친구들과 약속을 정할때도 되도록 자신이 얼마나 바쁜지 얘기하고 마지못해 인심쓰듯 약속을 한다. 정작 시간이 남아돌아도..... 시간이 많다고 인정하는 것은 자신이 무능력함을 더 나아가 자신의 인생이 남에게 추월당하고 있음을 시인하는 것이라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리라
언젠가 TV에서 그 나라에서 제일 맛잇는 음식 먹기위해 또는 훌륭한 예술품을 관람하기위해서 몇시간이고 길거리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외국 사람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 왠지 답답해보였고, 그럴 시간 있으면 낯잠이나 자겠다며 속으로 비아냥거렸지만 너무나 여유롭게 최고를 위해선 이정도 쯤은 아깝지 않다는 듯 오히려 미소까지 띤 얼굴은 너무도 행복해보였다.
현대인은 바쁘다. 설령 하는 일이 없어도 무척 바쁘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나면 빨리 말하고, 빨리 걷고, 빨리 입학하고, 빨리 졸업하고 ,빨리 성공해서, 일찍 인정받는것을 최대의 목표인양 살아간다. 과연 그것이 옮바른 삶일까?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이 과연 최상의 행복일까?
우리의 삶이 제 속도를 내기위해선 어느 정도의 조절은 필요하다. 여유를 즐기고 싶어도 마음이 굳어져 버려 아름다운것을 봐도 그 가치를 느낄수 없고 , 행복이 찾아와도 참다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를 일이다.
먹고 살기위해 우리는 열심히 남보다 빨리 뛰고, 하루하루를 긴장하며 살아간다.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란 걸, 그리고 삶의 주체가 나 자신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거북이가 느리다고 해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스쳐지나버린 작고 소중한 아름다움을 거북이는 머리와 가슴으로 즐겼을테니까 그리하여 어쩌면 우리보다 풍성한 내면의 행복을 가득 갖고 살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추구 하는 인생의 진정한 승리자는 어떤 것일까? 아니면 대단한 성공은 아니지만 삶을 조절하면서 인생의 마지막까지 여유를 즐길 줄아는 사람?
아름다운 일상을 위해 가끔은 시간적 손해보더라도 시간의 균형 감각을 정비하는데 삶을 투자하자 지친 자신의 영혼을 위해 시원한 물줄기를 뿌려주고 신선한 바람을 가끔은 쐬어주자. |
속도의 엑스터시
2005. 6. 12. 오전 8: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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