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의 개념에서 인간적인 방법과 신앙적인 접근 방법이 조심스럽게 요구되는 바입니다
먼저 도움의 개념에서 환자의 요구에 응 한다는것은 삶속에 함께 존재 한다라는 사실에
서부터 그리고 전문 의료인이든 환자이든 누구에게나 동일한 인간적 본성에서부터 출발
하여야 하며 질병은 환자의 종교적 세계에 대한 도전이 될수도 있고 죄에 대해서 합당하
지않는 벌로 여겨질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생각에서 벗어날수 있도록 조심 스럽게 도와
주어야 한다고 봄니다
이러한 동질의 인간성으로 인해 도움의 관계는 매우 강한 연대를 드러내며 건강한 사람
과 병자 사이에서 보여지는 관계의 형태를 말하는것이 아니라 양자가 다 피조물로서의
한계를 지닌 인간으로서 드러나는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더 좋은 관계를 형성시켜 가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실천적 도움을 줌니다
건강한 사람도 고통을 경험하기 때문에 때로는 환자와 친근 관계를 지키면서 환자에게
연민같은 감정을 가질수도 있는데 환자와의 올바른 관계가 확고히 정립 되었다면 환자
에게 해가되는 동정심이나 피해망상 같은 태도를 취하는것을 방지해 줄것입니다 사실
환자는 기술과 의학에 신뢰를 두기보다는 자신을 치료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더 큰 신
뢰를 두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부활의 신비에 적극적으로 참여 하므로써 고통과 중병에도 더
많이 사랑해야하는 소명 즉 인류를 위한 무한한 사랑의 부르심에 귀 기울리며 자신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자신과 타인을 위한 은총의 시간으로 변화시켜 나가야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에대한 철저한 신뢰와 관련된 직무이기도 하며 환자를 위한 봉사
의 이러한 증거는 환자를 용서 할 수 있는 마음으로 인도할수 있을것이며 생명을 앗아
간다고 여겨지는 죽음과 화해하고 사람들이 자주 피상적으로 말 하는 것처럼 이 세상
과 더욱 정의롭게 창조하지 못한 하느님과 화해할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그리고 가장
이상적인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지나간 생을 충분히 긍정적으로 받아 드리는것이
필요하다 이는 새로운 관점에서 또한 회개하라는 복음의 빛 안에서 지난 삶을 되돌아
보는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병과 죽음의 순간이 이렇게 화해의 순간이 될수있다
이는 하느님께서 인간적인 위안을 뛰어 넘어 환자의 삶에 개입 하셔서 그 절망과 진공
상태를 메우실 때에만 가능해지며 고통을 통해 하느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찾을수 있
게 된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이 고통을 그 어떤것 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실 뿐아
니라 인간자신도 이 고통을 통해 더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혹은 하느님께 던지는 고통에 관한 질문에 대해 이러한 응답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그리 쉬운일이 아니며 긍극적으로 모든것을 하느님께 맡겨드리고 신뢰
속에서 그분과 그분의 신비를 향하여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는 점진적인 일치를 통해
참된 의미의 응답이 이루어질수 있다
옵의 체험을 예로 들자면 하느님께서 욥으로부터 가족과 재산 모두를 빼았은것이 아
니라 욥이 그 모두를 더 이상 즐길수 없게 되었다고 할수 있다 시련후 욥은 완벽하게
변화되여 세계사물 그리고 하느님께 새로운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잃어버린것을 재
발견하는것이 아니라 모든것을 새롭게 경험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를 해보면 저자의 의도가 합리적이고 기술적이고 심리적
으로 자상하게 잘 기술되어 있습니다 전문인이 아닌 단순한 독자의 입장에서 첨삭
할 여지가 없습니다만 굳이 서평해야 한다면 사랑의 정의를 말씀드려 볼까합니다
사랑은 그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
라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그때 환자의 마음을 읽을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환자가 물을 먹고 싶어하는데 다른 음료를 준다면 그 환자는 지친 마음에 더욱 힘들
어 할것입니다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고는 진정한 도움을 주지못하며 때로는 오히려
힘 들게할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사람이 자신을 도와주는것을 항상 고마워 하는
것은 아니며 환자와 대화를 하는것도 늘 가능한것이 아니다 도와주는것도 늘 가능
하지 않으며 원하는 모든것을 다 해줄수도 없기 대문입니다
그러므로 환자에게 부담없이 편안하게 대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며 가려운데를 알아서 글거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환자에게 항상 귀를 기울리고 내면의 침묵속에서 극히 제한된 언어만이 사용하는
태도가 필수적이며 이러한 형태의 대화는 서로에게 더 큰 관심을 갖게하고 환자가
상대방이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될때 환자에게는
큰 안정과 위로가 될것입니다
두번째로는 욥의 체험 이야기 입니다
욥의 생각이 얼마나 완고함은 세친구들의 因果應報論의 설득에서 볼수있습니다
욥은 스스로 의인이 였음을 완강하게 고수함니다 그러나 세 친구는 욥의 완고함을
염려해 설득에 진땀을 흘리지만 실패로 끝남니다 결국은 하느님과 단판으로 문제
를 해결을합니다 하는님과 인간은 항상 상반된 견해를 같이고 있지요
예를 들자면 산상설교에서 인간의 견해는 불행하게 보이나 하느님은 행복하다고 합
니다 미래의 특혜를 소급 적용함이지요 이와같이 욥이 큰 고통속에서 새롭게 세상을
경험하게 된것은 외적인 변화에서 온것이 아니라 Meta noia 내적인 변화 즉 의식(생
각) 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욥이 격고있는 세상의 고통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는데 완전한 새로 운경험을 하게
된것은 그 고통을 긍정적으로 받아드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긍정하기는 매우 어려우나 모든 원인을 밖에서 찾지않고 내 안에서 찾았을때
부정이 긍정으로 의식을 바꾸는 계기를 만들어 줍니다 왜 나에게만 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다면 더 힘들어하고 회생 불가능한 절망의 무덤속에 갇혔을것입니다
의식은 시간과 공간 개념을 초월하고 가시적이 아닌 비 가시적인것을 볼수있는 능력
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오랜 습관에서 버릇이된 고정관념 때문에 의식을 바꾸
는것을 매우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고정관념이 무너지면 세상이 말세로 보이고 자신도 망하는 위기 의식을 느
끼기 때문에 끝까지 고수할려고 합니다 성서안에서 그 대표적인 예가 요한복음 5장
의 베짜이다 못가의 병자들 입니다 이 못 가에는 소경과 절름발이와 중풍병자등 수
많은 병자들이 누워 있었는데 그들은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따금 주님
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와 물을 휘 젓곤 하였는데 물이 움직일때 맨먼저 못에 들어가
는 사람은 무슨 병이라도 다 나았던 것이다 그들중 38년간이나 앓고있던 환자도 있
었다 여기서 물은 죽음이고 무너진 고정관념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는 그사람이 거기 누워있는 것을 보시고 또 아주 오래된 병자라는 것을 아시
고 그에게 "낫기를 원하느냐"하고 물으셨다 병자는 "선생님 ,그렇지만 저에게는 물이
움직여도 물에 넣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하고 솔직히 두려워서 들어가지 못함을 이런
식으로 이유를 대고 있습니다 앉은뱅이는 지체 장애자로 보이나 주의 깊게보면 정신
자애자 임을 이 말속에서 알아 들을수 있습니다 우상같이 믿고오던 고정관념이 무너
질까 두려워서 의식을 바꿀자신이 없다는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치유는 구원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낫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시는 것은 새로운
삶을 살아 보겠느냐 질문이 였습니다 그런데 예 하고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망
설입니다 다시 말해 정신적 허약함 열등감 두려움 때문에 의식(생각)을 바꿀자신이
없어 38년간이나 연못가에 머물르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살아왔다는것입니다
이 연못가에 누워있는 수많은 병자들은 자기 신원(하느님의 귀한 자녀임)을 알지못하
고 열등감에 스스로를 학대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사람이 고생하는 모습을보면 누구나 속상하고 가슴아파 하며 도와주고 싶어
합니다 하물며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도좋은것을 주시려 하지않겠습니까? 이와같이
사랑은 그이가 되어보는 것이 먼저이며 고통은 긍정적으로 받아드려야 의식을 바꿀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의식을 바꾸어야 그분의 새로운 신비를 경험하게 된다는것을
말씀드리고져 합니다 나는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뻬짜이다 못가에 앉아있었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