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 노래> 공연이 끝난 지 2주째네요.
그동안 개인사정으로 고민 좀 하다가 최근에서야 겨우 안정을 되찾고
3일 만에 영상 편집을 끝낼 수 있게 된 지금은 마음이 홀가분하답니다.^^
졸업여행 다녀오신 분들 통해 여행후기를 들어보면,
그렇게 좋을 수밖에 없었던 여행이었다고요.
2주 전의 제 원래 계획도 카메라 들고 제주도 가는 거였지만,
사람 일이란 모든 게 하느님 발 앞에 놓인 고로 자기 뜻대로 안 될 때가 있잖아요.
제 개인적으론 30살 이후부터 지금까지 될 때보다 안 될 때가 더 많았던
인생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지만
여행에 빠지게 된 저에 대한 형제자매님들의 걱정과 염려와는 달리
전 저대로 하느님 앞에서 깊은 성찰?의 시간을 따로 갖게 되는
의미 깊은 인생 한 때였기에
졸업여행 못 간 거에 대해 지금도 별다른 후회는 없습니다.^^
단지, 누군가 절위해 그 곳에서 생미사를 넣어주셨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
누군지 몰라도 그 분께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과 함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 한 편이 짠해온다는 거밖에는...
감사하고 고마운 사람...
제 인생을 뒤돌아보면 몇 분 안 되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우리 담임선생님.
“성직자”라는 존함과 함께 얼굴 생김새까지 생생이 기억나는 분은
공교롭게도 이 분 한 분밖에는 없습니다.
그 많고 많은 담임선생님 중에 어떻게 이 분 한 분만 달랑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지,
용서의 힘이란 거, 사랑의 힘이란 건 정말 위대한 그 무엇인가 봅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게 청소 시간에 청소는 안하고 밀대로 뺑뺑이 돌며 놀다가
마침 교실로 들어오시던 담임선생님 다리 위로
철퍼덕!
제가 물에 젖은 밀대를 갖다 붙여버렸지요.
몇 초 동안의 정적이 그렇게 길게 느껴졌던 적은 그 때가 처음이었던 거 같고,
예의범절, 규칙... 이런 것들이 사람 숨통을 조이던 시대에
정확하고 냉정하고 실수 없고? 빈틈없는 우리 부모님과는 달리
온화한 미소로 마치 아무 일 없었던 듯 넘어가 주시던
성직자 선생님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네요.
그때의 천방지축 제 행동으로 봐선 매나 화가 날아와야 정상인데
다음부턴 조심하라며 생각지도 않게 머리까지 쓰다듬어 주시던 담임선생님이 나가신 뒤에
너무 긴장돼서 교실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던 것도 기억납니다.
그리고 지금은 돌아가시고 없지만 절 딸같이 아껴주셨던 목사님.
내가 여왕인가 싶을 정도로 이성의 사랑을 아낌없이 퍼주었던 6년 연하남 oo
마지막으로 지금 여기 이 곳 신학원에서의 추억!
삭막하고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만났던 사람들과는 달리
뭐랄까...
하여튼 속세사람들과는 다소 이질적인 분들...^^;;
언젠가 먼 미래에
어쩌면 인생 막바지에 이르러 제 인생을 총결산하며 뒤돌아볼 때가 있겠지요.
그때, 주님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할 줄 알던 이 곳 신학원분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저도 그 누군가에게
“그 사람, 사랑이 참 많았다. 사람이 순수했다. 하느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었다. ”
그런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게
주님 앞에서 삶이 성장되고 성숙돼있기를 바래봅니다.
세상이 인정하는 능력도 재능도 부도 명예도 지식도 권력도 권위도 뭐도 다 중요하지만
무시할 수 없지만...
그 누군가에게,
단 한 사람에게서라도,
사랑으로 기억되는 삶을 살다 갈 수 있게 되기를....(아멘)
아~ 사람이 몰라주면 어때요.
무엇보다 주님만 절 알아주면 그만이지요.
이것도 아멘...^^
추신 :
다음은 <임의 노래>동영상 주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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