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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문제엔 인권개념 적용할 수 없다 |
그동안 기획탈북단체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른 바 인권개념을 내세워 왔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문제점을 선뜻 지적하기가 힘들었다. 잘못 하면 동족의 인권을 외면하는 사람으로 몰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한국사회는 이들의 문제점을 명확히 지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 이상의 침묵은 비겁함인 동시에 죄악이다.
더 이상은 이들 때문에 민족공조와 한반도 평화가 훼방을 받아서는 안될 것이다. 또 무엇보다도 희망적인 것은, 이들이 심정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미국·일본의 강경파들이 조만간 약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기획탈북 브로커나 단체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은 하나 둘이 아니다. 이들의 주장처럼 탈북자문제가 과연 인권문제인지, 주권국가인 중국 경내에서 탈북을 기획하는 것이 과연 국제법에 적합한 일인지, 중국 정부가 탈북자의 국적을 어떻게 판단하는 게 합법적인지, 남한 인권보다 북한 인권을 더 중시하는 것이 동양적 인륜관념에 과연 부합하는 일인지, 미국판 북한인권법이나 일본판 북한인권법 등을 통해 자금 지원을 받아 동족을 공격하는 행위가 과연 민족 구성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인지, 과거에 진보운동에 참여했던 인물들이 기획탈북에 관여하는 것이 과연 논리적 정합성을 갖는 일인지 등을 정밀하게 검토하면, 이들의 문제점이 하나 둘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들의 문제점을 한번에 모두 지적할 수는 없으므로, 여기서는 일단 탈북자문제에 과연 인권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지 하는 점만 살펴보기로 한다.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획탈북단체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 이른 바 ‘인권’이라는 개념을 내세우고 있다. 북한 동포들의 인권 상황이 비참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 단체들이 말하는 인권은 근대 서양에서 발전한 개념이다. 그렇다면, 탈북자문제가 과연 서양 근대사회에서 말하는 인권문제에 포함되는지를 규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당연한 언급이기는 하지만, 인권(Menschenrecht)이라 함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생래적·천부적 권리(자연권)를 가리킨다.
헌법학계의 일반적인 이론에 의할 때, 다음과 같은 4가지의 특질을 갖고 있어야 인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보편성. 인권은 보편성을 띠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인종·성별·신앙·신분 등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인권을 향유할 수 있다.
둘째, 천부성(天賦性). 인권은 천부성을 띠기 때문에,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적으로 인권을 향유할 수 있다.
셋째, 항구성(恒久性). 인권은 항구성을 띠기 때문에,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권을 향유할 수 있다.
넷째, 불가침성. 인권은 불가침성을 띠기 때문에, 인간은 국가권력으로부터 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가권력의 적극적 보장을 향유할 수 있다.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인권의 네 번째 특성인 ‘불가침성’이다. 인권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국가권력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 설정된 개념이다. 다시 말하면, 인권은 본래 개인 대 국가의 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 점은 서양 근대의 인권 역사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영국의 경우, 1628년의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은 봉건적 국가권력의 인신침해(人身侵害)에 대항하는 의미를 띠었고, 1647년의 인민협정(Agreement of the People)은 국가권력이 개인의 자유권·평등권·재산권 등을 침해하는 것에 대항하는 의미를 띠었으며, 1679년의 인신보호법(Habeas Corpus Act)은 국가권력의 인신침해에 맞서 절차적 보장을 강화하는 의미를 띠었고, 1689년의 권리장전(Bill of Rights)은 국가권력인 국왕의 징세·징병 등을 제어하는 의미를 띠었다.
그리고 미국의 버지니아권리장전(Virginia Bill of Rights, 1776)과 독립선언(Declaration of Independence) 역시 국가권력이 개인의 생명권·자유권·재산권·저항권 등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제어하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사정은 프랑스나 독일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인권은 원칙적으로 국가권력과 개인의 관계를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A 국가가 A 국민의 인간답게 살 권리를 침해한 경우에 한해서 인권개념이 적용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자연재해 때문에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게 되었다면, 여기에는 인권 개념을 적용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권은 인간 대 자연의 관계가 아닌, 개인 대 국가권력의 관계에서 적용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홍수 피해 때문에 한 마을 전체가 굶주리게 된 경우, 아버지인 가장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것이다. 홍수로 인한 경제난은 인간의 능력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인권이 침해되었다고 해서, ‘아무’ 국가권력에게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연한 언급이 되겠지만, 침해의 당사자가 되는 국가권력에게 인권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B 국가가 A 국민의 권리를 침해한 경우, B 국가와 A 국민 사이에서는 인권개념이 적용될 수 있지만, A 국가와 A 국민 사이에서는 원칙적으로 인권개념이 적용될 수 없게 된다. B 국가가 A 국민의 인권을 침해함에 있어서 A 국가가 ‘교사’(敎唆)나 방조 등의 방법으로 관여하였다면 몰라도, B 국가가 불법적 방법으로 A 국가를 무시하고 A 국민의 인권을 침해한 경우에는 A 국가와 A 국민이 모두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그럼, 이러한 내용을 북한의 경우에 적용하여 보기로 한다. 지난 10여 년간 북한이 심각한 경제난에 허덕이고 그로 인해 북한 동포들이 인간다운 삶을 향유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동족의 입장에서 볼 때 분명 가슴 아픈 일이다. 그리고 이 점과 관련하여, 우리는 북한 권력의 ‘역량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논의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경제난으로 인한 탈북자 발생에 대해 북한 권력이 과연 인권 책임을 지는가 하는 점이다.
지난 10여 년간 북한이 경제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거기에는 북한이 입은 ‘자연재해’와 함께 미국의 ‘대북 봉쇄’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자연재해와 미국의 대북 봉쇄에 기인한 경제난으로 인해 탈북자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면, 여기에 과연 인권 개념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인가?
위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인권은 국가권력 대 개인의 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자연재해로 인해 개인이 입은 피해의 책임을 국가권력에게 전가시킬 수는 없다. 물론 국가권력이 피해구제나 피해보상 등을 소홀히 했다면 문제가 달라지겠지만, 자연재해로 인해 굶주림이 확산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국가권력의 인권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여기에서, 북한 국가권력의 책임을 주장하고자 한다면, 그러한 주장을 하는 쪽에서 북한 권력이 피해구제나 피해보상 등을 소홀히 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외국의 경제 봉쇄 때문에 발생한 경제난의 책임 역시 북한 권력에게 전가시킬 수 없을 것이다.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북한의 경제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국가권력은, 엄밀히 말하면, 북한이 아니라 바로 미국이다. 미국의 경제봉쇄로 인해 경제난이 가중된 것이라면, 그 책임을 미국에게 묻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탈북자문제는 북한동포와 북한권력의 관계에서는 인권문제가 아닌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북한 동포뿐만 아니라 북한 정부도 피해자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불법적인 경제봉쇄를 감행한 미국이다. 그러므로 책임을 져야 할 주체가 있다면, 그것은 가해자인 미국일 것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고자 한다면, 그 고양이는 북한이 아닌 미국이어야 한다. 따라서 탈북자문제를 인권문제라고 굳이 주장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그들에게 용기가 있다면, 그들은 미국을 상대로 그러한 주장을 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탈북자 문제는 북한 권력의 역량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결코 인권문제가 아니라는 점과, 굳이 그것을 인권문제라고 한다면 그 책임은 미국이 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탈북자문제는 인권문제이며 북한이 인권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논리적 전제로 하고 있는 기획탈북단체들은 그 존재 근거를 상실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러한 논리적 문제를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획탈북단체들이 심정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미국·일본 등에서 이들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번지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다급한 처지에 놓여 있다. 동북아에서의 돌발변수를 제어하고 이라크전쟁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6자회담을 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부시 대통령의 입장이다. 이러한 부시 대통령에게 있어서, 기획탈북단체들은 미국의 국익을 방해하는 훼방꾼들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귀찮은 훼방꾼인 동시에 만만한 훼방꾼들이다. 귀찮으면서도 만만한 훼방꾼들을 부시 대통령이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아프칸전쟁과 이라크전쟁에서 이미 분명히 드러났으리라고 본다.
그러므로 기획탈북단체들은 자신들의 논리적 모순과 다급해진 처지를 분명히 인식하고, 민족과 역사의 발전을 더 이상 방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과감한 ‘회군’뿐이다. 그들은 대세가 이미 민족공조와 한반도평화로 기울고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베이징과 연변을 겨냥한 오합지졸 군대의 ‘말머리’를 돌려야 할 것이다.
그들이 더 이상의 죄를 짓지 않고 생존을 모색하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 당장 무장해제하는 것뿐이다. |
탈북자문제엔 인권개념 적용할 수 없다
2005. 2. 23. 오전 11:3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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