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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문제는 북미관계, 한미관계, 남북관계를 기본축으로 하여 전개되어 왔다. 북미관계의 성격을 적대성이라 규정한다면, 한미관계는 종속성 그리고 남북관계는 불안정한 협력성으로 규정할 수 있다. 따라서 한반도 정세는 적대적 북미관계와 종속적 한미관계 그리고 불안정한 협력적 남북관계가 얽히고 설키면서 전개된다고 할 수 있으며, 2004년 역시 이같은 과정의 연장선에서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 발표문은 북미대결을 중심으로 하여 살펴보는 것이므로, 한미관계와 남북관계에 대한 고찰은 최소화하고 2004년 북미 사이의 대결이 어떻게 전개되었고 그 특징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2005년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고찰하는 것으로 한다.
1. 2004년 북미 대결 양상
2004년 북미 대결은 크게 3가지 중요한 사건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제 1국면은 2차 6자회담이 전개되던 2004년 2월 말까지의 시기이다. 2국면은 3차 6자회담이 열렸던 6월말까지의 시기이다. 그리고 미국이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부시가 재선되었던 2004년 11월 초까지가 세 번째 국면이며 현 시기는 3국면의 연장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제 각 국면에서 북한과 미국의 입장이 어떠했으며, 구체적인 대결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살펴보도록 하자.
⑴ 2004년 북미 대결의 1국면 : 2차 6자회담까지
이 시기는 북미 양측이 기선제압과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외교전, 군사전을 전개했던 시기이다.
① 북한의 경우
이 시기의 구체적인 일지와 발언을 살펴보자.
◉ 1월 6일-10일 미국의 민간대표단에게 핵억제력 공개 “시간은 미국편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핵억제력이 양적, 질적으로 증대되는 결과를 낳을 것”
◉ 1월 6일 “첫 단계의 행동조치는 우리나라가 핵활동을 전면적으로 동결하는 대신 미국과 주변나라들은 그에 대응한 조치를 취하는 것” “이것이 6자회담 과정을 이어나가기 위한 기본출발점이자 핵심사항”
◉ 1월 12일 “부시행정부가 첫 단계 조치로 동결 대 보상에 합의할 용의가 있다면 우리도 비핵화를 위한 출발점으로서 흑연감속로에 의한 핵활동을 동결할 용의가 있음” 표명.
◉ 1월 27일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 이끄는 대표단이 나이지리아 방문, “미사일 기술을 포함한 상호협력 프로그램을 전개키로 합의”
◉ 2월 초 13차 장관급 회담 김령성 북측 단장 “13차 회담이 열리는 만큼 이번 회담에 모처럼 열리는 6자회담에서 문제해결의 열쇠를 찾고 해결되도록 실천적으로 결실있는 다자회담이 되도록 북남 사이 협력하는게 중요하다”고 강조.
◉ 남북 장관급 회담 직후 북한의 김계관 부상 ‘중국측의 초청’으로 방중. “핵문제 해결을 위한 동시일괄타결안과 그에 따르는 첫 단계조치”로서 북한이 제시한 “동결 대 보상 제안의 타당성을 인정하고 다음 6자회담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이룩하기 위해 공동으로 협력해 나가기로” 북중 공동협력 합의.
◉ 2월 11일부터 14일까지 북일 고위급회담 일본인 납치문제와 북핵문제가 회담 주제. 2월 14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 “일본측이 다음번 6자회담에서 납치문제를 다시 들고 나오는 경우에는 전체 우리 군대와 인민의 요구대로 일본의 회담참가 자체를 단호히 거부할 것이며 모든 것이 깨어져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② 미국의 경우
21세기 미국의 세계전략은 미국의 주도권에 대한 일체의 경쟁과 도전, 그리고 저항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그 핵심이며, 그 구체적 내용은 선제공격전략, 핵무기 사용 전략, 미사일 방어체제의 구축, 해외주둔미군의 재배치 등으로 이루어진다.
2004년 9월 30일까지 알래스카 포트 그릴리에 6기, 캘리포니아 반덴버그 공군기지에 4기의 요격미사일을 배치한다는 계획 발표.
2003년 11월 24일 폭발력 5킬로톤 이후 소형핵무기 연구개발을 금지해온 조항을 폐지하고 소형핵무기 연구의 길을 연 2004년 회계연도 국방권한법안에 서명.
1월 8일-12일 “올 3월말까지 핵문제에서 진전이 보이지 않으면 북한에 대한 PSI의 전면발동과 유엔 안보리 회부 등 강경하게 대응할 방침”
1월 29일 존 볼튼 국무부 차관 러시아에 PSI 서명과 대량살상무기 밀거래 선박과 항공기에 대한 나포에 동의해 줄 것을 요구.
2월 11일 부시 국방대학 연설에서 ‘PSI 확대, 모든 국가들의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를 위한 유엔 결의안 필요성, 농축 등 재처리장비 판매 제한’ 등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를 위한 7가지의 구체적 안 제시.
③ 1국면 총평
1국면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2차 6자회담을 준비하는 데서 이북의 외교력과 정치력이 압도적으로 승리한 시기로 평가할 수 있다.
우선 북한은 1월 초 미국 민간대표단에게 핵억제력을 보여줌으로써 부시 행정부를 극도의 혼란에 빠뜨린다. 그리고 1월 12일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 ‘평화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였다.
두 번째로 북한은 중국, 일본, 남한과 개별적 회담 전개한다. 13차 장관급회담에서 6자회담을 통한 평화적 해결 의지를 강조하고 남북 공조를 요구하였다. 그리고 회담 직후 북한의 김계관 부상이 ‘중국측의 초청’으로 방중하여 “핵문제 해결을 위한 동시일괄타결안과 그에 따르는 첫 단계조치”로서 북한이 제시한 “동결 대 보상 제안의 타당성을 인정하고 다음 6자회담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이룩하기 위해 공동으로 협력해 나가기로” 북중 공동협력 합의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본과 고위급 회담을 진행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한의 화살은 미국을 향한다. 2월 21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미국의 핵위협이 나날이 가증되고 침략전쟁의 위험성이 현실화된 조건에서 우리는 비상한 각오로 흑연감속로에 의한 핵동력공업의 용도를 변경시키게 되었으며 오늘은 자위적인 핵억제력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논평한 것이다.
여기서 특기할 사항은 과거의 핵억제력 ‘강화’라는 표현이 핵억제력 ‘보유’라는 표현으로 구체화되었다는 점이다.
반면 미국은 갈수록 궁지로 몰리는 입장이었다. 1월 14일 미국 의회조사국 래리 닉시 “6자회담의 현실은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선전전술에 밀려 수세에 밀리는 형국이 되고 있다” 1월 21일 잭 프리처드 “미국의 정보계는 폐연료봉이 대부분 수조에 남아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으며, 정책 입안자들에게 시간은 미국편이라는 그릇된 인식만 심어주었다”
이같이 미국 내에서도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으며, 믿고 있었던 일본이 6자회담에서 ‘납치문제’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고, 한국 역시 자체의 해법을 제시하는 등 미국만 혼자 외톨이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비록 선핵포기의 연장선에 있었지만 ‘안전보장’이라는 미끼까지 제공하기도 하였다. 2차 북핵문제가 처음 나왔을 때 ‘핵포기 없으면 일절 대화 없다’는 입장에서 2003년 4월 ‘대화는 하되 협상은 없다’는 입장으로 후퇴했던 미국이 이제는 ‘핵포기 하면 안전보장 하겠다’며 한발 더 후퇴하게 되었던 것이다.
⑵ 2004년 북미 대결의 2국면 : 4차 6자회담까지
① 북한을 향한 미국의 군사․외교적 압박 시도
1국면에서 참패를 면치 못했던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군사행동 밖에 없었다. 2차 6자회담 이후 미국은 프리덤 배너 훈련, 연합전시증원훈련, 독수리훈련 등을 진행했으며, 핵항공모함을 배치하는 등 군사적 행보를 강화하였다. 이와 더불어 미국은 5027 작전계획 이외에도 5026, 5030 등의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그것을 공개하면서 이북에 대한 대대적인 군사적 압박을 시도하였다.
한편 4월 중순 딕 체니는 중국을 방문하여 “(북한에 대한) 인내심의 한계에 다달았다”는 발언 등을 하면서 중국으로 하여금 미국 편에 서도록 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전개하였으며, 마침내 4월 29일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여 핵문제 해결에서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노골적으로 표명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딕 체니가 중국에서 행한 “인내심의 한계에 다달았다”는 발언이 갖는 의미를 깊이 분석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첫째로 중국과 북한을 떼어놓으려는 의도가 깃든 발언이기도 했으나, 북한으로 하여금 강경한 대응을 유도하는 발언이기도 하였다. 즉 6자회담을 지속할 의지가 없음을 드러내어 북한으로 하여금 ‘핵 실험’이나 ‘핵 보유 선언’ 등과 같은 강경한 행동을 부추기기 위한 것이다. 국제여론이 갈수록 불리하게 형성되고 있다고 판단한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강경한 행동’으로 국제여론의 반전을 기했던 것이다.
한편 미국은 북한이 2001년 초 우라늄 약 2톤을 리비아에 제공했다는 정보를 언론에 유포하였다. 뉴욕 타임스가 5월 23일 미 관리들과 유럽 외교관들의 말을 인용,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이 리비아에 우라늄을 판매한 증거를 찾아냈다"며 "이 같은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면 북한이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핵심 물질을 다른 나라에 판매한 것을 확인하는 첫번째 사례가 된다"고 보도한 것이다. 이는 자신들이 주장하고 있는 북한의 우라늄 농축 사실을 기정사실화시키면서 북한의 국제적 고립을 의도한 것이다. 또한 PSI에 러시아를 끌어들이기 위한 사전 작업의 의미를 함께 갖는 것이었다.
이렇듯 미국은 2차 6자회담에서의 참패 이후 북미 대결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전개하였다.
② 북한의 역공세
주도권을 쥐기 위한 북한에 대한 미국의 군사․외교적 압박은 그러나 딕 체니의 중국 방문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우선 중국은 4월 15일 딕 체니의 상하이 후단대학 연설을 생중계 해달라는 요청을 소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중국은 사전홍보도 하지 않았고 재방송도 하지 않았다. 인민일보 등 중국의 언론사와 주요 웹사이트에 올라온 체니의 연설 녹취록에는 체니가 가장 역점을 두고 선전했던 북핵 의혹 부분이 삭제되었다.
북한의 본격적인 역공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여 후지타오와 정상회담을 하였던 4월 19일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인내성과 신축성을 계속 발휘하여 6자회담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회담진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발언하였으며,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조선안보상의 우려사항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는 발언으로 화답하였다. 딕 체니의 발언에 일언반구 없었던 중국은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에 즉각적으로 화답한 것이다. 중국의 신화통신 역시 4월 21일 “양측 지도자들이 평화적인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한 깊은 의견을 교환했으며 양측은 이 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입장을 계속 유지키로 합의했다”고 보도하면서 이같은 분위기를 확인시켜 주었다.
김정일 위원장 방중 시기에 맞춰 조선 외무성 대변인은 딕 체니의 중국 발언을 지적하며 “미국이 듣기에도 역겨운 완전하고도 검증가능하며 돌려세울 수 없는 핵폐기 주장을 고집하면 우리는 더 이상 미국과 상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북한의 ‘강경 대응’을 유도하고, 중국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던 의도속에서 진행되었던 딕 체니의 중국 방문은 이렇듯 1주일도 지나지 않아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중국은 6월 9일 "보다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기 전까지 미국은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해 무기를 만들려 한다고 비난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며 미국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을 하기에 이른다.
북한의 역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5월 22일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두 번째 평양방문이 실현되었다. 여기서 김정일 위원장은 고이즈미에게 "(부시와) 목이 마르도록 노래하고 싶다. 여러분은 음악을 연주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북일 관계에서 걸림돌이 되었던 ‘납치자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였다. 고이즈미는 6월 8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미평화메시지를 부시에게 그대로 전달하면서 김정일 위원장의 ‘전령사’ 역할을 자임하기도 하였다. 북중 정상회담과 북일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은 2차 6자회담 이후 노골화되는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에 맞선 외교적 역공세를 펼친 것이며, 대북포위고립을 시도했던 미국을 역으로 포위압박하는 분위기로 반전시킨 것이다.
한편 북한은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5월 4일부터 진행된 제14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군사당국자 회담에 대해서 합의를 보았으며, 6월 3일에는 2차 군사당국자회담에서 남과 북의 군사적 화해와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들이 합의되었고, 역시 같은 날 제9차 남북경협회담에서는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와 도로 연결에 대한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 합의를 보았다. 이같은 당국자간의 진전은 6월 15일 민간통일대회였던 우리민족대회에서 2005년을 통일원년으로 하자는 ‘민족대단합선언’으로 상승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는 남북 사이도 발전하여 북미 대결의 유리한 지형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상과 같은 과정은 3차 6자회담의 결과를 예측하기에 충분하였다. 6월 23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되었던 3차 6자회담에서 동결 대 보상이라는 원칙을 참가국이 합의하였으며, 미국은 북한의 반발을 의식하여 CVID라는 용어를 철회하고 ‘포괄적 비핵화’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회담장에서 “모든 핵무기 프로그램을 투명성있게 폐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핵무기를 더 이상 만들지도 않고, 수출하지도 않으며, 실험하지 않겠다”며 평화적 해결 의지를 과시했으며, 미국은 “핵 동결시 다른 나라가 중유 지원하는 것을 허용하겠다”, “핵 폐기시 잠정적인 안전보장, 비핵에너지 지원,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 및 경제제재 해제 가능, 관계 정상화를 위한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발언을 하였다.
③ 2국면 총평
1국면과 2국면을 통해 북한의 대미포위고립외교가 거의 완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북한은 핵문제 해결에서 평화적 해결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도 미국의 대북압살정책으로 인해 핵억제력을 보유하지 않을 수 없다는 발언을 하면서 미국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시키면서 6자회담의 구도를 유리하게 형성하였던 것이다.
남북 관계 역시 발전하여 당국자간 그리고 민간진영에서의 의미있는 합의와 선언문이 채택됨으로써 우리 민족과 미국과의 대결구도를 형성하는 성과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같은 노력의 결과 미국은 자신들의 입장을 후퇴시키기에 급급했으며 마침내 3차 6자회담에서 상당히 완화된 해결책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⑶ 2004년 북미 대결의 3국면 : 3차 6자회담 이후
① 미국의 노골적인 대북적대정책
3차 6자회담 이후 미국은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었다. 3차 회담의 연장선에서 한반도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대북강경책으로 선회하여 전세 역전을 꾀할 것인가의 판단에서 미국은 다시 한 번 대북강경책을 선택한다.
7월 9일 라이스의 방한을 전후로 하여 남북 관계에서 부정적 현상들이 많이 발생하였다. 우선 7월 8일 김일성 주석의 서거를 애도하는 남측 인사들의 조문 방북이 무산되었고, 7월 14일에는 NLL에서 총포 사격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대규모 탈북 사건이 발생하면서 남북 관계는 경색되기 시작한다. 라이스가 방한하여 노무현 정부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정확하게 공개되진 않았으나 한미 관계의 구조상 그리고 그동안의 경험 상 7월부터 경색된 남북 관계에 라이스 보좌관의 역할이 컸음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라이스가 방한한 이후 주한미군은 대대적인 군사력을 한반도에 배치하기 시작한다. 7월부터 9월까지 F-117 스텔스 전폭기 10여대를 한반도에 배치하여 작전계획 숙지훈련을 실시하였는데, 미국이 보유한 55대 중 20%가 한반도에 배치된 것이다. 한편 8월 알래스카에 배치돼 있는 F-15E ‘스트라이크 이글’ 전폭기 1개 대대 20여대를 한반도에 배치하여 수개월 동안 한반도 지형적응훈련 전개하였으며, 11월 22일, 23일 태평양 해상에서 인공위성으로 유도되는 JDAM(합동직격탄) 투하 훈련을 실시하였다. 이 훈련에는 미본토 텍사스에서 출격하는 B-1 장거리 폭격기와 괌에서 이륙하는 B-52 폭격기까지 동원되며, E-8C로 불리는 최신 레이더 시스템, 공중조기경보기(AWACS) 등 첨단 시스템까지 동원된 것이었다.
3국면에서 배치된 첨단무기와 11월에 실시된 JDAM은 모두 북한의 주요시설을 정밀타격하는 즉 5026 작전계획에서 핵심적으로 필요한 무기라고 했을 때 미국은 보다 노골적인 한반도 긴장을 조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미국은 9월에 접어들어 소위 ‘남핵문제’를 야기시키면서 핵문제 해결에서 난관을 조성하였으며,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미국의 ‘북한인권법’ 제정은 지난 8월부터 가동된 ‘체제전복 프로그램’과 궤를 같이 한다. ‘체제전복 프로그램’의 구체적 내용은 ▲몽골에 탈북자 정착 난민촌의 건설, ▲탈북자를 돕는 자급지원 안 마련, ▲이북 노동자들에게 미국의 ‘자유의 소리’ 시청을 위한 라디오 10만개 지원 안, ▲해외주재 북한 공관원들의 미국 영주권 부여 및 기획 탈출 주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인척 미국 유도 입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자금 동결 등 다양한 외교 및 정보작전을 통해 이북을 압박한다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지난 10월 콜린 파월이 중국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해외자금을 동결해 달라‘고 요청(브레이크 뉴스 11. 16)하고, 미국의 CIA가 공격적인 대북 스파이 활동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11월 19일 연합뉴스의 보도가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② 북한의 대응
이와 같은 미국의 움직임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단호하였다. 미국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되자 북한은 6자회담 불참 의사를 분명히 천명하였으며, 핵 억제력을 보다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꾸준히 견지하였다. 그리고 10월 안에 재개하기로 했던 4차 6자회담은 결국 무산되고 만다.
③ 부시 재선 이후
선거에서 승리한 부시 행정부는 재선 이후 소위 ‘북핵 레드라인’이라는 것을 천명하였다. 핵시설을 해외로 이전하면 군사적 행동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에게 6자회담에 복귀하라는 외교적 공세를 강화한다. 북한과 미국은 11월 30일과 12월 3일 두차례에 걸쳐 뉴욕에서 접촉을 하였는데, 미국은 “6자회담을 전제조건없이 조기에 재개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과 우리는 핵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북측에 통보한 것이다. “북한과 혐상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측에 미국의 입장을 말해주기 위한 것”이라고 미국 관리가 밝혔던 것처럼 뉴욕에서의 접촉에서 보여준 미국의 행동은 북한과 문제해결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북한을 회유하고 협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지금까지의 일관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영일 외무성 부상이 최근 중국을 방문하여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과정을 기꺼이 지속해 나갈 것”이라는 의사를 피력하였다. 다만 김계관 부상이 북일 회담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북한은 “조기에 협의를 재개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두 차례의 접촉 이후 조선 외무성 대변인은 차기 6자회담 개최의 `조건과 환경'으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중지 ▲북한과의 공존 의지를 강조하면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6자회담을 연다고 해도 아무런 결과물도 없는 공회전만 하게될 것이 뻔하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편 북한은 미국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12월 6일 노동신문은 “미국이 원거리 선제공격 전법으로 핵 압살 야망을 실현해 보려는 것은 오산”이라며 “핵무기는 미국의 독점물이 아니며 선제공격 선택권은 미국에만 있지 않다”고 하였으며, 우리민족끼리 사이트는 1994년 지미 카터가 북한을 방문하였을 때 “제재는 곧 전쟁”이라는 김일성 주석의 발언을 소개하였다. 이는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가하면 곧 전쟁으로 간주하겠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2. 2005년 전망
북핵문제 해결을 전망하는 것은 쉽지 않다. 3차 회담까지의 과정을 통해서 낙관했다가도 그 이후 미국의 행동을 보면 일체의 해결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미국이 어떠한 군사적․외교적 압박을 한다 하더라도 북한의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비록 미국은 “공은 북한에 넘어갔다”는 여론을 조성하지만 북핵문제의 전망은 미국이 대북정책을 어떻게 추진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전망할 수 있는 것은 한반도 긴장이 더욱 고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선거에서 승리해서 더욱 기세등등해진 미국이 쉽게 자신의 정책을 포기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재선 되지마자 북핵 레드라인을 설정한 것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 경우 미국은 PSI를 본격화하여 북한 선박에 대한 대대적인 군사적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04년 10월 26일 도쿄만 앞바다에서 8개국이 모여 실시한 PSI 훈련인 “팀 사무라이”는 일본과 미국이 주도한 것이다. 당시 북한의 박길연 유엔대사는 “도쿄만의 PSI 훈련은 유엔 헌장과 국제법에 대한 위반이자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준비하는 행위”라고 비난하는 서한을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내면서 강력 반발한 바 있다.
미국이 만약 2005년 들어 PSI를 통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한다면 한반도는 다시 한번 초긴장 국면으로 진입하게 된다.
한편 미국은 2005년 MD 예산으로 100억 달러가 넘는 액수를 요청해 놓고 있으며, 향후 5년 동안 무려 550억 달러를 사용하는 예산안을 제출해 놓은 상태이다. 2005년까지 알라스카의 포트 그릴리에 16기의 요격미사일과 캘리포니아의 반덴버그 공군기지에 4기의 요격미사일을 배치하려는 계획과 함께 2005년 초까지 3척의 이지스 순양함에 5기의 SM-3 요격미사일을 배치할 계획도 갖고 있다.
미국의 이같은 일련의 행동은 북한과 평화적 관계를 형성하는가 아니면 전면적인 군사적 대결상태로 나아갈 것인가의 선택의 기로에서 최소한 후자의 선택을 전혀 포기하지 않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북한의 2005년 전망은 미국의 군사적 행동에 쉽게 ‘자극’받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북한의 군사적 행동을 부추겼던 딕 체니의 발언 이후에도 ‘인내력과 신축성’을 발휘했던 것에서 확인되듯이 북한은 미국의 군사적 움직임에 즉각적인 군사적 대응은 오히려 미국의 전술에 말려드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오히려 북한은 평화공세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평화공세에는 핵억제력을 강화하는 것도 포함된다.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유럽연합과 같은 미국을 제외한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면서 미국을 포위고립시키기 위한 외교력을 전개할 것이며, 최근 중국이 대대적인 경제지원을 하고 있는 데서 확인되듯이 북한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들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올 초에 보여주었던 것처럼 이남 당국과 더불어 우리 민족과 미국과의 대결구도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김대중 전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서 보여주는 일련의 행동은 미국에 의한 한반도 전쟁을 막아내기 위한 긍정적 노력이다. 전현직 대통령의 이같은 외교행보는 미국에 의한 한반도 전쟁 위기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서 남과 북의 공조가 강화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바야흐로 2005년은 북미 간의 대결이 최후의 순간에서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가 될 것이다. 북미 간의 대결에서 민족공조를 실현하는 것은 이북의 평화적 입장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연대를 표명하고 미국과의 대결에서 공동행보를 펼치는 것이다.
2005년 북미간의 대결에서건, 우리민족과 미국과의 대결에서건 승리의 관건은 민족공조이다. 한미동맹에서 벗어나 민족공조를 실현하는 것, 미국의 대북적대정책과 대남내정간섭을 분쇄하는 것, 미국의 전쟁책동을 분쇄하면서 615 공동선언을 올곧게 이행하는 것이야말로 2005년 승리의 관건적 문제가 될 것이다. ----------- * 위는 통일연대 학술연구 특별위원회가 12월 13일 개최한 토론회 ‘자주통일운동, 2004년 결산과 2005년 전망’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이다. * 필자 장창준은 {한국 민권 연구소}의 상임 연구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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