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관련기사 | ||
|
| ||
1. 나는 탈북자 가이드였다
2. 통장깡 부추기는 브로커들
3. 내몰리는 10대 탈북자들
4. 탈북자들의 '아메리칸 드림'
“좋은 우리 말 두고 브로커가 뭐냐. 탈북 도우미로 불러달라.”
이아무개(33·서울 양천구 신정동)씨는 ‘탈북자 돈을 뜯는 브로커’란 시각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탈북자 출신으로 2년 전에 입국한 그는 “불쌍한 동포를 뿌리칠 수 없어 시작한 탈북 알선이 어느 새 직업이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탈북자를 국내로 데려오는 데 드는 비용과 위험 부담 등을 감안해서 수수료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외교 공관 진입을 위해 탈북자들에게 300만원 안팎을 받는 등 기획탈북에도 ‘공정 가격’이 있다고 했다. “탈북자들이 숨어있을 집도 마련해야 하고, 중국 공안을 매수하거나 조선족 협조자의 인건비도 필요하기 때문에 1명당 50~60만원 가량 실비가 든다. 한국에 간 뒤 약속한 돈을 떼먹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수수료 300만원은 폭리가 아니다”라는 주장이다.
2001년 장길수 가족 사건 이후 탈북자들을 모아 중국의 외국 영사관 등에 진입시키는 기획탈북은 이제 보편화됐다고 할 정도다. 그에 따라 탈북자들이 기획탈북 과정에 관여한 브로커에게 줄 돈을 마련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임대주택이나 정착 지원금의 일부를 처분하거나 정착지원금 입금통장을 통째로 넘기는 ‘통장깡’이다.
브로커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는 탈북자에게 정착지원금을 3천590만원에서 2천만원으로 낮추고, 취업 탈북자에게 장려금을 주는 등 탈북자 정착지원 제도를 개선했다. 개선안은 7일 국무회의에서 통과됐다.
탈북 브로커의 상당수는 중국을 오가며 장사를 했던 한국인이나 탈북자 출신 한국인들이다. 한 북한인권단체 관계자는 “2~3년 전 엔지오가 기획탈북을 시작할 때는 관련 단체끼리 정보 공유를 하는 등 느슷한 연대가 있었지만, 일종의 ‘개인 사업자’인 탈북 브로커는 2~3명씩 점 조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전체 규모를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수십명 선으로 추정될 뿐이다.
탈북자와 브로커 사이에는 수수료를 둘러싸고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1년 전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 조아무개(37·서울 노원구 상계동)씨는 지난 4월 ‘중국에 있는 어머니를 베이징 한국 대사관을 통하여 한국으로 데려오겠다’고 약속한 브로커 박아무개씨에게 500만원을 줬다. 조씨는 “최근 중국에 나와 있는 친척들로부터 어머니가 북한으로 강제송환됐다는 연락을 받았는데도 브로커는 ‘한국대사관에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며 돈을 돌려받을 방법을 찾고 있다.
중국 옌지에 머물던 탈북자 박아무개(32·부산시 북구 금곡동)씨는 지난해 8월 초 브로커 김아무개씨를 만났다. 김씨는 탈북자 출신 한국인이다. 김씨는 “한국에 가는데 8백만원이 드는데 한국에 가서 정착금 3천만원을 받아 갚으면 된다”며 한국행을 부추겼다.
박씨는 다음날 ‘800만원을 주겠다’는 계약서를 작성했고, 그 다음날 조선족 남자 2명에게 인계됐다. 조선족들은 박씨를 베이징으로 데리고 간 뒤 한국 영사부 앞 100m 쯤에서 영사부 문을 가리키며 “저 문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일러주고 사라졌다. 운 좋게 중국 경찰을 피해 한국영사부에 들어간 박씨는 지난해 11월 한국에 들어왔다.
정착금 담보삼아 지급각서 작성
“공관진입 공정가 한명 300만원 ”
돈벌이 전락 무분별진입 부추겨
올해 3월 브로커 김씨가 약속한 돈 800만원을 받으러 박씨를 찾아왔다. 하지만 박씨는 △애초 안전하게 한국영사부 안까지 데려다준다고 해놓고 약속을 어겨 위험에 빠뜨렸고 △알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 300만원만 내고 한국에 들어왔다고 항의했다. 박씨는 “브로커가 공관진입 전 이틀 동안 쓴 돈을 따져보니 밥값, 차비, 옷값 등 1인당 10~20만원에 불과하더라”며 “결과적으로 한국에 왔으니 돈을 주겠지만, 다른 사람과 형평에 맞게 300만원으로 깎아달라고 흥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변협 북한이탈주민 법률지원회에서 활동하는 전정수 변호사는 “탈북자가 브로커와 계약을 맺을 당시 극도로 위축된 탈북자의 처지를 감안하면 브로커에게 약속한 지급 각서는 무효이고 설사 유효라고 하더라도 실비를 감안해 금액을 깎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탈북자와 브로커의 설명을 종합하면, 브로커가 외국 공관에 탈북자 1명을 진입시키면 어림잡아 200만원 이상을 번다. 대개 외국 공관에 한꺼번에 최소 5명 이상의 탈북자가 들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한 차례 공관진입 기획탈북이 성공하면 브로커는 1천만원 이상을 벌 수 있다. 정부의 정착 지원금은 수수료 후불제의 담보 구실을 하는 셈이다.
그동안 탈북자 지원단체 관계자들은 돈만 노리는 브로커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필요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어쨌든 기획탈북이 탈북자들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국제적으로 공론화시켰고, 무엇보다 한국으로 오려는 탈북자들에게 통로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한 탈북자 지원단체 관계자는 “중국에 있는 탈북자 전부가 한국으로 가려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한국행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현실적으로 탈북자가 브로커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국내에 들어오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인권단체에서도 브로커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에서 내는 인터넷신문 <데일리 엔케이>의 곽대중 논설실장은 “3년전 엔지오가 시작했던 기획입국이 현재는 브로커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무분별한 외국 공관 진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1년 동안 기획탈북의 95%는 브로커가 관여했다”며 “브로커는 통제가 불가능하지만, 엔지오가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많이 데려오는 전술이 북한의 변화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