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에 대한 진보적 가이드라인

2005. 2. 21. 오후 5:3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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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에 대한 진보적 가이드라인
북한인권, 이제는 말해야 한다

 

박권일 기자 kipark@digitalmal.com

 

   
자유북한방송에 근무하는 탈북동포 정아무 씨는 "남한의 친북좌파들을 모조리 북한으로 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2002년에 광화문 촛불시위 아이디어 낸 사람은 젊은 청년이라고 들었는데, 친북세력의 물이 들어버린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정 씨는 '김대중 간첩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기자가 약간 놀라는 표정을 짓자 "아니, 꼭 간첩이라는 말은 아니고 간첩이나 매한가지라는 말"이라고 정정한다.
"남북정상회담 때 나는 정말 놀랐다. 김정일이 김대중 대통령과 어떻게 그렇게 친근했는지 의심스러웠다. 김대중 대통령은 간첩이나 마찬가지다. 노무현 대통령도 김대중 대통령 뒤를 이으면서 하는 걸 보니 상당히 비슷하다."

이런 탈북 동포들을 '반통일세력'이라 규정해버리고 아예 '신경 꺼' 버리면 그만일까. 하지만 그들은 “북녘의 동포들이 김정일 독재정권의 인권탄압에 신음하고 있는 것”에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정씨는 "친척들이 남파간첩이었기 때문에 북에 있을 때 대우받고 살았던 것에 대해 지금은 부끄러울 따름"이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도대체 신음하는 북한동포들을 내버려두고 무슨 통일운동이냐"라는 그의 일갈에는 결기어린 사명감이 분명히 서려 있었다.

탈북자는 보수단체 앞잡이니 무시?

북한난민지원단체 '좋은 벗들'의 이승용 평화인권부장은 "국정원이 탈북자들 상대로 반북교육을 하고, 보수단체들이 이들을 이용해먹는다는 식의 발상은 현실과 더 이상 부합하지도 않고 문제해결에 도움도 안된다"고 지적한다.

사실 1996년부터 본격적인 의미에서 탈북이 시작되었고, 그 이전의 탈북 동포들은 모두 '귀순용사'로 불렸다. 탈북 동포들은 대부분 극심한 식량난으로 생존을 위해 탈북을 시도하는 경우이다. 이들은 중국국경을 넘나들면서 이미 연변에 스며든 한국문화를 체험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받게 된다. 이런 충격은 남한에 와서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까지 유지되고 남북한 체제에 대한 시각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1999년에 탈북한 최진이 씨는 "탈북자들은 대부분 남한에 와서 누구에게 질문을 받으면 일단 눈치를 보다가 묻는 사람의 구미에 맞는 대답을 하는 경향이 크다. 나도 마찬가지였다"라고 설명했다. 국제문제조사연구소의 조성렬 박사도 탈북자들의 경험이 한정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탈북지원을 하는 기독교선교단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다보니 의지할 데 없는 탈북자들은 기독교공동체로 자연스레 편입되는 경우가 많다. 진보진영이 탈북자들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으니 탈북자들은 대부분은 기독교공동체 아니면 남한 내 보수단체 속으로 자연스레 편입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탈북 동포들에게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한편 남한 내의 일부 북한난민지원단체들은 진보진영과 명확히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우리가 북한인권운동을 하는 목표는 김정일 정권타도입니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 곽대중 편집장은 단호하게 선언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북한인권문제는 체제의 문제이며, 따라서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지 않으면 북한인권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체제붕괴를 재촉하는 것이 과연 통일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통일부 관계자는 "북 체제 붕괴는 남한에는 곧 재앙"이라고 말했다. 그는 "탈북자들을 받아들이는 것도 좋지만 가장 핵심은 탈북자 수 자체가 줄어들도록 아낌없이 대북지원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좋은벗들의 이승용 평화인권 부장도 "지금 북한의 물가가 폭등하고 있는데 조짐이 안좋다. 1년에 최소 1백만톤의 곡물을 북에 지원해야 식량의 절대량 부족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부장은 또 "북의 정권이 붕괴되어 일시에 2천만 명이 밀려내려오면 그걸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북한의 경제적 자립이 선행되지 않으면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것, 아니 좀더 심하게 표현해 ‘남한이 망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진보진영의 ‘무관심’에 대해 북한인권운동 단체들이 가하고 있는 비판은 원칙적으로 옳다. 진보를 주장하면서도 동포들의 인권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 노력이 드물었다는 것은 사실 자연스럽지가 않다. 다른 한편 이 단체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북한인권문제 제기’가 끔찍한 민족적 재앙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진보진영의 딜레마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인권 문제를 의도적으로 전쟁 및 북의 정권 붕괴로 연결시키려는 세력이 대내외에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상시나리오: 북한인권문제가 낳을 수 있는 끔찍한 미래

1단계 존 케리 식 대북압박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연임에 실패하자 전쟁을 반대하던 전세계는 환호작약했다. 새로이 대통령에 오른 존 케리는 이라크 전쟁을 빠른 시간 내에 봉합하고, 직접적 군사개입을 자제할 것임을 천명했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비극의 서막일 뿐이었다. 케리 대통령의 눈은 중국과 한반도를 향하고 있었다. 평소 북한에 대해 전임 부시 대통령보다 훨씬 노골적인 적대감을 피력하던 케리는, 더 이상 북한에 질질 끌려다닐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정일 정권교체 없이는 북핵문제 등 어떤 현안도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더구나 중국의 무서운 성장과 그에 따른 공공연한 패권주의는 점점 미국의 인내심을 고갈시키고 있었다. 그는 '인권'이라는 카드를 뽑아들고 북에 대해 새롭고 강도높은 압박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케리 행정부가 내놓은 북한민주화프로그램은 북한정권 내부붕괴 시나리오를 담고 있었다. 인권문제를 체제전환과 직접 연계시키겠다는 의도였다. 물론 군사공격의 여지도 남아있는 상태였다. 의회 역시 탈북자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법안을 마련해 화답했다.

2단계 미국의 비호 아래 탈북 엑소더스

이번에는 유엔도 미국의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발을 맞췄다. 표면적으로나마 미국은 60차 유엔인권결의에 부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한엔 인권문제와 관련된 어떤 발언권도, 영향력도 없었다. 북한인권문제나 북핵문제에서 우왕좌왕했던 남한정부에겐 당연한 결과였다.
북핵회담은 공전을 거듭하고, 미국의 북한민주화프로그램과 북한인권 시민단체들의 김정일 타도운동이 맞물리면서 북 체제는 다시 위기를 맞게 된다. 대규모 탈북이 감행되고 이에 따라 북한-중국 국경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세계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3단계 북한의 동북개발 편입

해결되지 않는 경제난, 그리고 대규모 탈북행렬은 김정일 정권을 정치적 위기로 내몬다. 내부통제도, 군부에 대한 장악력도 약해진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북경협마저 여의치 않자, 중국의 동북진흥계획에 편승, 북한 북부지역을 개발하는 계획을 고려한다. 동북진흥 계획은 지린(길림)과 랴오닝(요녕), 헤이룽장(흑룡강)성 등 '동북3성'의 공업지구를 부흥시키는 대규모 프로젝트. 2003년 8월 원자바오 총리가 참석한 장춘회의에서 이 '동북진흥계획'이 공식적으로 통과됐고 2004년 3월 열린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 2차회의에서 세부개발정책이 완성됐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은 수년간 이 계획의 실현을 망설이고 있었다. 이 조치는 신의주를 중심으로 한 북부지역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사실상 중국으로 편입시키는 것이다. 평소에 그가 강조하던 민족협력이나 자주의 원칙은 결정적으로 훼손될 수밖에 없다. 아니, 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업조차 송두리째 날아갈 수 있다.

4단계 재주는 미국이 넘고, 돈은 중국이 챙기고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의 번민과 고뇌는 갑작스런 '사고'로 끝을 맺었다. 북한 군부 내 비주류가 먼저 쿠데타를 일으켰던 것이다. 군부의 대다수는 이미 어느 정도는 친중파였기에 그 다음 순서는 당연히 '친중정권'일 터. 미국이 비밀리에 몽골에 세운 망명정부 인사들과 군사훈련소의 군인들이 채 활약하기도 전에 상황은 종료되고 말았다. 미국은 모든 준비를 착착 진행해오다 마지막 순간, 중국에게 '먹이'를 빼앗긴 셈이다. 한반도는 다시금 중국과 미국의 격전장으로 돌변했다. 통일은 물론 민족경제공동체라는 '소박한' 꿈도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북한인권법안 통과, 어떻게 볼 것인가

물론 미국과 북한인권단체들의 이른바 ‘김정일 정권 타도 운동’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이 과정은 인권을 빌미로 한 미국의 전격적 북한침략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북한인권 단체들은 미국의 정치․군사적 능력이 북의 수뇌부 및 대량살상무기를 삽시간에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 미국의 북침이 한반도 전역을 포함하는 전쟁으로 불거질 가능성은 상당히 크다.

그러나 ‘중국이 돈을 챙기는’ 이상의 시나리오가 황당무계한 것만은 아니다. 중국의 패권주의가 욱일승천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미 북에서는 달러와 함께 중국의 위안화가 통용되고 있음이 탈북자들의 증언으로 속속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중국경제권으로 북이 흡수되어가는 전초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다. 국제문제조사연구소의 조성렬 박사는 "북한이 조기붕괴하면 친중정권이 들어설 것이 거의 확실하며, 그럴 경우 통일은 완전히 물건너간다"고 우려한다. 또한 북한이 붕괴하면 남한도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조 박사는 북한인권을 문제삼는 미국 및 국제사회의 압박과,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중국의 패권주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북한인권문제가 단순히 인도주의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는 것은 바로 미국의 움직임과 국제사회의 개입, 그리고 중국의 패권주의가 일시에 화학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인권문제, 그리고 민주주의를 빌미로 이뤄지는 미국의 개입주의적 정책들의 본질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면서, 자신에 적대적이라 판단한 국가들이나 자국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그리고 그런 모든 행동에는 법적 근거가 있었다. 바로 미 의회에서 이런 법안들을 통과시켜주었던 것이다. 물론 이들 법안을 치장하고 있는 것은 자유,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이다. 북한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2003년 북한자유법안에 이어 2004년 북한인권법안이 미 하원에서 통과되는 등 북한정부는 강한 대외적인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인권법안(North Korean Human Rights Act of 2004)의 핵심은 미국이 탈북난민들을 직접 수용할 수 있게 하고, 대북방송을 강화하는 한편 북한인권단체들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것이다.

인권운동 사랑방 등 남한의 시민사회단체들은 북한 자유법안 및 인권법안의 목적이 북 인권의 개선이 아니라 북 체제의 붕괴를 의도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미 상원 외교위원장인 리처드 루거는 북한자유법안이 상정되기 4개월쯤 전인 지난해 7월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이렇게 주장한 바 있다.
"우리는 일부 탈북자들이 미국에 재정착하는 것을 허가하고 동맹국들도 그렇게 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 … (이런 조치는)1989년 동독의 대규모 탈출사태가 동독을 무너뜨린 것처럼 평양정권의 붕괴를 재촉할 수 있을 것이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박정은 간사는 북한인권법안의 또 다른 문제점이 '타 국가에 대한 체제의 강요'라고 지적하면서 "이번 법안이나 작년에 통과된 북한자유법안 모두 노골적으로 시장경제 체제만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체제는 북한주민들 스스로가 결정해야할 일"이라고 말했다.

당사자인 북한은 이번 인권법안 통과와 관련, 상당히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2004년 7월 27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사와의 기자회견에서 "이 법안은 시작부터 마감까지 우리 공화국을 중상모략하는 허위날조로 가득차 있다. 미국이 이번 법안에서 납치문제에 대한 정보제공과 인도주의적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들고나온 것 역시 우리 제도를 거세하기 위한 사전준비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또 대변인은 "인권문제는 핵문제와 함께 고립압살정책의 2대 기둥"이라 지적하고 "미국은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며 자기이익에 방해가 된다고 간주되면 주권국가의 수반을 납치하는 것도, 다른 나라의 합법적 정부를 뒤집어엎는 것도 서슴지않는 국가테러의 장본인이며 납치의 원흉"이라 비난했다.

쿠바에서 북한까지: 미국의 '불량국가' 다루는 법

국제문제 조사연구소 조성렬 박사는 '미국의 개입주의 정책과 대북특별법안'이라는 글에서 "미국의 신개입주의 정책은 타국에 대한 군사적 개입과 동시에 방송이나 인쇄매체, 반대단체에 대한 지원 등 비군사적 개입이 혼재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조 박사는 이런 개입주의적 정책이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에서부터 시작해 체제전복을 위한 군사적 조치로 단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북한인권법안과 같은 미국의 조치도 그런 맥락을 세밀히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인권법안은 특수한 예외적 법안이 아니다. 미국은 '불량국가'나 '악의 축'으로 규정한 국가들에 대해 '맞춤형 법안'들을 잇따라 입안한 바 있다. 쿠바의 경우, 1962년 소위 '쿠바미사일 위기' 이후 미국으로부터 다양한 형태의 경제제재를 당했다. 그 이후 30년간 지속된 대 쿠바 경제봉쇄 조치를 담은 법안이 바로 '쿠바민주주의법'이다. 이어서 1996년에는 외국인 투자를 억제하는 등 한층 강화된 형태의 '쿠바 자유민주연대법'이 제정되었다. 특히 미국은 쿠바와 거래하는 타국 기업들에게까지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유럽연합이 강력히 반발하기도 했다.

미국에게 '악의 축'으로 지목당한 이라크의 경우, 극단적인 제재법안이 마련되었다. '이라크 해방법'이 그것인데, 1998년 제정된 이 법안은 아예 전문에서 '이라크 정부의 체제전복'을 명시하고 있다. 후세인 독재정권을 '민주정권'으로 교체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반체제단체에게 라디오 TV방송을 이라크 내로 송출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프라하에서 송출되는 반이라크방송인 '라디오 자유유럽'이 출범하기도 했다. 또 이 법안은 반체제단체에 대한 군사적 훈련과 재정적 지원을 포함하는 등 대부분의 조항들이 이라크 정부에게 치명적인 제재조치였다. 결국 후세인 정부는 2002년 11월 조건없는 무기사찰을 수용함으로써 사실상의 항복을 선언했지만, 미국은 2003년 3월 '이라크의 자유'라는 이름의 군사작전을 일으켜 이라크 전지역을 초토화했다. 이 외에도 미국은 이란민주주의법안으로 '악의 축' 국가 이란에 대해 압력을 가하고 있는 중이다.

위의 세 법안과 북한인권법안은 공히 해당국가에 대한 경제제재 및 반대여론 조성, 라디오방송의 확대, 반대단체 육성 등을 포함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군사적 개입의 정도는 각각 차이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해당국가의 정권교체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북한인권에 관한 진보세력의 가이드라인

진보진영에게 시간이 별로 없다. 북한인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세계각국의 논의들은 남한과 무관하게 지금 이 시각에도 착착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시 바삐 북한인권문제에 접근하는 진보적 가이드라인을 세울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의 조언을 참고해 월간 『말』이 잠정적으로 작성한 '북한인권문제에 접근하는 5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인권문제를 남한의 문제로, 진보진영의 시급한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둘째, 북한정부를 비판하지 않은 채 북한인권 문제를 거론하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셋째, 북한인권 문제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일괄해결이 아닌 단계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넷째, 북한인권문제와 기타 현안(대량살상무기, 마약, 위조지폐 등)의 연계를 최대한 차단해야 한다.
다섯째, 자본주의/사회주의라는 이분법을 버리고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한민족 경제공동체라는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첫째 원칙이 5가지 원칙의 대전제가 되어야 한다. 탈북자 문제 등 북한인권문제에서 남한은 사실상 당사자라 할 수 있다. 북한인권상황의 악화는 결국 미국이나 국제사회의 비우호적 개입으로 이어질 것이고 결국 북한정권의 조기붕괴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럴 경우 남한은 통일로의 연착륙은커녕 처참한 혼란의 한복판에서 고스란히 피해를 뒤집어쓰게 된다. 북한인권문제는 남한사회의 미래이자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좋은 벗들'의 이승용 평화인권부장은 "그 어느 나라가 북한난민들을 흔쾌히 받아들이겠나. 결국 남한이 끌어안을 수밖에 없다. 어차피 그렇게 될 것이라면 남한이 이 문제의 주도권을 쥐고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진보진영도 이 문제를 더 이상 비껴갈 수 없다"고 잘라말하고 "현재의 상황은 풍선이 터지기 직전까지 잔뜩 부풀어오른 상태"라고 표현했다. 이 부장은 "이번 4백68명 집단입국사태를 두고 기획탈북이니, 미국의 배후조종이니 하는 논란에만 매달려 있다가는 결국 미국이나 보수단체들이 바라는대로 상황이 흘러갈 수밖에 없다"면서 진보진영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문했다. 이러한 '개입'은 이를테면 그간 보수단체나 보수언론의 절대적 영향하에 놓여있던 대다수 탈북자들을 이제 진보진영이 직접 부딪혀 만나야한다는 것을 뜻한다.

   
북한정부는 비판을 견딜 맷집을 키워라

두 번째 원칙은 북한인권 문제가 지닌 가장 치명적인 딜레마를 건드린다. 그동안 진보진영 혹은 통일운동진영이 북한인권문제 및 탈북자들의 실상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해왔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끄집어내면 어떤 식으로든 북한정부를 공격할 수밖에 없으며, 어렵사리 다다른 남북화해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낳을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국제문제조사연구소의 조성렬 박사는 “진보진영이 기존의 틀에 사로잡혀 있는 한 영원히 북한인권이란 이슈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다.

"각종 토론회에서 만나본 진보진영 사람들은 탈북자들이 이데올로기를 떠나 자신의 체험을 호소하는데도 굉장히 냉소적으로 대했다. 그래서는 안된다. 북한정부를 비판하지 않고 북한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 정부도 이제 남한진보진영의 비판을 견디는 맷집을 키워야 하며, 그것이 북한정권을 위해서도 이롭다고 생각한다."

지난 6월 25일 '좋은 벗들' 주최로 열린 북한인권법안 관련 토론회에서 영남대 민주주의법학연구회의 정태욱 씨는 조심스럽게 '정부의 실패'라는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즉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 체체에 대한 직접적 비난은 지양하되, '북한행정부의 한시적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 번째 원칙은 1966년 유엔총회에서 제정되어 1976년에 각각 발효된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The Covena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일명 A규약)'과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The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일명 B규약)' 등 두 개의 국제인권장전과 관련된다. 한국의 진보적 시민단체들은 지난 4월 '2003년 북한자유법안'과 '2004년 북한인권법안'에 대해 미 의회에 의견서를 제출한 적이 있었다. 시민단체들은 이 의견서에서 대전제로 "식량권과 생존권이 중요한 인권"이라고 지적했다. 식량권과 생존권은 A규약에 속하는 인권이다. 그러나 막연히 이것만 주장해서는 국제사회의 동의를 끌어낼 수 없다. A규약을 어느 정도 충족시킨 이후에 B규약, 즉 정치범 문제 혹은 사상표현의 자유 등을 단계적으로 제기한다는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네 번째 원칙의 목표는 북한인권문제를 거론할 때 최대한 정치적 의도를 배제해야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남한 내부에서 북한인권 문제가 '뜨거운 감자'였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남과 북이 서로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버리면 통일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특히 미국은 끊임없이 인권 문제와 기타 현안을 연계시키려 시도하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의 이주영 상임활동가는 "미국이 북한과 갈등의 당사자이면서 동시에 중립적인 위치에서 북한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지적한다. 대신 유엔인권위의 활동에는 한국정부나 진보적 시민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협조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 다섯 번 째 원칙은 다소 추상적이라 느껴질 수 있다.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한민족경제공동체에 대해 누구도 큰 이의를 달지 않지만, 그 실현은 지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원칙에서 방점은 뒷부분에 찍혀있다. 자본주의/사회주의라는 체제구분에 따라 북한을 외부에서 강제로 변화시키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에 시장을 도입하라고 요구하는 것을 체제에 대한 공격이라 매도하는 것 또한 극단적인 태도다. 시장을 도입하는 것이 곧 사회주의를 포기하라는 말과 동의어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치체제의 안정이야말로 시장도입의 필수조건인만큼 북한을 과도한 군비경쟁으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시킬 필요가 있다. 이는 한반도평화정착이라는 장기적 과제의 일환임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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