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한 탈북자단체의 자원봉사자 이임숙(39)씨는 주위 사람들에게 급하게 도움을 청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지난달부터 한 탈북 청소년(14)의 얼굴이 어두워 걱정이 있냐고 물어봤다. 그 아이는 중국에서 탈북 브로커가 한국으로 찾아와 ‘약속한 탈북 수수료 250만원을 갚지 않으면 다시 북한으로 보내버리겠다’고 겁을 줬다고 한다.”
이씨는 경찰에 신고할까 생각하다가, 실효가 없을 것 같아 주위 사람들이 모아준 돈으로 브로커와 합의를 봤다.
지난달 중순 탈북자 정착교육시설인 하나원에 형법을 강의하러 갔던 박인환 변호사는 좀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박 변호사는 “3개월 과정의 하나원 교육을 마치고 나오는 날이면 아침부터 브로커들이 하나원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탈북자들을 강제로 끌고 가서 협박하고 탈북 수수료를 빼앗아간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갓 입국한 탈북자들이 브로커한테 느끼는 불안감은 크다. 하지만 국내에 들어온 뒤 시간이 좀 지나면 탈북자들은 ‘비싸다’ ‘알고 보니 불법이니 주지 않아도 된다더라’며 브로커와 흥정을 시도한다. 그 때문에 브로커들에게 잦은 ‘미수금’ 발생은 골칫거리였다. 이들 브로커들에게 부모없이 혼자 들어온 탈북 청소년들은 만만한 상대가 된다.
1999년까지는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들은 어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2000년 이후 청소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99년 7월부터 올 9월까지 입국한 탈북 청소년은 모두 791명으로 전체 탈북자의 19% 가량이다. 이 가운데 부모가 없는 무연고 청소년은 156명에 이른다.
탈북 청소년들이 남쪽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이질적 환경과 편견도 이들을 심하게 괴롭힌다.
지난 4월 한국에 들어온 이아무개(17)군은 웬만큼 남쪽 사회에 적응했다고 자신하지만 가끔 벽에 부딪치곤 한다고 말했다. “한 인터넷 게시판에서 ‘펜팔을 하고 싶다’는 글을 보고 ‘내게 펜이 많은데, 무슨 펜이 필요하냐’는 답글을 올렸어요. 그랬더니 ‘지금 장난치냐. 혹시 당신 간첩 아니냐’는 댓글이 붙더군요.” 영어가 서툰 이군은 ‘펜팔’을 연필이나 볼펜같은 필기구를 사고 팔자는 제의로 알았던 것이다.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이군은 “내년부터는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준비할 것 같다”며 말을 흐렸다.
초·중·고에 다닐 나이인데도 학교에 다니지 않는 탈북 청소년들이 많다. 초등학교 취학률은 85.7%지만, 중학교 취학률은 49%다. 또 고등학교를 다닐 나이인 16살부터 20살까지 탈북 청소년 411명 가운데 학교에 다니는 이들은 27명으로 6.6%에 불과하다.
중·고등학교 취학률이 이처럼 낮은 것은 학교를 다니다 그만 두는 중도 탈락률이 높기 때문이다. 탈북 청소년의 중도탈락률을 보면, 중학생은 남한 학생 평균의 8~15배, 고교는 인문계 8~13배, 실업계 3~4배 정도다.
김미숙 한국교육개발원 부연구위원은 “탈북 청소년들은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 때(29.6%) △친구들이 무시하거나 놀릴 때(26.8%) 학교에 다니기 싫다고 답했다”며 “탈북 청소년들이 남한 학교에서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노력뿐만 아니라 학교와 사회가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탈북 청소년들의 가장 큰 고민은 성적이고 그 다음은 말씨”라며 “탈북 청소년들은 북한 말투 때문에 부모들이 학교에 오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말씨 교정 프로그램’을 지역사회복지관에서 어른반과 어린이반으로 구분해 운영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재빨리 남쪽 말투로 바꾼 순발력이 뛰어난 극소수를 제외하면 사춘기에 접어든 탈북 청소년들에게 말투는 열등감의 근원이다. 탈북자에 대한 편견 때문에 아예 조선족 행세를 하는 탈북 청소년들도 있다. 박아무개(19)군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북쪽 억양이 남아 있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때가 있다”며 “그럴때면 아예 연변에서 왔다고 거짓말을 한다”고 말했다. 박군은 “한국 사회에서 핏줄이 같고 같은 말을 사용하더라도 남한 사람이 1등, 조선족은 2등, 탈북자는 3등 대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족은 좀 못살아도 돈을 벌러 온 사람이고 곧 돌아가기 때문에 남쪽 사회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탈북자는 고향과 부모형제를 버리고 혼자 잘살겠다고 온 독한 사람이고 세금으로 먹여살려야 하기 때문에 피해를 본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탈북 청소년들은 때때로 남과 북의 ‘경계인’이 된다. 탈북자 박군은 “아테네 올림픽 때 북한 유도 영웅 계순희 선수의 올림픽 유도 중계를 보면서 남쪽 사람이 된 내가 북한 계순희 선수를 응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동안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조국을 배신했다’는 부채 의식에 따른 정체성의 혼란 때문이었다.
탈북지원단체 관계자들은 탈북 청소년들이 북한 경제가 가라앉을 무렵 태어나 유년기에 식량난인 ‘고난의 행군’을 겪었던 점에 주목한다. 탈북 청소년 중에는 신체 발육이 또래 남한 청소년에 비해 더딘 경우가 많아 학교 생활 지원 뿐만 아니라 의료 지원, 영양 공급, 정신 상담 등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강락 하나원 소장은 “기술교육, 외국어 교육, 특기 교육 등 특성화 교육과 맞춤형 교육을 통해 탈북 청소년들을 제도권 학교에 편입시키고 제도권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는 재교육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