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 차례에 걸쳐 연재된 이 글에서는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간의 이해관계와 전략적 계산을 살펴보고, 이러한 맥락에서 2기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변화 가능성을 점검하며, 끝으로 미중간의 갈등과 협력 구도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탐색해보고자 합니다. <필자 주>
흔히 국제정치학자들은, 한국은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의 한반도에 대한 득실구조 및 전략적 가치 판단의 변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기초로 대외정책을 수립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고 강조한다. 숙명과도 같은 지정학적 위치에 더해, 최근 미국의 패권전략과 중국의 부상으로 미중관계의 긴장이 드러나고, 북핵과 한미동맹 재조정 등 첨예한 현안들까지 맞물리면서 이와 같은 지적은 더욱 힘을 얻기도 한다. 이는 거꾸로 '한국이 동북아에 형성되고 있는 갈등과 협력 구조, 특히 미중간의 전략적 긴장관계를 얼마나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가'야말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포함한 한반도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데 중대한 과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최대 현안인 북미 갈등의 해결 여부 및 그 방식에 있어서 한국의 역할이 중대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 갈등이 장기화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한국에게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지만, 점차 첨예해지고 있는 강대국간의 패권경쟁에서 한국이 또 다시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의 씨앗'을 잉태하는 과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시 행정부는 북핵 문제를 지렛대로 삼아 중국을 염두에 둔 한미·미일동맹 재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한국은 그 위험성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채 이에 편입되어 가고 있다. 한국이 미국의 대중국 봉쇄 전략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될수록, 최근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중국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점에서 북한과의 동맹관계 강화에 박차를 가할 공산이 크다. 이는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미중간의 원심력이 본격화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북핵 문제의 장기화를 포함한 한반도의 불안한 현상유지나 최악의 급변 사태 발생 가능성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북미 갈등과 한미동맹 재편이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면서 감당하기 힘든 딜레마를 잉태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주도적 역할"의 이상과 현실 지난 2년 동안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엄중한 과제 앞에서 갈팡질팡했던 노무현 정부는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자, "할 말"을 하면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천명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이에 따른 북핵 불용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북핵 문제는 철저하게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부시 행정부 안팎에서 끊임없이 거론되어온 북한에 대한 무력 사용은 물론이고 봉쇄를 통한 북한 붕괴 유도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2기 부시 행정부가 '딴 생각'을 못하도록 쐐기를 박으려고 했다. 앞으로는 미국의 선의를 기대하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모색해보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는 2기 부시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뒤늦게 제대로 된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판단할 때, 한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북한의 전략적 결단을 이끌어낼 만큼 남북한의 신뢰가 구축된 것도 아니고, 남한이 북한에 행사할 수 있는 지렛대도 제한되어 있다. 또한 지난 4년이 보여주듯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천명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이 의아해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더 이상 방관자나 소극적 중재자로 머물 수도 없다. 냉철하고 정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창조적이고 치밀한 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노무현 정부가 "한미일 공조를 중심으로 6자회담의 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밝힌 이상, 가장 큰 과제는 2기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노무현 정부는 부시 행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한미공조에 '올인'했다. 대선 공약이었던 한미행정협정(SOFA) 협상을 뒤로 미뤘고, 세계 3위 규모의 이라크 파병을 단행했으며, 미국의 필요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 주한미군 재배치 비용을 거의 전적으로 부담하기로 했다.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면 미국도 우리의 입장과 요구를 이해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 심리의 반영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설픈 연계 전략'에 의존하지 않고 부시의 대북정책을 견인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이를 위해서는 다차원의 접근이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하게는 미국의 대북강경책이 미국의 국익과 전략적 이해관계를 훼손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북미관계 개선이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점을 주지시켜야 하고, 이는 대북포용정책이 대북한 비타협주의에 비해 '비교우위'에 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미중간의 갈등,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미중관계의 복잡성과 전략적 긴장이 한국을 곤혹스럽게 하는 측면이 강하지만 동시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중국 지도부가 미국 강경파의 한반도 구상에 동의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북한의 붕괴나 한반도 전쟁 발발도 중국에게는 엄청난 경제적, 안보적 부담을 야기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미국 강경파의 궁극적인 의도가 중국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중국 지도부도 잘 알고 있다. 이는 미중간에 '제2의 가쓰라-테프트 밀약'이 어려운 전략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중국이 북한의 버팀목이 되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고 미국이 큰 유인책을 제시한다면 중국의 판단이 흔들릴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외교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를 놓고 흥정을 벌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미국 강경파의 구상에 대한 한중간의 위기의식을 암묵적으로 공유할 필요가 있다. 반면에 미국의 입장에서도 북핵 문제의 장기화가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가져오고 있다는 우려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2기 부시 행정부가 대북강경책이 중국의 영향력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반면에, 강압적인 방식으로 북한을 굴복시키거나 붕괴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할 경우, 대북정책의 극적인 변화를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은 이 가능성을 유념하면서 미국으로 하여금 대북강경책보다 포용정책이 자신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부합한다는 점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정부 차원에서 이와 같은 대중·대미 외교는 쉽지도 않고, 자칫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미든, 한중이든, 정부 차원에서 상대방의 의도를 겨냥한 전략적 대화를 한다는 것은 외교적으로 엄청난 부담이 따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역할은 국회, 민간 전문가, 언론 등이 주도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한국이 미중관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국제관계를 활용할 때, 경제협력의 중요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역내 국가들 사이의 경제협력 활성화는 역내 국가들 사이에서 '협력의 동기'를 강화시켜주는 동시에 미국의 대북 제재와 봉쇄를 현실적으로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1기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강경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반면에, 남북, 북중, 북러 사이의 교역규모는 꾸준히 증가되어왔다. 이는 그 자체로도 미국의 대북강경책을 일정 정도 제어하는 효과를 가질 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대북강경책이 동북아에서 미국의 고립을 자초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비판의 씨앗이 되고 있다. 일례로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데이비드 강은 최근 노틸러스 연구소에 기고한 글을 통해, "동북아 경제협력과 무역이 결실을 맺기 시작하면, 동북아에서 왕따(odd man out)가 되는 나라는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 될 수 있다"며, 2기 부시 행정부는 국익의 관점에서 이러한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기회의 창을 열려면 오늘날 한반도의 정세는 '태풍의 눈'에 들어선 상황이다. 상대적인 고요함은 위기가 해소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잠복기에 들어갔기 때문인 것이다. 이는 창조적이고도 자주적인 전략을 통해 한반도를 휩쓸 수도 있는 태풍을 소멸시킬 것인지, 아니면 외세의 선의(善意)에 의존하는 관성을 버리지 못하면서 우리의 운명을 '운'에 맡길 것인지 중대한 분수령에 서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간의 파워 게임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오늘날, 분단 60주년이라는 '굴욕의 창'을 내리고 '기회의 창'을 열기 위해서는 노무현 정부의 역할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구체화할 시점이 온 것이다. | ||||||||
| ||||||||
2005/01/24 오전 9:54 ⓒ 2005 Ohmynews | ||||||||
미중관계와 북핵(하)
2005. 2. 23. 오전 11:30:19
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