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관계와 북핵(상)

2005. 2. 23. 오전 11:28:29

글자
[심층분석] 미중관계와 북핵(상)
 
2005년 들어 미국과 중국 관계를 중심으로 동북아 국제관계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한 부시 행정부는 중국이 미국과 대등해지는 것을 사전에 좌절시킨다는 목표 하에, 미일동맹 재편에 들어간 상황이고, 한미동맹 역시 이와 비슷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이에 맞서 중국은 군사력 증강과 함께 러시아, 인도, 유럽연합 등과 함께 반(反) 패권연대를 시도하는 한편, 중동 및 남미 국가들과의 관계 증진도 도모하고 있습니다. 특히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에 있는 북한과의 관계에 공을 들이고 있는 모습이 역력해 보입니다.

이처럼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과 떠오르는 강대국인 중국이 상대방의 의도에 대한 경계심을 바탕으로 군비경쟁 및 외교전에 돌입함에 따라, 이 틈바귀에 있는 한반도의 미래에도 먹구름이 끼고 있습니다. 특히 문제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북핵 문제가 강대국들의 전략적 이해관계까지 복잡하게 맞물리면서 고차원의 방정식이 되고 있습니다. 100년 전 강대국들의 패권경쟁과 이해관계의 조정 과정에서 희생양이 된 바 있는 우리로서는 냉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치밀한 전략 마련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인 것입니다.

세 차례에 걸쳐 연재될 이 글에서는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간의 이해관계와 전략적 계산을 살펴보고, 이러한 맥락에서 2기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변화 가능성을 점검하며, 끝으로 미중간의 갈등과 협력 구도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탐색해보고자 합니다. <기자 주>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역할론'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북한과 대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제2의 가쓰라-테프트 조약'을 맺을 수도 있다는 흉흉한 전망이 끊이지 않는가 하면, 중국이 자신의 영향력 확대와 대만 문제에 대한 지렛대 확보 차원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질질 끌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2004년 12월 초에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국회 방미외교단은 미국 내에서 중국의 역할에 대한 우려와 견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며, 이것이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미국이 받아들인 중요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6자회담에서 중재자 역할에 충실하기보다는 이를 자신의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시키는 수단으로 삼고 있으며, 이에 따라 북핵 문제는 장기화되고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를 미국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미국 내의 중국견제론은 이전부터 제기되어왔다. 대표적으로 미국 의회의 초당적인 기구인 '미중경제안보재검토위원회(UCESRC)'는 2004년 6월 중순 발표한 연례 보고서를 통해, "중국은 북한에 대한 막대한 정치적, 경제적 지렛대를 충분히 사용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하면서, "앞으로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태도와 역할이 미중관계의 핵심적인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 내에서 '중국견제론'이 나오고 있는 것은 두 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매파적 시각이다. 부시의 대북정책을 옹호하는 세력은 북한을 압박하는 데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중국이 미국 주도의 대북한 압박정책에 동참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어 왔다.

다른 하나는 대북포용정책의 맥락이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이 오히려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위상과 영향력 확대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즉,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거부하고 6자회담을 고집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이 회담의 주최자인 중국의 역할만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존 케리도 공유한 바 있고, 이는 자신의 집권시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 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중요한 배경이기도 했다.

"북한 핵무장 해도 평화적 해결 포기하지 않을 것"

미국 내에서 이처럼 대중정책의 맥락에서 대북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과는 달리, 중국은 북한에 대한 전략적 입장을 정리하고 북한과의 관계 강화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패권주의의 칼날이 결국 자신을 겨냥할 것이라는 인식을 강화하면서 북한을 '완충지대(buffer zone)'로 삼고자 하는 의도를 갈수록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즉, 북한의 핵무장을 방지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이지만, 북한의 붕괴를 방지하는 것을 더 상위의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가 2004년 7월 상하이, 10월 초 서울, 10월 중순 히로시마에서 만난 중국의 안보 전문가들은 중국의 대북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한반도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중국 외교부의 고위 관리를 지낸 한 전문가는 "북한의 핵무장을 하더라도 중국은 결코 평화적 해결 원칙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북한의 핵무장을 저지하기 위해 무력 사용도 고려할 수 있다는 미국의 입장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반도, 특히 북한을 둘러싼 미중 사이에 전략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면서 북핵 문제는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미국 내에서는 중국의 역할에 대한 회의론이 부상하고 있고, 중국 내에서는 미국의 대북한 비타협주의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정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중국을 21세기의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한 부시 행정부는 대중정책의 하위 변수로 한반도 정책을 구상해 왔고, 중국은 이에 대응해 미국의 패권주의가 한반도를 거쳐 자신을 겨냥하는 것을 막는 것을 한반도 정책의 마지노선 순위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숙명과도 같은 지정학적인 위치에 더해, 북핵 문제를 계기로 한반도를 자신의 영향권 아래에 두려고 하는 미중간의 원심력이 본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동상이몽'

기실 6자회담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생각은 애초부터 크게 달랐다. 일방주의로 무장한 부시 행정부가 엉뚱하게도 북핵 문제와 관련해 다자회담을 들고 나왔을 때, 부시 행정부가 기대한 것은 핵문제가 '북한 대(對) 미국'이 아니라 '북한 대 국제사회'의 대결 구도로 놓으면서 북한에 대해 국제적인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북한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보았던 중국의 역할을 기대했다. 부시 행정부가 줄곧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참가국들이 "통일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며, '중국역할론'을 강조해 온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중국의 생각은 달랐다.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미간의 협상이 중요하고 자신은 회담 주최자 내지 중재자 이상의 역할은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핵문제는 북한의 안보적, 경제적 우려가 함께 해소되는 맥락에서 해결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미국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대미관계도 중요하지만 대북관계도 소홀할 수 없다는 중국의 전략적 판단 때문이다.

여기서 북한과 미국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판단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대미·대북관계 모두 잘 유지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미국이 대북강경책으로 일관하고 북한이 이에 맞서 핵 카드를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대미·대북관계에서 '전략적 균형'을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전략적 균형이란, 대미관계의 근본적인 훼손이 초래되지 않은 범위에서 북한에 대한 버팀목 역할을 계속하고, 동시에 미국의 대북강경책과 북한의 핵개발 시도를 동시에 비판·견제하는 입장을 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북한과 미국이 중국에게 비슷한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및 2010년 상하이 세계 엑스포로 상징되는 국가적 거사를 잘 치르며, 대만의 통일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대미관계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미관계의 안정적인 관리가 가장 중요한 대외정책의 목표라고 해서, 중국이 바라보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평가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북한을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점에서 바라봤고, 항일투쟁과 한국전쟁을 통해 혈맹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대북강경책이 중국의 정치적, 경제적, 안보적 이익을 총체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한반도의 급변 사태(북한의 붕괴나 한반도 전쟁)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이 강경해질수록 오히려 북한에 대한 전략적 가치 인식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더구나 한반도의 급변 사태가 한미연합군 주도의 통일로 이어질 경우, 미국 패권주의의 칼날이 턱 밑에까지 도달할 수 있고, 간도 문제를 놓고 통일 코리아와의 영토 분쟁이 본격화될 가능성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중국은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적 자세를 계속 유지하면서 미국의 대북강경책과 북한의 핵카드를 동시에 견제하는 정책을 구사할 것이다.

6자회담 최대 수혜자 중국의 속셈은?

이와 같은 미중간의 동상이몽 속에서 6자회담의 최대 '외교적 수혜자'는 중국이라고 볼 수 있다. 6자회담 주최자로서 회담이 열릴 때마다 국제사회의 이목을 베이징으로 모을 수 있었고, 회담 중재자 및 촉진자로서의 입지를 굳혀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라 밖의 문제에 대해 과거의 '비간섭주의'에서 탈피해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발언권을 높이는 기회로 6자회담을 삼아왔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의 지적처럼, 중국이 자신의 외교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북핵 문제 해결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에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북핵 문제가 장기화되는 것 자체가 중국으로서도 적지 않은 부담이 따르는 일이고, 또한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지렛대도 생각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북핵 문제의 장기화가 결코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핵문제의 장기화가 한반도의 급변 사태로 이어질 수 있고, 일본의 재무장 및 미일동맹 강화의 구실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핵 문제의 최대 '군사적 수혜자'는 바로 미국이라는 점도 중국으로서는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기존의 '북한미사일위협론'에 이어 북핵 문제가 불거지자, 이를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 및 한미·미일동맹 재편의 최대 명분으로 내세워왔고, 실제로 이는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

MD를 21세기 자신의 안보를 위협하는 최대의 요소를 보고 있고, 한미·미일동맹의 재편에 촉각을 곤두세워온 중국으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북핵 문제가 장기화될수록 이를 구실로 MD 구축 및 한미·미일동맹의 강화에 가속도가 붙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중국이 북핵 문제의 장기화를 바라고 있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아울러 중국이 북한에게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에 대한 평가도 신중하게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이 북한의 유일한 동맹국이고 중국의 부유화(富有化)에 비해 북한의 궁핍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현실은 중국의 대북한 영향력이 막강할 것이라는 판단을 낳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곧 북한의 선(先) 핵 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이끌어낼 만큼 중국의 영향력이 강하다는 판단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중국은 북핵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북한의 안보적, 경제적 우려도 함께 해소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고, 북한이 먼저 핵 포기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대북지원을 중단하면 자신의 전략적 마지노선인 북한 붕괴 방지가 흔들릴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과 미국을 설득해 6자회담 틀에서 협상을 하도록 자리를 마련해주는 중재자 및 촉진자 역할 이상을 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기실 북핵 문제에 대한 미중간의 동상이몽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이들 국가들이 북핵 문제 이면에 깔고 있는 이해관계의 상충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부시 행정부를 포함한 미국의 강경파들은 북한의 핵 개발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보다는 이를 구실로 삼아 MD 구축 등 군사 패권주의 강화의 근거로 삼는데 관심을 가져왔다. 또한 일부 네오콘들은 북한을 붕괴시켜 한반도 전체를 친미 질서로 재편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반면에 중국은 미국 강경파의 이와 같은 '숨은 의도(hidden intention)'가 결국 자신을 겨냥할 것이라는 인식을 강화시키면서 북한을 완충지대로 삼는 데 전략적 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이 글은 신동아 2월호에 기고한 글을 수정/보완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정욱식 기자는 오마이뉴스의 통일-평화문제 담당기자이며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2005/01/18 오후 6:59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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