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5주간 수요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마태 11,25-27)
본당에서 신자분들을 만나다 보면 참으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바쁜 가운데서도 레지오를 하고, 재속회를 하고, 매일 기도를 드리러 성당에 나오십니다. 또한 각박한 경쟁 사회 속에서 살면서도 너그럽고 희생적이며, 동정심도 많은 우리 신자들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만큼 신앙인답게 사는 것이겠죠. 그런 면에서 본다면 신부라고 그들 앞에 하느님을 더 많이 아는 척 나서지만 사실 정말 하느님을 아는 사람들은 제가 아니라 신자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기 딴에는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한테는 당신 자신을 감추시고 가르쳐 주는 대로 당신을 믿고 따라오는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십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주님 앞에서 조금 아는 지식으로 까불대지 말아야 하는데 그것이 잘 안 됩니다. 신부 노릇 하려면 모르는 것도 아는 척, 게을러도 열심한 척, 믿음이 약해도 강한 척해야 합니다.
물론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부족한 것은 하느님께 맡기면서 사는 겸손한 사제가 존경받고 사목도 잘하겠지요. 그러나 저같이 어설픈 겸손쟁이는 금방 들통이 나고 말기에 그냥 아는 척, 열심한 척하면서 살아갑니다. 뭐, 그렇다고 착하고 성실한 우리 형제·자매님들께 사기를 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우리 착한 신자들, 저 때문에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것뿐이지요. 그러니 주님 눈 딱 감고 저같이 조금 안다고 껍죽거리는 사람한테도 당신을 드러내 주시면 안 될까요? 신자들 앞에 체면 좀 서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