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간 수요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게 하셨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 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마태 10,1-7)
어릴 때 ‘예수께서 유다를 제자로 뽑으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던 적이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분께서 당신을 배신할 것도 모르고 유다를 뽑으시다니, 하느님도 실수할 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당신 구원사업을 위해 악역을 맡을 인물이 필요해서였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궁금증도 사라져 갔습니다. 내 삶에 그런 질문이 별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어느날 사는 것이 엉망이고 내 삶이 유다와 같다는 생각이 들 때 그 의문은 다시 나를 찾아왔습니다.
왜 주님께서는 유다를 뽑으셨을까? 성체 앞에 앉아 있는 동안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같은 이 시대의 유다들을 위하여 주님께서는 그를 제자로 선택한 것은 아닐까? 당신의 공동체는 좋고 훌륭한 사람들만의 공동체가 아니라 모두를 품어주고 기다려 주는 공동체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 아닐까? 유다처럼 자기의 길을 간다 하더라도 당신처럼 내치지 않고 품어주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시면서.
그런데 참 희한합니다. 가만히 성체 앞에 앉아 있으면 온갖 나의 죄가 드러나는 것이 저 같은 유다도 없을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의 조그마한 허물에는 또 왜 그리 쉽게 판단을 하고 손가락질을 하게 되는지요.
오늘 하루, 이 세상의 모든 유다들을 위해 그를 제자로 뽑으신 당신을 기억하며 조금 더 너그러운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