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3주간 수요일
예수님께서 건너편 가다라인들의 지방에 이르셨을 때 마귀 들린 사람 둘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너무나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다닐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하고 외쳤다. 마침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놓아 기르는 많은 돼지떼가 있었다. 마귀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쫓아내시려거든 저 돼지떼 속으로나 들여보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가라” 하고 말씀하시자 마귀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떼가 모두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로 가서는 이 모든 일과 마귀 들렸던 이들의 일을 알렸다. 그러자 온 고을 주민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나왔다. 그들은 그분을 보고 저희 고장에서 떠나가 주십사고 청하였다. (마태 8,28-34)
예수께서 가다라 지방에 이르렀을 때 마귀 들린 사람과 마주치는데, 그 당시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볼 때 유다인들은 이방인들과 접촉하는 경우도 없었거니와 이방인들과 만나는 것 자체가 불결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방인 지역으로 가시고 마귀가 들려 사나운 사람을 만나게 된다. 유다인들이 보기에 가다라는 이방인 지역이라 불결한 곳이고 무덤 역시 불결한 곳이다. 거기다 마귀가 들린 그 사람은 너무나 사나워 어느 누구도 그들과 마주치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예수님을 보고 오히려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을 하는데 여기서 예수님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지난 부활절에 세례를 받은 교우 한 분을 만났다. 그분은 “세례를 받고 나서 생활의 기쁨이 없어졌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그게 무슨 말인가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분은 “예수님은 인간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시러 오셨다는데, 나는 세례를 받고 나서 생활에 걸림돌이 더 많아졌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을 때는 마음 편히 살았는데 예수님을 따르려니 생활 속에서 걸리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분은 돼지떼 속에 묻혀버리고 싶은 심정이 드는 때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마음 안에 ‘사나운 것들’, ‘마귀’, ‘돼지떼’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자유 의지’를 가지고 삶을 더욱 책임있게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