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딸 매일성경묵상(2006.6.16 목)

2006. 6. 15. 오후 5:24:22

글자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마태 5,20-­26)


 아끼는 차에 흠이 나면 정말 속이 상한다. 아무리 조심해도 자동차엔 어느 틈엔가 흠집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흠집은 대부분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작은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자기는 엄청 신경을 쓰지만 다른 사람은 잘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은 그 흠집을 10센티미터밖에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보고 있기 때문에 크게 보이는 것이다. 앞으로 혹시 자동차에서 흠집을 발견하게 되면 3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다시 한번 보면 좋겠다. 그러면 거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3미터 떨어진 곳에서 보이지 않는 흠이라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처도 같다. 우리는 자신의 들보는 잘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의 티를 탓하는 경우가 얼마나 잦은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구약을 율법을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의 복음적인 시각을 제시하시면서 인간관계의 내적인 중요성을 강조하신다. 자기 형제를 ‘바보’·‘멍청이’라고 하는 사람은 크게 벌받을 것임을 강조하시는데, 죄에 대한 벌의 개념보다는 근본적인 인간관계의 쇄신을 제시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미움과 분노로 채우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해 보아야 하겠다. 우리는 사랑하기보다 용서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느님의 본질은 사랑이며 동시에 용서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 앞에서 흠없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야 하겠다.

 

김지영 신부(서울대교구 미아3동 천주교회)

댓글 1

  • 2006년 6월 16일 오전 1:40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