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기도 묵상

2005. 4. 13. 오전 8:52:02

글자
2005년 4월 13일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8,1ㄴ-8
그 무렵 예루살렘 교회는 심한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모든 신도들은 유다와 사마리아 여러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사도들만 남게 되었다.
경건한 사람 몇이 스테파노를 장사 지내고 크게 통곡하며 그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한편 사울은 교회를 쓸어 버리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남녀를 가리지 않고 끌어내어 모두 감옥에 처넣었다.
흩어져 간 신도들은 두루 돌아다니며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필립보는 사마리아의 한 도시로 내려가서 그리스도를 전하였다. 군중들은 필립보의 말을 듣고 또 그가 행하는 기적을 보고는 모두 하나같이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악령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고 또 많은 중풍 병자들과 불구자들이 깨끗이 나았기 때문이다. 그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기뻐하였다.

 

 

필립보는 사도들의 식량 봉사자로 내세운 일곱 사람 가운데 두 번째 인물이었습니다. 예수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유다인들의 선교와 로마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방인들의 선교 사이에,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선교가 필연적으로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필립보는 사마리아 지방으로 가서 사마리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알렸습니다.



복음 요한 6,35-40
그때에 예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내게 맡기시는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올 것이며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뜻을 이루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려고 왔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맡기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일이다. 그렇다.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내 아버지의 뜻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모두 살릴 것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빵으로써 세상에 신적인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의 빵입니다.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이들은 결코 굶주리지 않을 것이고, 예수님을 믿은 이들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예수님을 믿은 이들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예수님 안에서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서 얻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영을 가진 육이 아니라 육을 입은 영이다. 이 사실을 잊고 몸이 바로 ‘나’라는 착각에 갇혀 있기 때문에 아까운 일생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양식도 바로 그것이다. 그 양식을 받아먹는 방법은 예수께 나아가 그분을 믿는 것이다. 맏는 것은 자기를 내어맡기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과연 그러한지는 모른다 해도, 그렇다면 그런 줄 알고 시키는 대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지난 사순절 특강 때 들은 말씀입니다. 이현주 목사님의 책에서 발췌했다며 읽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매일 먹을 때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이런저런 일을 이루어지게 해주시고 저런 일은 해결해 주십사 하는지, 아니면 이럴 때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당신이 기뻐하시는지 생각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살고 싶으냐? 매일 너를 찾아가는 나를 먹는 네가 어째서 영원한 생명을 묻느냐?” 하시는 것 같아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김수빈(서울대교구 명동 천주교회)


어제 잠든 시각은 12시. 낮 12시에 잠을 잤냐고요? 아닙니다. 밤 12시에 잠이 들었답니다. 보통 분들은 이 시각에 대해서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저에 대해서 아시는 분은 저에게 있어 이 시간이 얼마나 놀라운 시간인지를 잘 아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잠자는 시간은 무척 이르거든요. 남들에게 초저녁이라고 할 수 있는 9시쯤에 저는 잠자리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밤 12시라는 시간에 깨어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제가 깨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은 그동안 밀린 E-Mail 답장을 하느라 그랬습니다. 계속 성지 경당 공사로 인해서 시간을 낼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내일 쓰지 뭐...’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미루다보니, 마음속에는 조급한 마음만 자리 잡게 되더군요. 그래서 어제 밤, 인터넷 방송이 끝난 다음부터 E-Mail 답장을 쓰는데 총력을 기울였고, 자정이 넘어서야 모든 답장을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혹시 답장 못 받으신 분 있나요?).

이렇게 답장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장 쓰지 않는다고 제게 어떤 제재가 들어오는 것도 아닙니다. 또 답장을 열심히 쓰면 금전적인 혜택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제가 했던 약속 때문이지요. 제게 E-Mail을 보내주면 웬만한 E-Mail에 대해서는 답장을 꼭 하겠다는 약속 때문에, 여건이 되는 한 답장만큼은 꼭 하려고 노력합니다.

2001년 6월부터 오늘 새벽까지 저는 인터넷에 저의 묵상 글을 계속 써왔습니다. 이 새벽 묵상 글 역시 꼭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는 것이 아니지요.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에 글을 올리게 되었고, 그 일이 계기가 되어 5년째 이 묵상 글을 써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저한테 했던 하나의 약속, 즉 매일 복음 묵상을 하겠다는 약속 때문에 이렇게 계속하고 있습니다.

약속은 때로는 나를 무척이나 불편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 약속의 이행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우선 사람들의 신뢰를 얻게 됨으로써 많은 지인들이 제 곁에서 저와 함께 해주십니다. 또한 제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도 큰 도움을 얻게 됩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는 글을 무척 못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남들 다 받은 적이 있다는 초등학교 때의 글짓기 상장이 하나도 없는 제가 책을 두 권이나 출판하고, 또 사람들의 칭찬까지 받고 있다는 것. 이것보다 큰 성장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런 약속을 해주십니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모두 살릴 것이다.”

그래서 그 약속의 이행을 위해 고통의 십자가를 지시고, 그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십니다. 하지만 그 약속의 이행이 결코 이런 고통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시지요. 부활의 영광이 이 약속의 이행 끝에 있음을 가리키십니다.

이제 우리 역시 이런 당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처럼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을 살릴 수 있는 약속을 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용서하고, 더 많이 행복할 수 있는 노력을 하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힘들고, 내게 이득이 되는 것 같지 않지만, 그 모든 행동들이 결국은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따르겠다는 약속을 합시다. 그리고 그 약속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합시다. 그때 주님께서는 더 큰 선물로 내게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목표는 하느님 나라 즉 구원입니다. 그러나 과정 없는 결과가 없듯이 세상에서의 삶 없이는 결코 하느님 나라도 없습니다. 참된 행복의 삶을 추구하지만 우리의 삶은 결국은 하느님께 영광드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께 순종하며 하느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참된 행복도 부활의 영광도 얻을 것입니다.

 

 

내가 한 약속은 꼭 지킵시다.



사람들은 가슴에


사람들은 가슴에 남모르는 불빛 하나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불빛이 언제 환하게 빛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는 그 불씨로 말미암아 언제나 밝은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사람들은 가슴에 남모르는 어둠을 한자락 덮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어둠이 언제 걷힐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둠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결국은 그 어둠을 통해 빛을 발견하는 사람이 됩니다.

사람들은 가슴에 남모르는 눈물 한방울씩을 날마다 흘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눈물이 언제 마를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눈물로 말미암아 날마다 조금씩 아름다워지는 사람이 됩니다.

사람들은 가슴에 꼭 용서받아야 할 일 한가지씩 숨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용서가 어떤 것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날마다 용서를 구하다가 어느새 모든 것을 용서하는 사람이 됩니다.

사람들은 가슴에 꼭 하고 싶은 말 하나씩 숨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말이 어떤 말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숨기고 있는 그말을 통해 하고 싶은말을 아름답게 하는 사람이 됩니다.

사람들은 가슴에 남모르는 미움 하나씩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미움이 어떤 것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미움을 삭여 내다가 결국은 모두를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사람들은 가슴에 남모르는 희망의 씨 하나씩 묻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희망이 언제 싹틀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희망의 싹이 트기를 기다리다가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됩니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댓글 2

  • 2005년 4월 13일 오전 8:55

    마음에 무엇을품고사는지는 아무도모를수있지요.그럴수밖에없는것도 우리인간들이구요.그러나그 해결책은 주님께있음을 고백합니다.

  • 2005년 4월 13일 오후 2:21

    A 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