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9일 토요일 기도 묵상

2005. 4. 9. 오전 8:47:30

글자
2005년 4월 9일 부활 제2주간 토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6,1-7
그 무렵 신도들의 수효가 점점 늘어나게 되자 그리스 말을 쓰는 유다인들이 본토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것은 그들의 과부들이 그날그날의 식량을 배급받을 때마다 푸대접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열두 사도가 신도들을 모두 불러 놓고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제쳐 놓고 식량 배급에만 골몰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서 신망이 두텁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아 내시오. 이 일은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직 기도와 전도하는 일에만 힘쓰겠습니다.”
모든 신도들은 이 말에 찬동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테파노와 필립보와 브로코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르메나와 또 안티오키아 출신으로 유다교로 개종한 니콜라오를 뽑아 사도들 앞에 내세웠다.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이 널리 퍼지고 예루살렘에서는 신도들의 수효가 부쩍 늘어났으며 수많은 사제들도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리스도 공동체가 점점 커지자 내적으로 많은 갈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자기들의 직분을 협조자들과 나누었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의 기본 사명에 충실하고 일곱 보조자들은 사도들을 도와주는 역활을 맡게 된 것입니다. 사도들에게 맡겨진 기본 사명은 기도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입니다.



복음 요한 6,16-21
그날 저녁때 예수의 제자들은 호숫가로 내려가서 배를 타고 호수 저편에 있는 가파르나움으로 저어 갔다. 예수께서는 어둠이 이미 짙어졌는데도 그들에게 돌아오지 않으셨다. 거센 바람이 불고 바다 물결은 사나워졌다.
그런데 그들이 배를 저어 십여 리쯤 갔을 때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서 배 있는 쪽으로 다가오셨다.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은 겁에 질렸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다, 두려워할 것 없다.” 하시자 제자들은 예수를 배 안에 모셔 들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배는 어느새 그들의 목적지에 가 닿았다.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은 풍랑 속에서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거센 파도 속에서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용기를 주시는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같은 용기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두려움과 고통과 절망 안에 함께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시내버스나 택시를 타면 가끔씩 눈에 띄는 사진과 문구가 있었습니다. 웬 소녀가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과 그 옆에는 ‘오늘도 무사히!’라는 글귀가 적힌 사진. 요즘처럼 이 사진이 마음에 와 닿은 적이 없습니다. 이유는 자연적인 재해와 인간적인 재해로 말미암아 우리네 인생이 참으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세상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태풍해일로 소중한 생명을 잃거나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리는가 하면,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돈벌이에 눈멀거나 호기심 가득한 군상들이 만들어 내는 잘못된 기사와 사진이 가상공간을 떠돌아다님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매도되어 정신적인 죽음을 맞이하곤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겪는 것처럼 모진 풍랑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혼돈과 위협적인 세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그 누구도 이러한 삶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만은 예외일 것이다’, ‘나는 모를 것이다’, ‘이것은 믿을 만한 것이다’라는 착각 속에 그런 일을 벌이는 군상 속에 슬며시 자신을 밀어넣곤 열심히 다른 이들에게 감염시킵니다.
자연재해나 인터넷에 의한 피해나 모두가 따지고 보면 인간들의 무사안일과 이기심 때문에 일어나는 것인데 곧잘 하늘을 원망하거나 애꿎은 사람들을 원망하곤 합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또다시 사람에게 믿음을 두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고는 좌절하기도 합니다. 모두가 내 맘 같기만 하다면야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예수께서 풍랑에 시달리는 제자들에게 오셔서 “나다, 두려워할 것 없다”고 하시며 모든 상황을 평정하시고 당신이 누구신지 확실하게 인식시켜 주심에 희망을 가집니다. 혼돈과 위협적인 요소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헤어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예수님, 오늘도 무사히!

정민수 신부(서울대교구 중견사제연수)


제가 계속 말하고 있어서 잘 아시겠지만, 현재 갑곶성지는 공사로 인해서 무척 어수선합니다. 그러다보니 저의 복장도 완전히 공사판 분위기입니다. 작업복과 작업화. 더군다나 하루 종일 공사하는 곳을 지키고 있다 보니, 신발 벗을 시간조차 없습니다. 즉, 아침에 성지로 나가면 작업화를 신고서 하루 종일 지내다가 다시 저녁 늦게야 집에 돌아와 신을 벗을 수가 있지요. 그러다보니 저의 발에서는 냄새가 많이 납니다. 특히 요즘 점점 날이 더워지면서 발에 땀이 차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낮에 신발을 벗는 경우가 생기면 주변 사람들에게 상당히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 냄새는 제가 맡아도 상당히 거북하거든요.

그런데 문득 이런 걱정을 하게 되네요. 지금 리모델링을 하고 있는 갑곶성지의 경당은 신발을 벗어야 하는 마루거든요. 따라서 저 역시 미사 때는 신발을 벗어야 하고, 혹시 저의 발 냄새로 인해서 성지에 오신 순례객들에게 커다란 분심을 드리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런데 인터넷에 들어가서 검색을 해보니, 발 냄새가 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지, 그 발 냄새 제거 요령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지금 발 냄새로 고민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그 중에서 몇 가지만 추려서 적어 봅니다.

“발가락 사이사이의 물기를 완벽하게 닦아낸다. 보디파우더를 듬뿍 바른다. 탈취 스프레이를 뿌린다. 녹차 우린 물에 발을 담근다. 면제품 양말을 신는다. 생강을 강판에 갈아서 30분 정도 발가락 사이에 붙여둔다. 외출 후 구두를 잘 말려 보관한다.”

이밖에도 수없이 많은 발 냄새 제거 요령들이 있는데 왜 미리 걱정을 해야 할까요? 즉, 공사가 다 끝난 뒤에는 이 방법들만 쓰면 발 냄새 없이 다시 지낼 수가 있는 것이지요.

결국 저는 인터넷에 나와 있는 그 많은 발 냄새 제거 요령으로 인해서 걱정꺼리를 없앨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확실히 믿는 구석이 있으면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의 믿음에 확신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도 쓸데없는 걱정으로 시간 낭비, 인력 낭비를 하는 우리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 곁으로 오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깜짝 놀랍니다. 오랫동안 같이 생활을 했고, 예수님으로부터 좋은 말씀과 놀라운 기적을 보아 온 제자들이었건만 그들은 예수님을 보고서 겁에 질립니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곁에서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즉, 2000년 전 제자들에게 했던 그 말씀,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따뜻하게 다가오시는 예수님께 대해서 나는 얼마나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지, 우리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내게 있어 가장 확실한 믿는 구석이 바로 예수님이 될 때, 우리는 내게 다가오는 어떤 어려움과 고통도 손쉽게 이겨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편안할 때는 잊고 살다가 세파의 물결이 출렁거리면 아우성을 치며 그때야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은 평안한 중에도 고난 중에도 늘 함께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주님을 원하고 눈을 들어 하늘을 볼 때 비로소 늘 계셨던 그분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언제나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알기만 하면 진정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일들을 미리 걱정하지 맙시다.



축복받는 사람(이창훈의《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중에서)


첫째, 당신은 개인적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 당장 부르면 올 수 있는 친구가 최소한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둘째, 당신은 사전에 알리지 않고 불쑥 찾을 수 있는 친구가 있는가?

셋째, 당신은 함께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넷째, 당신이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했을 때 선뜻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친구가 있는가?

이 네가지 질문에 대한 당신의 대답이 부정적이라면, 당신의 인간 관계 역시 부정적인 관계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 당신은 축복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지요.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댓글 2

  • 2005년 4월 9일 오전 8:49

    믿는 구석이 있는 한마음 가족 모두에게 즐거운 주말되시길 빕니다. 팀장은 안면도로 출장나갑니다.야훼이레공동체행사에 운전기사로 초청받았거든요.봄비가온다는데... 암튼 모두즐겁게!!!

  • 2005년 4월 9일 오후 1:35

    *^^* 잘 다녀오세요. 원래 햇빛 맑은 날도 좋지만 이런 날도 기도도 잘된답니당.~! 이따 성가연습은 오시나요?